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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미 Oct 20. 2023

누구의 탓도 아닌데

임신을 기다리며

    


임신테스트기가 고장 난 건 아닐까? 


벌써 몇 개째를 해봐도 계속해서 한 줄로 표시된다. 


차라리 불량이면 얼마나 좋을까. 벌써 며칠째 생리가 늦어지고 있으니 마음이 뒤숭숭하니 설렜다. 혹시 임신인가 기대하다가도 상처가 될까 두려워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아니나 다를까 부푼 꿈을 등지고 새빨간 생리가 터지는 날이면 집안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야속하게도 테스트기는 언제나 가혹하고 배신감을 준다. 


퇴근하고 오는 남편은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내 표정만 봐도 아는지 입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는 속상하고 화가 나서 미칠 거 같은데 남편은 남 일처럼 태연한 게 싫었다. 나 혼자만 아이를 못 가져 안달 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남녀가 결혼식만 올리면 금방 임신이 될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은근히 어른들의 눈치가 보여서 더 애쓰는 게 나였다. 아직 미혼인 시아주버님이 계셔서 아기를 나중에 낳겠다고 계획한 상태였다. 왜냐면 처음부터 어머님은 결혼 순서가 뒤바꾸는 게 싫어 내키지 않았던 결혼이었다. 남편이 억지를 부려 간신히 어머니가 결혼을 승낙했다고 한다. 임신이 안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 믿고 싶었다.     


처음에는 편안하게 대해 줬지만 금세 어머님의 속사정은 달라졌는지 매달 아기 소식을 기다리셨다. 세상에서 임신이 제일 쉬웠다고 얘기하는 어머님이 이해되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아직 새댁인 앉혀놓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어머님의 장단을 어디로 맞춰야 할지 몰랐다. 병원에서 아직 아무런 진단을 받지도 않았는데 이미 내 탓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안 생기면 여자 탓이라는 생각은 여전했다. 친정 부모님도 마찬가지로 걱정이 되는지 초조해하셨다.     


10분 거리의 본가에서 떨어진 신혼집은 의미가 없었다. 퇴근할 때마다 저녁을 해놓았다며 들러서 먹고 가라고 했다. 이때부터였다. 희한하게 시댁에서 먹는 저녁은 꼭 체했고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말도 못 꺼냈다. 친정엄마가 시댁에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을 해야 한다고 했다. 때로는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으면 가장 걱정되고 속상한 건 당사자일 거라는 생각을 못 하셨다.     


누구의 탓도 아닌데 결혼만 하면 임신이 바로 돼서 손주를 금방이라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딩크족도 있고, 비혼족이 많아지는 시점에 부모님의 입장을 무시하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누구보다도 더 시급하고 불안한 부부의 모습을 공감해 주기를 바랬다. 자꾸 다른 집 딸이 임신했다는 얘기, 손주를 봤다는 얘기가 내게는 지옥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게 비교였고 노력하지 않는다며 은근히 압박감이 느껴졌다. 


왜 임신이 되지 않으면 무조건 여자 탓인지 모르겠다. 같은 여자 입장인 시어머님께서 내 탓으로 몰아갈 때 너무 서운했다. 말라서 그렇다. 입이 짧아서 그렇다. 손, 발이 차서 그렇다는 등의 이유가 열두 가지였다. 과연 자신의 딸이라 해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자신은 딸이 없어서 나에게 더 심하게 대했는지 모르겠다.     



임신 소식을 알리지 못하면서 나는 계속 죄인이었고, 더불어 친정 부모님까지도 죄인이 되었다. 옛날부터 딸 갖은 사람은 죄인이라더니 딱 맞는 말이었다. 아이를 하루빨리 가져서 당당하게 사돈에게 손주를 안겨드리고 싶은데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모두 자기 딸 때문이라 생각하셨다.     


 

사 남매의 막내딸인 나는 언니와 오빠들처럼 아이를 순풍 낳을 거라 믿었다. 임신이 안 돼서 속 썩을 거란 생각을 못 하셨기에 더 초조해하고 애간장을 태웠다. 효도하고 싶었던 내 마음은 사라졌고 나도 모르게 걱정해주는 부모님에게도 짜증을 냈다. 하루를 멀다 하고 분노가 조절되지 않았다. 순리대로 되지 않으니 불안감만 쌓여갔다.


결혼 후 1년 안에 자연 임신이 안 되면 모두 난임 진단을 받게 된다. 시어머님은 난임이라는 말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셨다. 절대로 병원의 진단을 믿지 않았고 우리가 뭔가 숨기고 있다며 의심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시부모님께서는 녹용이 들어가 있는 한약을 지어오셨다. 당연히 진맥도 하지 않고 말이다. 이에 질세라 친정 부모님들은 뱀탕과 흑염소를 손수 건강원에 맡긴 후 집으로 다려서 찾아오셨다. 보통의 비위로는 먹을 수 없던 음식들도 먹어야 했다. 딸네 집에 오면 큰일 날 것처럼 금기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원인이 없었던 우리 부부는 처음에는 배란일 받아보는 방법부터 시작했다. 각자의 얼굴과 성격이 다 다르듯 배란일도 제각각이었다. 몇 개월간 희망 고문을 하면서 자신감은 갈수록 사라졌다. 심지어는 병원에서 잡아주는 합궁 날을 잡아주는 대로 하지 않고 더 많이 하면 좋을 줄 알았다. 몇 개월 시도해보고 임신이 안 되자 실망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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