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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an 23. 2020

쉬는데도 필요한 게 많습니다.

유급휴직의 기간이 지나고 무급휴직을 써야 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맞벌이에서 외벌이의 전환은 소비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 아이 교육비와 어느 정도의 여유자금을 마련해놓고 휴직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예상 자금이었고 따로 떼어둔 돈은 목적이 정해져 있는 자금이었기에 내가 이전에 얼마를 벌었던지 상관없이 외벌이가 된다는 것만으로 생활에 긴장감이 생겼다.


 월급을 받으면 이전부터 사야지 벼르고 있었던 내 스타일의 옷을 사는 즐거움을 나는 가장 먼저 포기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이것은 1순위 감축대상이 되는 게 당연했다. 애초에 나의 휴직은 아이들 보육과 나의 내적 성장에 맞춰져 있으니 내 스타일의 옷 따위는 전혀 우선순위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시장에는 타깃이 다른 세분화 시장이 존재한다. 나는 출근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 아이 두 명을 매일 같은 시간, 유치원에 등 하원을 시키는 일정한 일과가 생겼고 그것은 업무와 같아서 나 같은 엄마들을 위한 업무복 일명 등 하원 룩이 필요해졌다.


 출근할 때 입는 옷과 유치원을 왔다 갔다 할 때 입는 옷은 완전히 다른 시장 상품이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이 등 하원을 시킬 때 입는 옷으로 호환되는 것은 절대로 불가했다.

 한동안은 임신했을 때도 입었고 집에 있을 때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일명 홈웨어를 입고 왔다 갔다 했으나 엄마들을 너무 많이 마주치니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마다 나 자신이 너무 쪼그라들어 엄마들 그리고 선생님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서둘러 아이들을 챙겨 집으로 도망치는 나를 보았다. 이건 외모에 신경 쓰는 것으로 내면의 자존감을 대신한다는 지적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데 셔틀을 타지 않고 엄마가 직접 등 하원을 시키는 것은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잠깐이라도 직접 보며 선생님 또는 엄마들과 의견을 교류하는, 말하자면 아이의 사회생활에 엄마로서 참여하는 나의 사회생활의 연장인 것이었다.


 결론은 이전의 내 옷이 아닌 다른 새 옷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등 하원 룩을 갖추는 것은 직장에 어울리는 옷을 갖추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했다. 블라우스, 치마, 정장 바지, 재킷, 원피스 등 쓰임이 다른 옷을 각기 구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아이템만 사면 끝나는 그런 간단한 과정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어려웠는데 집에 있다가 데리러 오는 게 분명하지만 늘어진 느낌이 없고 반듯한 이미지를 주는 일명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 룩을 추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심히 다른 엄마들 옷을 참고하며 사야 하는 옷들을 리스트 업했다. 편안해 보이는 롱치마(이지만 전혀 늘어남과 보풀이 없는 치마), 그에 어울리는 루즈한 니트 또는 발랄한 후드 티(흡사 대학생 같지만 대학생의 후드 티와는 다르니 각별히 신경 써서 골라야 한다), 플리츠 바지 또는 니트 바지(이건 나에게 도저히 어울리지 않아서 구비하지 않았다.), 정말 만만한 원피스(나는 주로 원피스로 구비했다. 싸면서 아이템 하나로 상하의를 책임지니 그야말로 만만했다), 무심하게 믹스 매치한 티셔츠와 편해 보이지만 편하지 않은 면치마 등 꾸안꾸 룩의 세계는 끝이 없었다.


 이렇게 시장조사를 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구매하는 것은 내가 돈을 벌 때는 참 즐거운 취미였으나 휴직 후 이런 식의 지출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에 그다지 즐거운 과정이 아니었다. 그래도 정말로 사야 하는 당위성이 생긴 것은 등 하원 때뿐 아니라 휴직을 하고 아이의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엄마 동반 모임에 꽤 많이 참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아이의 사회생활이란 주로 하원 후 키즈카페 가기, 간식 싸와서 근처 카페 또는 도서관에서 놀기, 놀이터 육아, 매월 있는 생일파티 등등 만들자면 끝이 없었는데 그에 따른 비용 지출이 동반 상승하게 되었다.

 일하면서 신경 써주지 못한 부분을 앞으로 신경 쓰겠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돈을 더 쓰게 되는 부분임을 알게 되었다. 소소하다면 소소하지만 아이가 둘이다 보니 무시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어서 돈을 쓸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이것조차 휴직 초반에 열심을 내다보니 더 힘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정리되어 갔다.)  


 가정주부라면 당연히 모든 지출에 신경을 쓰면서 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데 워킹맘은 그 부분에서 조금 무뎠던 것 같다. 이제는 모든 지출에 한번쯤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밖에서 마시는 커피를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다른 부분에서 더 줄여야 했다.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에 따르는 ㅅㅂ비용을 줄였지만 또 다른 사회생활에 따르는 비용이 발생했으니 남은 줄일 구석이라곤 외식비뿐이었다.

 신혼 때 이후 그렇게 줄이려고 노력했던 부분이 외식비였는데 정말 줄여지지 않았다. 누구나 가는 맛집은 꼭 가야 했고 홍콩 어디에서 유행하는, 미국 어디에서 상륙한, 이런 곳들을 블로거인 나는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었기에 주말마다 방문하다 보면 하루 두 끼 (인간적으로 아침은 집에서), 이틀이니 4끼를 외식하던 때의 외식비는 말해 무엇하랴.


 정말 줄여지지 않았던 외식비는 돈이 없으니 생각보다 허무하게 어려움 없이 줄여졌다.

무조건 아침저녁은 집에서 먹었고 점심은 외출하는 곳에 따라 외식을 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도서관 구내식당, 분식집으로 격을 낮추었는데 이것도 오히려 아이들과 먹기에 편해서 장점이 많았다. 사람은 정말 적응의 동물이기도 하고 의지력이 있는 동물이어서 그런지 어쨌든 외식분야에서는 멘털 승리라고 할 만큼 소박한 외식도 만족하며 합리화할 수 있었다.


 어디에 집중하느냐, 어느 부분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씀씀이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자 조금씩 축소된 가정경제에 적응이 됐다. 맞벌이이신 분들은 소비를 줄이기가 어려워 휴직을 어려워하는데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맞벌이에서 외벌이로의 전환을 한 번씩 해보시는 걸 추천드린다. 쉬면서 육아도 하고 절약도 할 수 있으니 일석 삼조 아니 그 이상이다. 물론 경제적 활동을 쉰다는 것은 수입이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니 절약이라고 할 수 없지만 절약하는 습관을 기른다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절대적인 수입을 늘리는 것보다 꽤 괜찮은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이렇듯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소비를 하기도 했고 여태껏 이루지 못한 부분에서 절약을 하기도 했다. 역시 인생에서 일방적인 마이너스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어렵던 외식비 줄이기를 성공했으니 다음에 복직하면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겠지?라는 즐거운 기대도 해본다. 누군가 꼭 그렇지는 않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우선은 기대해보는 것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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