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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알라 Apr 09. 2024

터져 나오는 웃음

문제는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냐...' 히죽히죽 웃는 모습을 행여 회사사람들이 볼까 무섭다. 고개를 최대한 숙이고 땅만 보고 걷는다. 비상구 계단으로 얼른 들어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그제서야 맘껏 웃는다.


회사에서 연신 상기된 모습을 하고 있으니 동료 직원들이 묻는다. 뭐 좋은 일 있느냐고...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일 년에 한두 번씩 그런 날이 있다. 허파에 바람이라도 든 듯 참을 수 없이 웃음이 많아지는 날. 아침에 뭔가 재밌는 일을 발견하거나 듣거나 하면 그 웃음기가 하루 종일 툭툭 튀어나온다. 무언가에 집중하다가도 툭 웃음이 터지고, 히죽히죽 웃상이 된다.


사실 오늘의 웃음 포인트는 아침 출근길에 포착한 '비둘기'에서 비롯되었다. 아직은 찬 아침 기온에 한껏 웅크리고 지하철 출입구를 빠져나왔을 때였다. 회사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보니 아침 출퇴근길이면 회사원들로 길이 꽉 막혔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한꺼번에 민물처럼 쏟아져 나온 K-직장인 물결. 회사원들이 연신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먼저 도착해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있는 내 앞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포착되었다. 뭘 그렇게 잘 먹었는지 포동포동 살이 오른 비둘기. 비둘기가 그렇게 귀여운 조류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비둘기는 토실토실하고 귀여웠다. 뭐 주워 먹을 것이 없는지 땅에 고개를 박고 연신 부리를 콕콕 쪼아대고 있는 녀석.


그런 비둘기 뒤로 방금 출입구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회사원 무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먹이 찾기에 온통 정신을 집중하느라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비둘기는 회사원들 한가운데 완전히 둘러싸이게 되었다.


흡사 '갇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뒤늦게야 상황을 눈치채고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이미 사방이 막혀 버린 상태. 어찌할 바를 몰라 핑크색 발을 동동 거리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그 정도면 날아갈 법도 한데 너무 놀랐는지 그러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보는 사람이 다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났다. 하지만 횡단보도에서 혼자 웃고 있으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여기가 장례식장이라고 생각하자... 지금 웃으면 큰일 나는 거다...' 마인드컨트롤을 해가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 냈다.


문제는 회사에서도 문득문득 아침의 비둘기가 떠올랐다는 점이다. 회의를 하다가도 업무를 하다가도 심지어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다가도 비둘기가 떠올라 피식하고 웃음이 터졌다. 평소 비둘기를 떠올리면 어딘가 위생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가급적 내 머리 위에 날아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는 존재. 그런데 그런 비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웃음이 터지다니 신기한 일이다.


문득 나뭇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웃음을 짓는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오늘 내 모습이 딱 그 격이었다. 참 오랜만이다. 어릴 때는 이렇게 별 시답지 않은 것에도 웃음을 터트리곤 했는데 지금은 진짜 웃긴 일이 있을 때만 웃음이 나오곤 했다. 확실히 예전에 비해 웃음기가 옅어진 느낌이다. 물론 오늘처럼 좀 바보 같은 웃음이면 곤란하지만. 별거 아닌 일에도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을 간직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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