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회귀 본능

명화질문연구소 다섯 번째 편지

by 민트아트

이번 주 명화 편지입니다.


그림을 천천히 꼼꼼하게 봐주세요.

바쁜 3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바쁜 4월입니다. 이 번주 이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늦은 오후 풀을 뜯고 돌아가는 저 양들을 따라 집에 돌아가 쉬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복슬복슬한 엉덩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뭉글뭉글 해졌습니다.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 저는 길 잃은 사람이 되었고, 양 떼 무리를 이끌고 가는 양치기를 따라가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그림이었다면 오히려 정 반대의 느낌이 들었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안 있어 해가 질 것 같은 분위기와 색감이 저를 집으로 이끌었던 거 같아요. 바쁜 일상을 마치고 쉼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일 테지요. 같은 교사로서, 부모로서, 비슷한 삶을 살고 계시는 명화질문연구소 소모임 선생님들께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여 이번 주 그림 선물로 공유했습니다.



명화질문연구소 선생님들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A선생님: 양 떼를 이끌고 가는 양치기 그림이네요. 새끼 양들도 더러 있는데 양들이 전체적으로 북슬북슬하니 곧 깎을 시기가 돌아오겠어요. 저는 색감을 보기도 하고 앞에 마을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이제 막 올라가서 풀을 뜯으러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양치기 개가 없네요. 왜 양치기 개를 작가가 그리지 않았는지도 궁금합니다. 뒤에 행렬이 더 있는 것일까요? 뭔가 따스한 그림체 같기도 하고 톤다운된 느낌이 어둑어둑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B선생님: 양 떼는 지금 누굴 보고 가는 것일까?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그런 게 보이네요. 저 양들이 좋은 리더를 보고, 따라가야 잘 갈 텐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힘들지만 오늘 하루도 좋은 리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한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C선생님: 개의 시선이라고 생각하니 진짜 그런 것도 같네요!! 저는 처음에 그림을 봤을 때 어린양이 눈에 들어왔어요. 다른 양들이 흐릿하게 채색된 데 비해 어린양은 선명하게 강조된 듯 눈에 들어왔거든요.^^ 어른들과 형들을 따라가려고 애쓰지만 아직 뒤처지고 힘겨워하는 아이들의 모습같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1학년 담임인데 학교라는 공간에 처음 발을 내디뎌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했을 아이들 모습도 떠오르네요. ^^ 앞에 어떤 양치기와 선배들이 있느냐에 따라 따라가는 양들의 방향과 속도도 달라질 것 같아요. 아이들의 교사로서, 누군가의 선배로서 방향을 잘 잡아야 어린양들을 이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D선생님: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 같아요. 양의 털이 많이 자라 무거워 보여요. 마치 학교와 가정에서 해야 할 일들이 벅차게 무거운 요즘 저의 모습 같아요. 저 길 끝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양치기가 인도하는 길은 양들을 위한 길이 맞나요? 다가올 추위를 대비해 양 털이 잘려나갈 수도... 명화를 보며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선생님: 저는 우선 그림을 보면서 그림의 색감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색감을 통해 계절 또는 시간을 알 수 있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해가 지고 있는 가을의 느낌이 났습니다. 해가 보이지는 않지만 왠지 브라운 톤이 일몰의 느낌이 났다고 해야 할까요? 다음으로 중간 맨 뒤에 있는 어린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양들과 다르게 더욱 왜소해 보여서 왠지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왠지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왼쪽 위에 있는 나무가 이유 없이 그리지는 않았겠다 싶어서 거기가 목적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매달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가 그림을 크게 보면서도 엄청 좁게 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따뜻한 느낌이 드는 그림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F선생님: 양치기의 모습과 교실에서의 제 모습이 겹쳐 보이네요. 빨리 잘 따라오는 아이들도 있고, 애타게 하는 아이들도 있고. 그래도 양치기의 존재 자체가 양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해 주는 것 같아요.


G선생님: 고1 딸과 대화 중 핸드폰을 열고 정보를 찾으려다 카톡 알람을 보고 이때다 싶어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고1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네요. 사실 요즘 내신에 대한 부담감으로 많이 힘들어해서 아이가 한국 교육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어요. 아이에겐 그냥 이 그림이 어떻게 보이냐, 첫인상 어떠냐고만 했는데 (명화하브루타는 처음) 아이는 첫인상이, 처형, 양들을 죽일 것 같다고 말했어요. 특히 양치기가 양들을 돌아보고 있는데 그게 무섭게 보이기도 한다고요. 또 저 멀리 나무가 보이는데 거기가 목적지인데 거기 가면 쉴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양치기가? 아니 양들이 아니 같이. 양들과 함께. 양들이 자유로워지나? 몰라 ~이렇게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고는 해맑게 방으로 들어가는데 저는 포근하고 따뜻한 이미지, 어린양들의 귀여운 이미지를 느꼈거든요. 아이의 대답이 살짝 충격이었고요. 아이가 느끼는 압박감, 부담감이 느껴졌습니다. 공부한다고 중학생 딸과 많은 추억 쌓지도 못했는데 3년을 또 공부에 매여있어야 한다 생각하니 저도 빨리 저 목적지에 도착해 쉼과 자유를 찾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나저나 이렇게 가족 하브루타 미션을.. 1타 2피로 하면 안 되겠죠? 아참 옆에 있던 6살 동생은 "양들이 술래잡기하는 거 같아~~"라고 했어요.


H선생님: 건조하고 쓸쓸한 느낌이에요. 제 정서가 메말랐을까요? 양의 털과 풀의 텍스쳐 느낌이 같게 느껴지고, 양의 색과 풀의 색으로 구분되는 느낌으로 둘 다 손대면 북슬북슬할 것 같아요. 언덕 위에 휑하니 왼쪽에 달랑 하나 무언가 있는데 나무일까, 집일까 왜 하나만 있을까... 그래서인지 무엇인지 연상되지 않네요. 언덕 쪽으로 가고 있는 양들은 고개를 넘는지 가다가 옆으로 돌아가서 언덕을 넘지 않을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네요. 양들도 그저 익숙한 루틴으로 조용히 걸어가는 느낌이라 뒷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지네요. 색채보다 밝고 어두음으로 더 많이 느껴서 차분해집니다.


I선생님: 그림을 아직 어떤 순서로 어떤 포인트씩 집중해서 봐야 하는지는 잘 몰라 선생님들 감상을 보며 눈팅만 하며 감상글을 보고 공감해 왔는데요. 선생님이 수업에서 하시는 방식 따라 첫인상, 떠오른 단어, 제목, 궁금한 점 생각하면서 보게 되니 쓰고 싶은 말들이 갑자기 많아집니다. 저는 오늘 좋은 날씨 벚꽃 구경을 하고 와서 그런지 아니면 그림이 선명함과 반대되는 붓터치? 블러처리? 뭉개있어서 그런지 더 포근하고 따듯한 오후 해 질 녘의 들판에서의 양 떼모습 같았어요. 떠오른 단어는 < 함께 가고 스스로 서자 >라는 매번 쓰던 제 학교급훈이 떠올랐습니다. 그림도 양들이 떼로 가지만 자세히 보면 각자 각자 따로 가거든요. 양들이 떼로 모여 다니지만 털들끼리 붙어있는 걸 싫어한다는데 그림도 그 특징을 잘 관찰해서 표현한 것 같아요. 사람도 사회 속에 함께 있고는 싶지만 또 혼자 있고도 싶은 그런 마음도 공감되었고요.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은 양과 양치기의 앞모습이었습니다. 지난 수업에서 뒷모습을 봐서 앞모습이 더 궁금한 것처럼 양치기와 양들의 전경도 궁금합니다


그림 이야기


무리의 귀한 <The Return of the Flock, laren>, 안톤 마우베, 1886~1887년경, 캔버스에 유체, 필라델피아 미술관

안톤 마우베(1838~1888)

안톤 루돌프 마우베는 네덜란드 사실주의 화가입니다. 프랑스 바르비종파 화가들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구현하고 있었던 오스테르베이크에 정기적으로 머물며 자연 속으로 들어가 인상을 기록했고, 야외에서 그리는 기법을 연습했습니다. 1870년대 이후 헤이그와 라렌 지역에 정착하며 몽환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풍경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은은한 빛과 대기의 묘사가 특징입니다.


마우베는 1871년 반 고흐의 외사촌 동생인 아리에터(젯) 카르벤튀스와 결혼했고, 반 고흐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흐가 자신의 작업실에 머물며 유화와 수채화를 배울 수 있도록 격려했으며, 작업실을 마련할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둘의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고흐는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듣고 자신의 작품 중 하나를 마우베에게 헌정하기도 했습니다. 활짝 핀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에서 고흐의 마음이 느껴지시나요?

<마우베의 추억>, 빈센트 반 고흐, 1888년 3월 30일 경, 캔버스에 유채


마우베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은 들판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특히 양 떼를 그린 그림들은 미국 후원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다가오는 양들'과 '떠나가는 양들' 장면 사이에 가격 차이가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이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미술 시장 특히 미국 수집가들의 심리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겠지요.


자. 다음은 마우베의 다가오는 양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똑같은 양 떼인데 뒷모습을 보는 것과 앞모습을 보는 것의 느낌이 많이 다르지요. 같은 대상이라도 다가옴 혹은 떠남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그림은 둘 중 어느 것인가요?

풍경 속의 양 Sheep in Landscape, 안톤 마우베, 캔버스에 유채, 1880년경, USC Fisher Museum of Art, Los Angeles


미국 수집가들은 관람자를 향해 다가오는 양 떼 장면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이에 따라 작품 간 가격 차이가 발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는 오히려 다가오는 양들이 조금 더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떠나는 양들은 나를 남겨두고 떠난다는 느낌보다 함께 떠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일까요. 선생님들의 다양한 감상평으로 저의 생각도 더 깊어지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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