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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Dec 26. 2019

너무 의욕이 앞서선 곤란해

아이와 주말 나들이

일하는 엄마에게 주말은 어떤 의미일까? 쉬는 날이기도 하지만 주중에 미뤄둔 집안일, 아이 돌봄을 몰아서 하는 집중 가사 노동일이라고 할 수 있다.

 토요일 아침부터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 출근할 때보다 1시간 늦게 일어나는 게 내가 누릴 수 있는 주말의 최대 여유이다.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집안을 빛의 속도로 정리한다. 이 시간을 놓치면 집안 청소는 다음 주로 미뤄질 수 있으니 꼭 부지런히 움직인다. 아이들에게도 일정을 브리핑하며 너희가 제때 준비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으니 도와달라는 협조를 부탁한다.


 우리 아이들은 꽃같이 귀엽고 예쁜 6세, 7세 연년생 자매다. 신랑이 바쁜 덕에 독점 육아를 해서 아이들이 내가 정해놓은 규칙과 시스템을 잘 따르는 편이고 엄마가 힘들면 본인들이 힘들어진다는 걸 벌써 터득한 터라 외출 준비 시 엄마의 분주함이 적은 편이다.

 

사실 신랑은 1년 반 정도 부재중이었다. 회사 업무 차 해외에서 따로 지내고 있었기에 주말 육아도 온전히 내 몫이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나 역시 일하고 있던 때라 모든 게 버거웠다. 처음에는 너무 막막했다. 주말마다 차를 타고 이동거리 가리지 않고 놀러 다니던 우리였는데 나 혼자 아이 둘 데리고 운전해 갈 만한 곳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먼 거리는 1년간 포기하고 가까운 곳만 다니자. 나도 주말에 쉴 시간이 필요한데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며 적당한 거리의 가볼만한 곳을 날마다 찾았다.


만만한 공원이 시작이었다. 집 근처 공원은 싹 다 돌고 식물원도 자주 갔다. 근처에 아트센터가 있어 그곳에서 하는 어린이 공연도 물론 자주 봤고. 나는 블로그에 ‘아이들과 가볼만한 곳’ ‘아이와 주말 나들이’등 열심히 태그를 달아 주말마다 누구에게 뒤질세라 가열차게 포스팅을 했었는데 이 포스팅을 위해 나들이를 가는 건지 나들이를 다녀온 결과로 포스팅을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신랑이 부재중인 시기엔 그 정도의 열심히 생기지 않았고 에너지도 없었다. 정말 아이들과 바람 쐬는 정도로만 나들이를 다녀왔고 다녀와서는 꼭 낮잠을 잤다. 가까운 거리였는데도 서로 긴장을 많이 했는지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우리는 잠을 자고 있었다. 

뭔가 심심하고 아쉬운 일정이긴 했지만 집에 돌아와 편하게 집밥을 먹고 모두가 낮잠을 자는 시간은 어느 때보다 편하고 만족스러웠다. 여자 셋만의 주말 나들이 루틴이 생겼고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계획을 짜다 보니 나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때로는 꼭 야외 나들이가 아녀도 좋았다. 

 

예를 들면, 한적한 카페. 회사가 밀집된 곳의 스타벅스는 주말이면 한적했다. 늦은 아침, 또는 늦은 오후 널찍하고 사람 없는 스타벅스에서 달콤한 케이크와 각자 원하는 음료, 나는 커피 한잔으로 우아한 시간도 누렸는데 우리 아이들이 벌써 여대생처럼 느껴졌다. 좀 더 커서 정말 친구처럼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행복해졌다. 이미 눈에 보이는 행복에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여대생처럼 느껴지는 이 행복에는 반전이 있는데 케이크와 음료 두 잔, 커피 한잔이면 웬만한 밥값보다 비싸다는 거? 그래서 비가 오거나 너무 피곤한 주말 가끔 갔기에 더 소중했는지 모른다.


주중에 일하느라 보지 못한 아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터질까 눌릴까 제대로 만지지도 못한 아이들의 작은 얼굴은 어느새 잘 여물어진 밤 같기도 하고 탱탱하고 동그란 공처럼 단단해진 느낌이기도 했다. 여전히 아이지만 너무 훌쩍 커버린 것 같아 신기하고 이상했다. 일을 하더라도 매일 아이들 얼굴을 보는데 왜 내가 무언가 놓치는 건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주말 나들이 후 나는 집에서 아이들 모습을 실컷 봤다. 

평소에 어떤 놀이를 하는지, 심심할 땐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지 이런 것들은 집에서 가만 누워 편하게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는 자주 엄마의 상황을 이야기해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른다. 나도 어린 시절, 엄마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줘야 하는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엄마에게 서운함을 토로한 기억이 많은데 나의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틈만 나면 설명한다. 

“엄마는 운전이 무섭더라고. 잘 못한다고 무서운 아저씨가 빵빵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주차할 곳이 많지 않으니 주차도 힘들고.” 

 혼자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꽤 고단하고 힘든 일이라는 것도 빼놓지 않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자기들끼리 내 말을 똑같이 따라 반복하며 서로를 가르쳤다. 한 명씩 화장실 다녀오느라 외출하면 화장실 다녀온 기억밖에 없는 사태가 생기지 않게 서로 알아서 챙겼고 간식도 미리 준비해 정한 곳에서 먹으며 번잡함이 줄도록 아이들이 도왔다. 

 신랑의 부재중인 시간 사실 나보다 아이들이 더 고생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아이들이 애써준 부분이 많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이 아닌 서로의 힘이 되어 주었기에 나는 그 시간을 떠올리면 그저 고맙고 행복한지 모른다. 기억은 늘 미화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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