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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Sep 06. 2024

명절 증후군 있으신가요?

변화하는 전통 속 어머님의 마음

변화하는 전통 속 어머님의 마음

우리 집 달력에는 빨간 동그라미가 14개나 그려져 있었습니다. 아마 생일과 기념일까지 합하면 20개는 넘을 듯합니다. 시집와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1년에 14번의 제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사가 있는 날에는 마음도 몸도 덩달아 항상 분주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보다 어머니에게는 더욱 그랬을 겁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셨으니까요.

그러다 우리 가족은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조상님들을 절에 모시기로 한 거죠. 이제 1년에 14번이던 제사가 설과 추석 명절로 단출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가족 모두에게 편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특히 어머니께서 가장 좋아하실 줄 알았죠.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돼. 하지만 우리 식구가 먹을 건 집에서 만들어야지."

어머니의 말씀에서 허전함이 느껴졌습니다.



남편은 차남이지만 아직 미혼이신 형이 계십니다. 언제나 저만큼 명절 스트레스가 심하신 듯했습니다.

외며느리인 제게 부담을 주기 싫으셨는지 아주버님께 시장에서 전을 사 오라고 시켜보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별로 셨는지 냉동으로 반조리된 전을 사서 간소하게 부쳐보기도 했지만 결국 어머님의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았습니다.



50년 넘게 이어온 습관,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사랑을 단번에 내려놓기란 쉽지 않으셨나 봅니다.

저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는 제가 준비해서 해가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럴 수 없다면서 집에서 할 것은 해야 한다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저희 가족이 주말에 찾아가면 언제나 주방을 맴돌며 음식 준비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바꾸려 했던 건 단순한 '전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건 어머니의 사랑이자, 가족을 향한 헌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변화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가족의 소중함 같은 것들 말이죠.


이제 우리 가족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갈 때입니다.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은 그대로 간직한 채, 모두가 함께 준비하고 즐기는 명절. 그것이 진정한 변화가 아닐까요?


이번 추석에도 어머니는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시면서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실 겁니다. 이번에는 용기 내서 꼭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말씀드릴 겁니다.

"어머니, 시집오셔서 55년간 애쓰셨어요. 이제 저에게 맡겨주시면 열심히 배워서 흉내 내볼게요."


어머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 미소 속에서 저는 우리 가족의 새로운 전통이 시작되고 있음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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