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은 김홍도의 풍속화첩 그림 중 하나이다. 대부분 서민의 일상생활을 그린 그림들인 '풍속' 화첩에 '그림 감상'이라는 소재가 들어간 이유는 뭘까?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18세기에 그림을 감상하는 풍속이 널리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선비들의 문화 또한 조선 후기 생활상의 한 단면임을 보여주고자 한 김홍도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림 속 등장인물은 옷차림으로 보아 유생들이고, 가운데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그림의 주인인 듯하다. 이 그림에서 인물들이 함께 모여 그림을 감상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듯한 모습은 하브루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학습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그림에 대한 자기 생각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을 들으며 새로운 시각을 배우고 확장하고 있는 중은 아니었을까? 함께 모여 그림을 감상하며 서로의 사고를 발전시키는 이런 아름다운 풍속은 왜 현대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일까?
그래서 김혜경의 『하브루타 부모 수업』에서 그림으로도 하브루타가 가능하다는 글을 발견하고 더 반갑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하브루타를 학습법으로만 알고 있다가 그림 하브루타를 만나는 순간 그림 감상 수업에 대한 욕구가 넘쳐흘렀다.
'그림 감상'과 하브루타가 만나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풍성한 상상력을 키우는 대화를 할 수 있다. <중략> 아이들은 글을 보고 질문을 만들 때보다 그림을 보고 질문을 만들 때 훨씬 더 재미있어한다. 질문을 만드는 시간은 그림을 더 자세히 보고, 그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키우는 시간이다. (김혜경 2017)
하브루타와 그림 감상의 콜라보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가족 하브루타 시간에 그림 하브루타를 바로 적용했다. 책을 읽었을 당시 필자의 가족은 주 1회 독서 하브루타를 실천하는 중이었기에 자연스러운 접목이 가능했다. 책을 읽어야 하는 부담은 적으면서 재미있고, 깊이 있는 사고 확장이 가능한 그림 하브루타는 가족의 화목을 도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 독서 모임 하브루타 시간에는 엉뚱한 질문, 엉뚱한 답변들이 나와 웃고 떠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던 기억도 있다. 그림감상과 하브루타의 첫 만남에 대한 개인적 경험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그럼, 하브루타란 무엇이며, 어떻게 진행하는 것인지 알아보자.
하브루타(Havruta)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으로, 두 사람이 짝을 지어 토론과 논쟁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진리를 찾아가는 방법이다. 친구를 뜻하는 하베르(Haver)에서 유래하였으며, 3명 이상의 학생이 함께 할 때는 차부라(chavurah)라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 하브루타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2010년대 중반부터이다. 주입식 교육과 경쟁 중심의 학습 방식에서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의 필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하브루타 교육을 국내에 알리고 확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분 중에 전성수 교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많은 저술과 강연 활동, 다양한 수업 모형 개발을 통해 하브루타를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제시하였고,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필자도 그의 책을 통해 유대인 교육과 하브루타를 처음 접했다. 이 책은 그의 연구 사례를 기본으로 삼았음을 밝힌다.
전성수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것, 교사와 학생이 질문으로 수업하는 것, 학생끼리 짝을 지어 가르치며 토론하는 것 등 모두가 하브루타 학습법이라고 하였다. 그가 개발해 『최고의 공부법』에 제시한 하브루타 수업 모형은 다음과 같다.
질문 중심 하브루타
논쟁 중심 하브루타
비교 중심 하브루타
친구 가르치기 하브루타
문제 만들기 하브루타
그의 하브루타 수업 모형 중 그림 감상에 활용할 수 있는 ‘질문 중심 하브루타 학습법’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수업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질문 중심 하브루타 학습법은 학생들이 질문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탐구하고,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하는 교육 방법이다. 이 방식은 하브루타의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하면서,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학습법은 텍스트를 읽고 질문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를 그림 감상에 적용한다면 텍스트는 그림이 될 것이다. 학생들은 짝을 이루어 서로의 질문에 관해 이야기 나눈다. 질문에 대한 자기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을 비교하며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도록 노력해야 한다. 짝과 토론 후 가장 좋은 질문 하나를 선택한다. 그 질문으로 모둠 토론을 하고, 다시 최고의 질문을 뽑는다. 뽑은 질문과 토론 내용을 발표하고 공유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관점을 듣고 전체적인 이해를 높인다. 그 뒤 교사와 전체 쉬우르를 한다. 쉬우르란 수업 또는 강의를 뜻하는 히브리어로 수업 마지막 단계에 선생님과 함께 배운 것을 총정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두 개의 상반된 그림 감상을 할 때는 어떤 수업모형이 어울릴까? 이때 참고할 수 있는 수업모형은 비교 중심 하브루타 학습 모형이다.
이 학습법은 텍스트에서 비교 대상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비교 대상에 대해 자세하게 조사하고 질문을 만든 다음, 그 질문을 가지고 비교하는 대상에 대해 토론하는 수업이다. 비교를 통해 차이점과 유사점을 논의하면서 창의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짝과 논의해 고른 질문으로 모둠 토론을 하고, 가장 좋은 질문을 고른 후 집중 토론을 한다. 그 뒤의 흐름은 질문 중심 학습법과 동일하다.
Kent(2010)는 하브루타 학습법이 학습자 두 사람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고, 둘 사이에 텍스트가 있을 때 이루어지게 되므로 둘이 아닌 셋의 상호작용 활동이라고 하였다. Kent의 말을 그림 하브루타에 적용해 보면 그림 하브루타는 그림을 이해하여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능력, 다른 사람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며, '학습자인 너와 나, 그리고그 사이에 있는 그림과의 상호작용 활동이다’라고 할 수 있다.
그림 하브루타를 통해 그림을 감상하면 관람자들이 서로의 의견과 질문을 교환함으로써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통해 작품을 다각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한다. 또한, 하브루타는 질문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므로 그림을 감상할 때 비판적 사고가 촉진된다. 관람자는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자신의 견해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질문을 통해 작품과의 개인적 경험을 강화하게 되며, 감상 과정에서의 감정적 경험이 더욱 풍부해진다. 결론적으로 그림 감상법과 하브루타의 만남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서, 그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개인의 감정적 연결을 가능하게 하며 더 풍부한 감상 경험을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