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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Nov 13. 2023

아버지의 뒷모습

미움이 글쓰기로 치유된다면

갑작스레 추워진 날을 맞아 아버지의 겨울점퍼를 하나 샀다. 미운 아빠의 외투는 왜 챙기는 건지 나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체구가 작아지니 전에 입던 외투가 얻어 입은 것처럼 눈에 계속 거슬려 신경 쓰였다. 마침 주말이라 하나 사놓은 걸 갖다 드리고 왔다. 나는 그동안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고 원망했다.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불편한 몸으로 사는 것도 아빠 탓인 거 같았다. 내가 지금 이렇게 똑 부리지게 살지 못하는 것도 아빠 탓인 거 같았다. 그냥 내가 하는 일들이 안 풀리면 남 탓 하고 싶어 한다는데 나는 무조건 아빠 탓을 많이 하고 있었다. 사실 용서라는 게 쉬운 건 아닌가 보다. 용서한 줄 알았는데 가끔 나도 모르게 한 번씩 올라오는 이상한 감정이 있다. 그 감정은 오묘하다.

사람의 마음이란 싫어하는 마음과 좋아하는 마음이 전달된다고 하는데 내가 미워하는 게 더 많이 전달되었나 싶을 때도 있었다. 2남 2녀의 막내딸로 태어나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자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잘 자라왔다. 단 한 번도 큰소리 내지 않고 무탈하게 잘 자라온 듯했다. 너무 평탄하게 지난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난 아빠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아서 그랬던 거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달라고 조르고 보채고 했다면 아마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삶이 많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어른들이  바라는 대로 겉은 멀쩡하게 잘 자라온 듯하였으나 이미 어린 나이에 난 마음의 생채기가 아무러들지 않았다. 아직도 미움이 남아있는 걸 보니 말이다.






그동안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잘 살아왔지만 첫 번째로 반항한 일은 나의 첫 직장을 과감하게 퇴사한 일이다. 아버지가 좋아한 직장이어서 그랬는지 엄청 화를 내셨는데 불구하고 나는 기분이 "환호했고, 야호를 외쳤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오묘하게 기뻤다.

아버지께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고 그만둔 일은 잘못한 일이었다고  스스로 인정했지만 그 일로 나는 여러 가지 인생의 삽질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아무리 자식이 많아도 편애하는 자식이 있다고 한다. 나는 예외였다. 아버지는 장남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커서 나머지 자식들은 들러리로 희생양이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아버지를 조금씩 조금씩 미워해 미움을 쌓아 올렸다. 겉으로는 아버지가 선택한 대로 사는 거 같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끊임없이 갈망했다. 비록 빠르게 갈 목적지도 아버지 덕분에 빙빙 둘러서 천천히 도착한 적도 많았다.


몇 년 전 나는 『거울의 법칙』 을 읽고 용기 내서 아버지와 화해를 했고 뜨거운 눈물로 부둥켜안고 가족의 사랑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처럼 되돌아갔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가족의 사랑은 필연적이었다. 늘 미안하고 걱정되고 궁금한 게 아버지에 대한 사랑 표현방식이었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미리 사둔 아버지의 외투를 입혀드리고 왔다.


바다처럼 넓었던 어깨는 온데간데없고 앙상하게 오그라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왔다. 이젠 과거의 안 좋은 기억들은 묻어두고 앞으로 얼마나 재미있게 아빠를 해드릴까 생각해야겠다. 그때는 아빠가 강했지만 지금은 내가 더 강해지고 힘이 세졌다. 내가 중년으로 나이 들어갈수록 아버지는 점점 더 나약해져 간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태산같이 높기만 했던 
아빠의 뒷모습이
지금은 너무 쓸쓸해 보인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이 다 치유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미워하고 원망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앞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글쓰기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응어리졌던 마음을 글로 토해버리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숨통이 트였다.  작년부터 글쓰기를 통해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었고 더 친근해졌다고 믿었다.

첫 번째 공저 책을 내고 아버지가 내게 처음으로 미안함을 표현하셨다. 

"내가 그렇게 심했냐?" 하며 너스레를 떨면서 말씀하셨지만 순간 아버지와 대면하고 있으니 내가 고자질한 거 같아 죄인처럼 낯이 뜨거웠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책에 너무 날것으로 갈겨썼다. 읽어보라고 책을 드렸던 것은 아니지만 딸의 글을 돋보기 쓰고 읽어보신 게 틀림없었다. 그 후로 아버지는 그 책에 대해서 한마디의 말씀도 꺼내지 않았다. 나 또한 아버지가 책을 읽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냥 응원해 주셨다. 그 후로 용기를 얻어 글쓰기가 즐거웠다. 매일 쓰는 루틴으로 생각이 단단해지고 있었다.


1년 뒤 아버지를 대장내시경하기 위해 집으로 모시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교통사고 후로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날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표현이 서툰 거였다. 이 말을 꺼내야지 해놓고 쑥스러워서 늘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무뚝뚝한  아버지의 이런 모습이 좋아진다. 어색한 미소를 지어도 마음을 전달하려고 애쓰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겨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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