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고 왜 갖고 싶지 않았을까
자신의 방이 없어 슬프다는 한 아빠의 글을 보게 되었다.
하소연이나 불평을 하기 위한 글은 아니었다. 그저 이사 후 아들의 방이 생기고 그 안에 새 침대와 책장 등이 들어서는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친김에 용기를 내 자신도 베란다 한편에 작은 책상을 마련해 전용 공간으로 써도 되냐고 아내에게 물었다고. 그랬다가 되레 혼만 났다고 했다. 가족이 다섯 명이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많아서일까. 서재는 꿈도 꾸지 않지만 26평 집에서 단 1평 남짓도 독립된 공간이 없다는 글에서 어딘가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니 자연스레 우리 집이 떠올랐다. 아빠 역시 수 십 년 동안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건 그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언니와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릴 적부터 각자의 방이 있었는데 말이다.
전용 공간이 따로 없던 아빠는 필요한 용무를 볼 때마다 이 방 저 방을 철새처럼 이동해야 했다. 퇴근 후 TV를 보실 때는 주로 거실. 업무 전화 등 조용한 통화가 필요할 때는 베란다. 회사 일 등 컴퓨터를 써야 할 때는 주로 언니방을 이용하셨다. 하지만 그마저도 언니가 방을 차지하고 있을 때면, 거실 한 편에 놓인 작은 테이블이 아빠의 공간이 되었다.
아빠는 35년 중 단 몇 달을 제외하고는 항상 직장을 다니셨다. 그것도 정신은 물론 육체적으로도 고되다는 건설업에 종사하시면서 말이다. 그뿐인가. 남들은 다들 은퇴를 한다는 65세가 넘은 나이임에도 아직까지 활발하게 현직에서 일을 하고 계시기도 하다.
오랜 시간 집안의 가장으로 그리고 기업의 책임자로 묵묵히 역할을 다해 온 아빠. 그 긴 시간만큼이나 그동안 짊어져야 했던 책임과 무게는 분명 막중했을 것이다. 남모를 걱정이나 고충 역시 많았을 터.
바로 그럴 때, 아빠가 맘 편히 기댈 수 있는 공간은 어디였을까.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나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차 정도밖에 없었을 것 같다. 아빠 역시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낼만한 '자신만의 방'이 절실히 필요했을 텐데. 한 번도 그런 내색조차 보이지 않으신 걸 생각하면 한편으로 마음이 짠해진다.
어렸을 땐 부모님이 한 방을 쓰고 아이들은 각자의 방이 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내가 누릴 수 있었던 내 방에서의 독립적이고도 소중한 순간들. 그건 다 부모님의 배려와 양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