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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 Jan 11. 2024

매 순간의 빛을 선물로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 루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사회 집단의 사상, 행동, 생활 방법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관념 체계.

역사적ㆍ사회적 입장을 반영한 사상과 의식의 체계이다.


p145. “ 포로 생활이라는 경험이 또한 내게 가르친 것, 그것은 이제 더는 아버지나 어머니와 함께 있지 않으며, 공부와 교실, 그리고 가족 아파트의 세계가 아닌 세계에서 산다는 데서 느끼는 행복이었다.

간단히 말해 이제 더는 끔찍한 세계 속이 아닌 것이다....(중략) 국가 조직이 존재하는 한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중 가장 끔찍하고 가장 지독하며 가장 고통스러운 그 가족이라는 세계 말일세. “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어째서 가족이 그리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세계라는 말일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아직 요람에 있을 때부터 사람들은 이미 말과 가치라는 묵직한 지참물을 넣어주었다. '선'과'악' 또는 '도덕'이라 불리는 것들. 그것은 제일 먼저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부모를 통해 전수되고 주입된다. 인간이 문명 세계에 적응해서 살아갈 있는 규범과 규칙이 되지만 한편으로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의 자서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오랜만에 펼쳤다. (나는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되새김질을 하는 중이다.) 그의 자서전은 가족이라는 국가장치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억압받고 상처받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엄마의 욕망으로부터 탈주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 존재를 세우고 싶은 한 사람의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끝내 정신착란 상태에서 아내를 교살하고 면소판결을 받음으로써 법적주체로의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광인 중의 한 명이 아닌 최소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스스로 변호할 권리를 위해 쓴 해명서, 자기 분석서이다. 600페이지 넘는 분량의 두꺼운 책인데도 매력적인 그의 문체와 글솜씨로 한 호흡에 술술 읽힌다. 프랑스 철학자들 특징인지 지나치게 솔직해서(때때로 외설스럽기도 하고) 혼자 웃었다가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하고 그렇게 읽었다.


2018년 아마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무렵일 것이다. 내 자존감이 바닥을 뒹굴고 있을 때 엄마가 전해준 어떤 말과 내 여동생의 날 선 농담에 나는 휘청거렸다. 평소라면 별일 아닌 듯 넘겨버렸을 일인데 그때는 그들의 말이 묵직하게 상처로 다가왔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말이 내 불안의 트리거로 작동됐다.

아무리 힘들어도 삶에 있어서 중요한 단 한 사람이 손을 잡아준다면 누구든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엄마'라는 존재였다. 나의 바람은.

그러나 그 사람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 적이 없다. 내가 이룬 성과나 결과로써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의 평가만 했을 뿐이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내가 '인정'받는 것을 '사랑'받는다로 착각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가 있는 곳이 내게는 고향이었기에 결혼을 하고 친정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이사를 해도 늘 차로 30분 이내 거리에서 맴돌았다. 시누이처럼 제주도에 이주해 산다든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사는 친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만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도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던 셈이다. 나는  그 사람(엄마) 눈에 비친 내 모습만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때문에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은 엄마를 유혹하고자 한 어린 루이(알튀세르)의 욕망을 아주 잘 안다.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무의식적 불안. 그 냉담한 엄마. 청결을 지니치게 강조하던 점. 비슷하다. 내 기억 속의 엄마도 엄하고 냉담했다. 그가 단 한 번도 살갑게 안아주거나 따뜻한 말을 해준 기억이 없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우리 삼 남매는 각자의 아이들을 안아주고 이뻐할 줄 안다. 어린 시절 받지 못했던 것을 벌충하고 싶은 마음에서 일까? 그러나 사랑스러운 아이의 볼에 뽀뽀하고 꼭 껴안아주는 것을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티브이나 책 속에 나오는 가정은 따뜻하고 포근한 곳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가 받은 상처를 억압하며 애써 봉합해서 모든 부정은 없애버리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는 연약하기에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보다는 환상을 주조해서라도 가정은 따뜻하고 엄마는 좋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이미지, 그런 관념이 가족을 성스럽게 만들고 견딜 수 있게 만든다.


p146. “ (왜냐하면 가족이라는 것은 항상 성스러움, 따라서 권력과 종교의 장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가족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처럼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인 제4의 상처가 있다는 것을 굳이 여기서 말해야만 하는가? “


흔히 통용되는 따뜻한 가족이라는 것. 왜 그것이 실현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여러 이유와 조건들이 있을 터이나 무엇보다 제대로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함과 해결되지 못한 무의식의 상처들이 그것을 어렵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부차적이다.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이가 자신을 제대로 알 수나 있을까? 자신을 알지 못하는데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나 할까. 사랑하는데도 애씀과 공부가 필요하다.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다음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p360. “ 그 뒤 나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즉 그것은 자신을 부풀리고 '과장'하는 주도권을 쥐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상대방의 욕망과 리듬을 존중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 그러나 받아들이는 것을, 하나하나의 선물을 인생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울 줄 아는 것, 그리고 전혀 자만하지 않고 전혀 강요하지 않은 채 똑같은 선물을, 똑같은 기쁨을 상대방에게 줄 줄 아는 것이다. 요컨대 단순한 자유다.

세잔느는 무엇 때문에 생트-빅투아르 산을 매 순간 그렸겠는가? 그것은 매 순간의 빛이 하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이란 그 모든 비극에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나는 지금 예순일곱 살이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지금, 나 자신으로서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청춘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곧 인생이 끝나게 되겠지만, 젊게 느껴진다. 그렇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


매 순간의 빛을 하나의 선물로 받아들였던 세잔느처럼. 지금 여기 내 옆에 있는 아이, 남편을 가족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서 선물로서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그렇게 살고 싶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햇살이 공존하는 이 시골 양평집에서.




꽃을 만지는 시간

Handtied


24.1.3 중학교를 졸업하는 아이의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 고터 꽃시장에 갔다. 보통 꽃시장은 겨울, 이 시즌이 가장 꽃값이 비쌀 때이다. 몇 년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꽃값이 오르기도 했고, 대목 시즌이기도 해서 도매시장인데도 가격에 깜짝깜짝 놀랐다.



1. 꽃을 어레인지 하기 전 컨디셔닝이라는 작업을 한다. 물에 담기는 부분, 혹은 필요 없는 잎을 떼어내고 줄기 부분을 사선으로 잘라준다. 넓은 면적으로 물을 효과적으로 올리기 위해서 이다.


2. 꽃과 소재를 다듬은 후에 깨끗한 물에 적어도 2시간 이상 꽂아두어서 물을 충분히 올리도록 놔둔다. 물을 올려야 꽃과 잎들이 싱싱해져서 작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3. 급하게 하느라 핸드타이드 잡는 법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림과 같이 꽃 한 송이 소재 하나 서로 엇갈리게 중복되지 않게 잡아주는 것이다. 가운데 부분이 바인딩 포인트로 그 부분이 최종 묶이는 부분이다. 사실 꽃꽂이 중에 제일 어려운 게 이 핸드타이드인듯하다. 이론을 알아도 많이 연습해 봐야 자연스럽게 연출되기 때문이다.


꽃다발이 생각보다 크게 연출돼서 만들고 살짝 당황스러웠다. 졸업식에서 꽃다발 들고 같이 이렇게 저렇게 사진 찍으리라 기대했으나, 너무 시크하게 본인만 한컷 찍고 우리랑 사진도 안 찍어줘서 더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졸업식 끝나고 근처에 있는 돌짜장 집에서 맛있는 짜장면을 먹었으니 즐겁게 마무리한 걸로 ^^


* 브런치 사용법을 잘 몰라서 매거진을 나중에 만들고 나니 날짜 순서가 꼬여서, 발행을 두 번 하게 되었어요. 두 번 읽으신 분 거의 없겠지만 양해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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