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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알라 Apr 04. 2024

나이 들어 좋은 점

나이 듦이 해결해 준 인생고민


나이 들어 좋은 점이 있을까.


쌓은 경험이 많아지며 조금은 성숙해진다는 점? 예전에는 미쳐 안 보이던 점들이 보일 정도로 사고가 깊어졌다는 점? 연차가 쌓이면서 버는 돈이 많아진다는 점? 뭐 물론 이런 점도 있긴 하겠지만 그닥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조금 얕고 서투르게 사고하면 어떤가. 돈이 조금 없으면 또 어떤가. 역시나 생기 있고 푸릇푸릇한 젊음이 좋지 않나 싶다.


하지만 뭐든지 나쁘기만 한 건 없다고. 노화에도 좋은 점이 있는데 내게 있어 무엇보다 좋은 점을 꼽으라면 '무던해진 피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10대에는 멀쩡하던 피부가 20대부터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지루성 피부염이 원인이었다. 병원에서는 나쁜 식습관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졌고 그 여파로 지루성 피부염이 왔다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무서운 녀석이 나를 찾아온 것은 확실했다.


좀 붉어지고 간지럽다 말겠지 하던 피부가 점점 뒤집어지기 시작했고 만성 피부염으로 진화하면서 나는 거의 10년 간 문제성 피부를 갖게 되었다. 호르몬이 가장 극성이라던 학창 시절에도 거뜬했던 피부였는데. 그 흔한 여드름 한 번 난 적 없던 강철 같던 피부가 지루성 피부염으로 피부 타입이 완전히 바뀌었는지 뭘 써도 뭐만 닿아도 여드름이 났다.


맞는 기초 제품을 찾느라 쓴 돈만 해도 수백만 원. 스무 개를 사면 하나 겨우 맞을까 할 정도로 피부가 아주 극성을 떨었다. 그렇게 돈을 지불하고도 맞는 걸 찾기만 한다면 다행인데 그나마 맞는다는 제품 역시 시도 때도 없이 좁쌀 여드름을 불러왔다. 10년 동안 화장품, 피부과로 쓴 비용만 수 천만 원은 족히 넘지 않을까 싶다.


늘 한 두 개의 여드름을 달고 살았고, 뭐가 안 난 날에는 붉은 여드름 자국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피부가 정말 심하게 뒤집어진 날엔 볼에서 진물이 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던 적도 있다. 너무 간지러워 두 손을 묶고 잘 때에는 서글픈 마음에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를 피부 때문에 고생하다 보니 나는 여드름만 안 나도 정말이지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여드름만 벗어날 수 있다면 수명이 몇 년 아니 10년은 깎인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평소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모. 그녀는 어느 날 내게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피부 트러블이 당장은 괴롭고 힘들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분명 일정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거야. 중년이나 노인 중에 여드름 난 사람 봤어? 아무리 여드름이 심했던 사람도 마찬가지야. 나이가 들어 왕성하던 호르몬이 잠잠해졌기 때문이겠지.”


그녀는 나처럼 20대 내내 여드름으로 고생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고민이 멈춘 시기가 딱 30대였다고 말해 주었다. 화장품도 생활습관도 그대로였고 바뀐 건 나이가 먹었다는 사실 하나밖에 없는데 서른 살이 넘어가니 트러블의 빈도가 반에 반에 반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이다. 지긋지긋하긴 해도 한 가지 다행인 건 '머지않아 끝이 있다'는 그녀의 말에 적지 않은 위안을 받았다.


30대. 그렇게 나는 20대부터 호르몬이 한 풀 꺾인다는 30대가 되길 간절히 바랐었다. 그리고 3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나는 이모의 조언대로 정말 피부 고민에서 거의 벗어나게 되었다. 물론 완전히 100% 피부 고민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예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귀여운 수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알아채지 못하는 새 피부가 많이 무뎌지고 단단해졌다. 폭풍처럼 제멋대로 넘실대던 호르몬이 이제야 안정을 찾은 것이다. 좀 더 일찍 잠잠해 주었다면 더 고마웠겠지만, 지금이라도 정상 노선으로 돌아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부 고민이 사라지니 낮아졌던 자존감도 높아지고 삶의 만족도 역시 크게 높아진 느낌이다. 예전엔 뭘 해도, 누굴 만나도 약간은 위축된 상태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나이 듦이 해결해 준 인생 고민! 덕분에 20대 보다 더욱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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