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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Nov 01. 2023

어떤 위로도 필요 없다


아직도야? 라며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안부를 묻는다. 나는 지금 몇 번째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을 하고 있는지 모를 거다. 딱 한 번만 물어보면 좋겠는데 늘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오랜만에 친구들이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며 미뤘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절친이 급하게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며 신랑을 소개해주는 자리였다. 약속장소로 나가기 전부터 어떤 질문에도 절대 울지 않기로, 먼저 내 속사정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만남에서 편하다며 친할수록 상대에게 종종 더 상처를 준다.



결혼식을 올린 지 꽤 지났음에도 임신을 되지 않아 속 끓이는 걸 알면서도 묻는 의도를 모르겠다. 혼전임신으로 무작정 서두르는 친구의 결혼이 그저 부러웠다. 내 속사정은 이랬다. 일반 산부인과 다니는 것도 불임 클리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친구들과 연락을 조금 피했다. 친구란 기쁘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위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혼란스럽고 힘들 때는 예쁜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즐겁지 않았다. 매달 임신에 실패하며 세상에 우리 부부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 같았다. 가족도 친구도 위로한답시고 더 상처만 깊게 남겼다. 차라리 친한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서 사는 이 타지가 더 편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갈수록 삐뚤어져 가고 있었다.








마트를 가다가도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어서 되돌아간다. 거짓 웃음도 보여주기 싫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기는 더 싫어서다. 형식적인 안부 전화도 신물이 나고 나의 불행을 즐기는 거처럼 속마음이 점점 꼬여 같다. 은근 허니문 베이비를 가졌다며 자랑하는 친구가 부러워 너그럽지 못한 행동도 했다. 좀생이처럼 ‘임신을 축하해’라는 말도 하기 싫어서 연락을 피해버렸다.



설상가상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왔다. 시어머님이 해주신 한약이 안 맞았는지 복통으로 시달리다 결국에는 입원까지 하게 됐다. 졸지에 의사 선생님에게 무식한 사람이 되었다. 진맥도 하지 않고 사슴뿔이 들어가서 몸을 보해준다는 말만 믿고 열심히 먹었다. 몸을 보하는 한약이 아닌 임신이 잘 되는 한약이었다. 어머님은 아기가 안 생기는 게 나 때문이라 생각했다. 꼬박꼬박 열심히 챙겨 먹었는데 부작용으로 2주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얼굴이 노랗게 변하고 눈동자도 노랗게 돼서 안과에도 다녔다.


친정아버지는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노하셨고, 사돈인 시어머님께 한마디 하셨다. 내 딸아이가 아기를 못 가지는 게 누구 탓도 아닌데 이러실 거면 딸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다. 딸을 잡을 작정이지 누가 살아남겠냐고 말이다.









어려운 사돈 관계는 더 어려워졌다. 아기는 축복받아야 하는 선물인데 이렇게 아기를 낳아야 하나 싶었다. 양가 어르신들의 관심과 친구들의 관심은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그저 스트레스만 쌓이게 하고 더 멀리 숨고만 싶었다. 남편도 최대한 본가에 가지 말라고 했고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 했다. 힘든 시기일수록 똘똘 뭉쳐서 부정적인 생각이나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 했다. 주위에서 시선을 받을수록 나는 집 밖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고 자신을 스스로 비틀고 꼬고 있었다.




길을 걷다 만나는 임산부만 봐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와 분노했다. 어떤 위로도 내 마음에 전달되지 않았다. 누군가 위로한답시고 말을 건네면 쌈닭이 되어 꼬투리 잡기 시작했다. 점점 괴물이 되어갔다. 주위에 있는 가족뿐 아이라 남편과 친구가 온전한 피해자였다. 남편은 한배를 탄 동반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만 피해자인 거처럼 징징거렸다. 그도 나처럼 힘들고 고통을 감내하고 있단 생각이 잠시 들다가도 원망이 몰려왔다.




한없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밑바닥이 어디인지 모르고 내려가려고 작정한 것처럼 무너졌다. 차라리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 고통을 알아달라고 버둥거리는 것보다 이렇게도 해도 저렇게 해도 안 되니 미치고 돌아버릴 거 같았다. 이미 토해낸 말들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스스로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매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내게 관심조차 두지 말라고 경계했다.






매달 찾아오는 생리는 임신에 실패했다는 증거였고,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크듯 퇴근하고 집에 오는 남편에게 화풀이는 반복되었다. 매달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리셋되었다. 주기적으로 미친 듯 날뛰는 망아지가 따로 없었다. 카페에 올라오는 임신 증상을 매일 들여다보고 상상해서 그런지 모든 증상이 나의 증상이고, 생각만 해도 곧 임신이 된 거 같았다. 혼자 기뻐하며 아랫배의 통증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말하면 복이 달아날까 내 아기를 누가 훔쳐 갈까 조심스러워 임산부처럼 조심조심 행동한다. 며칠 후 즐거운 증상놀이를 알리는 듯 팬티에 피가 묻어 나온다. 반복되는 일인데도 늘 처음 같았고 매달 찾아오는 규칙적인 생리가 야속하기만 하다.



누가 이기나 내기라도 하고 싶었다. 절대 지지치 않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엉엉 소리 내어 울며 남편에게 또 짐을 준다.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같은 마음일 텐데. 나만 위대한 일을 하는 듯 어린양 했다. 나만 아픈 것처럼 봐달라고 졸랐다. 바깥일 하는 사람에게 못한 짓을 저지르는 철없는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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