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스럽게도 봄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따뜻한 봄기운을 맞이합니다. 이번 주 선데이 에세이 주제는 '봄'이었습니다. 요즘 김이나 작가의 <보통의 언어들>을 읽고 있는데요. 단어를 공감각적으로 분석하는 접근방식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특히, 단어의 발음 특성과 감정을 연결한 글은 신선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글 초반에 한 번 시도해 보았습니다. 따라 하며 배우는 맛이 있으니까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코 봄이다. 여름은 덥고, 가을은 쓸쓸하고, 겨울은 춥고 스산해서 결국 봄이다. 봄은 '보다(見)'의 명사형과 모양이 같아 '봄을 바라봄'과 같이 말놀이를 할 수 있어 재미있다. 실제로 '보다'의 명사형에서 '봄(春)'의 어원을 찾을 수 있다는 설도 있으니 말놀이만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하겠다. 봄은 짧고 경쾌하게 발음하는 것도 좋지만 '보옴'이라고 부르는 것이 다정하게 느껴져 더 좋다. 단어를 마무리하는 입이 예쁘게 오므려져서 귀엽다. 이런 봄에게 야속한 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너무 짧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점 더 짧아지고 있어 참 속상하다.
결혼 이후에도 봄은 어김없이 계속 찾아왔지만 나는 그 사랑하는 봄을 느끼고 만끽할 여유가 없었다.
"꽃이 폈구나, 꽃이 지는구나, 봄이 끝났구나"
를 반복하며 봄을 진정으로 바라볼 여유 없이 한 해 한 해를 의무처럼 보내버렸다. 물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꽃놀이 하러 가서 사진을 찍어주느라 봄과 함께 있었음에도 말이다. 봄보다는 예쁜 내 새끼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봄이 다시 내 마음에 들어온 건 2년 전쯤부터인 것 같다. 난 원래 연둣빛과 초록색 시리즈들을 좋아하는 데 이 색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감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이 내려준 축복의 색이 눈 한가득 들어오면 그렇게 충만할 수가 없다. 게다가 봄은 노란색, 흰색, 크림색, 연분홍색, 꽃분홍색 등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색 공부를 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중년 세대들이 SNS 프로필을 꽃 사진으로 바꾸고 왜 그렇게 꽃 사진을 찍어댔는지, 꽃에 심취했는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인생의 가을 길을 걷고 있는 나는 화려한 단풍의 시간에 들어와 있지만 곧 낙엽이 되어 떨어질 것을 예감한다. 내 인생의 봄이 언제였던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 봄의 근사함과 소중함인 것 같다. 그때가 아쉽고 그립다. 조금 더 즐길걸, 조금 더 행복할걸, 조금 더 웃고 지낼걸.....
그렇다고 해서 나의 가을이 불행한 건 아니다. 인생의 봄은 지나갔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봄을 해마다 느끼게 해주는 자연과 함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나는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이,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에 산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글 서두에 단점을 이야기한 다른 계절들에게 사과한다. 여름은 세상의 모든 생명체의 싱그러움과 초록의 절정이 있고 좋고, 가을은 화려하면서도 정열적인 붉은색 잔치를 볼 수 있어서 좋고, 겨울은 순수한 순백색의 눈을 볼 수 있어 감사하다. 각 계절의 장점을 경험해 볼 수 있기에 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
긴 겨울을 뚫고 나온 새싹으로, 꽃잎의 예쁜 색깔로 생명의 시작과 기운을 전해주는 설레는 봄, 이 나이를 먹어도 가슴이 빵 터질 듯 봄바람을 넣어주어 고맙다. 봄아!
선생님들의 봄은 음식으로, 3월의 학생에 대한 기억으로, 자목련에 대한 감동으로, 지금은 남편이 된 애인이 사준 벚꽃 피는 날 솜사탕으로 추억되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아름다운 봄을 공유하며 우리는 또 풍성해진 봄의 추억에 흠뻑 빠져보았습니다. 봄이 만들어내는 색깔을 함께 감상하고 싶어 글보다는 사진을 많이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