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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 Jan 10. 2024

로맨틱, 예쁘다, 아름답다

욕망이론 / 자크 라캉

따뜻한 유린기를 하나 집어 들고 그녀가 말한다. " 나는 학교 졸업하고 한의사가 되면 행복할 줄 알았어. 그런데, 생각만큼은 아니야. 그렇게 행복하지 않아." 망원동에 가끔 들릴 때마다 동네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그녀. 20대 풋풋한 시절 첫 디자인회사에서 만나 2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지인이다. 제일 먼저 결혼한 그녀는 30대 초반 돌싱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2년간 수능 준비 끝에 경희대 한의예과에 과수석으로 입학했다. (놀라운 사람!) 합격 소식을 듣고 다 같이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그녀의 고백은 뜻밖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었다.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내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애썼던 그녀에게 한의대 입학은 욕망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잡기 힘든 어려운 것을 그녀는 마침내 이루어 낸 것이다. 그러나 라캉이 말했듯 욕망은 환유이자 기표이다. 욕망은 대상을 소유함과 동시에 곧이어 자리바꿈을 요구한다. 주체에게 결핍은 또다시 채워지지 않은 공백으로 남는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키는 대상은 죽음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대상에게 다가가고 벗어나는 일련의 과정이 삶을 지속하고 이끄는 동인이 된다.

 

한의사라는 타이틀은 기표이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한 삶을 보장하는 기표. 그 기표는 주체가 속한 사회의 담론에 의해 형성된다. 무인도에서 홀로 살지 않는 한 나의 욕망, 내가 쫒는 것은 사회라는 대타자의 담론과 포획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다만 힘들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란 어떻게 보면 기계와도 같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듯 보이나 실상은 구조화되고 획일화된 욕망 속에서 맴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욕망의 메커니즘인 까닭에 주체의 소외는 필연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제 나의 이야기를 해볼까?

누군가 "민트씨는 꽃이 왜 좋아요?" 물었을 때 "모르겠어요"라고 답했었는데 지금은 대답할 수 있다. 5년여 동안 나의 발길을 잡아끌었던 "꽃"은 어떤 의미였을까? 먼저 라캉의 유명한 명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에서 출발해 보자. 그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소쉬르의 언어관을 도입해 이와 같은 명제를 도출했다. 인간이 언어로 소통하기에 의식도 무의식도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꽃"을 생각했을 때 어떤 단어가 연상될까?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로맨틱,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생각하고 이내 당황스러웠다. 이 단어들은 당시 내가 느꼈던 결핍의 표현들이다. 관계와 나 자신에서의 결핍.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했고 나 자신도 긍정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었기에 그토록 "꽃"이라는 대상에게로 이끌려 다가간 것이다. 대상을 소유해도 결핍은 완전히 채워질 수 없기에 매번 대상에 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책을 펼쳐 문자를 읽듯이 무의식과 욕망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읽어낼 수 있다. 해석과 이해의 과정을 통해 주체의 결핍과 욕망의 환유 작용을 이해할 때 소외된 주체는 대상에 대한 환상과 왜곡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관계의 문제가 결핍을 이해한다고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우회로를 찾아 반복적으로 도피하던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거기서부터 사실을 사실 그 자체로 바라보고 문제를 직면해서 풀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으나 문자는 "꽃"이라는 이미지의 환상과 낭만에 기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할 수 있게 이끌어 주었다. 나의 지인도 독서를 통해 삶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계획하고 시도하며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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