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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Nov 28. 2023

이제야 곶감이 맛있습니다

어릴 때 감 땄던 추억





어른이 된 지금도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처마 밑으로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을 보는 순간 차를 멈추고 바라본다. 시골집처럼 생긴 양옥집만 봐도 우리 집인가 싶다. 그때 시대의 유행이었던 건축양식이었나 보다.



어릴 때의 추억으로 꼽자면 아마 곶감에 대한 기억들일까.  무슨 맛인지도 모르지만 간식이 없고 배고팠던 시절이라 뭐든 맛이 없어도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곶감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단골 레퍼토리처럼 그리움에 사무치는 게 바로 곶감이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곶감을 좋아하고 홍시, 단감, 반건시까지 감이라는 감은 이 나이가 되고 나서야 맛이라는 것을 알았다.



감을 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국민학교 키에 나보다 더 긴 장대를 하늘 높이 치켜들어 감이 매달린 가지를 부러뜨려야 감을 내 손에  수 있다. 당연히 감 따는 일을 배운 적 없어 서툴렀고 목이 빠질 듯 아팠다. 하늘 높이 매달린 감을 매섭게 째려봐도 감은 대꾸도 하지 않는다. 감이 싸움이라도 하듯 아무리 째려보아도 물러설 기미를 안 보인다. 간신히 감 하나를 장대 전지 홈에 끼워 맞추는 순간  '딸깍' 돌리면 감이 땅으로 곤두박질쳐 떨어져 깨져버리고 만다. 그럼 아빠는 언제 봤는지 감이 깨지면 못 쓴다며 혼을 내셨다. 손에 닿을 곳에 감이 있으면 좋으련만 왜 감은 높다란 가지에 매달려 있는 건지 가지라도 부러뜨리고 싶은 심정이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앞마당 마루에 앉아서 곶감을 만들기 위해 과도로 껍질을 깎아서 알맹이는 매달고 껍질은 채반에 널어서 말렸다. 겨울 방학이면 우리 간식이 될 껍질이라며 정성껏 끊어지지 않게 돌려 깎으셨다.



어린 맘에 아직 하얗게 되지 않은 반건시 곶감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몰래 따먹었다. 들키지 않게 귀퉁이 것을 따먹었지만 어떻게 아셨는지 들켜서 혼쭐이 나고 만다. 제사에 쓸 곶감이라며 조상님들 먼저 드시게 해야 하는 게 도리라고 말이다. 아마 큰오빠가 곶감을 따먹었으면 혼내지 않았을 거다. 작은오빠와 나는 속상한 마음에 더 몰래몰래 따먹었다.


 

곶감에 대한 어린 시절의 추억은 아름답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립다. 할머니도 그립고 처마에 매달 수 있는 힘이 없는 아버지도 그립다. 왜 과거의 기억들은 아름다운 걸까? 미웠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졌고 보고 싶어 진다.







곶감이 될 자격을 잃은 감 들이다. 곶감을 할 수 있는 감은 일단 물러서는 안된다. 탱글탱글하고 딱딱한 갑이어야 한다. 감의 종류가 많아도 내 기억으로는 곶감 만드는 감이 따로 있었다고 들었는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감은 울 큰 감이었다. 시골에서는 땡감을 따서  장독에 넣고 볏짚단으로 돌돌 말아서 하룻밤 숙성시켜서 떫은맛이 우러나면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 어린 마음에 단감이 귀하던 시절이었으니 귀했다.



아버지가 감을 울 클 때 그 안에 물과 다른 무엇을 넣었는지는 모른다. 있으면 먹기만 했던 나이였으니까. 신기한 일은 울 큰 감을 잊고 살았다. 직장 생활하고 아버지도 감을 울 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 울 큰 감이 먹고 싶어서 중앙 시장을 며칠간 누볐다. 간신히 찾아내서 사 먹었는데 꽤 비싼 과일이 되어 있었다. 입덧 한번 요란하다고 주위에서 흉봤지만 그게 먹고 싶은 것은 내가 아니라 뱃속의 아이라며 당당했다.




희귀하면 흔했던 감도 비싸진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 단감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울 큰 감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골에서 자란 나의 곶감 이야기는 살포시 아름답게 그려졌지만 지금보다 더 추웠고 배고팠던 시절은 분명하다. 먹을 것이 흔해진 요즘 곶감, 홍시를 먹는 아이들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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