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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an 30. 2020

Mommy, How are you today?

엄마, 화났어요?

언제부턴가 우리 6살 귀요미 둘째가 뜬금없는 순간에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Mommy, How are you today?”

갑자기 영어 실력을 자랑하는 건가? 아니면 배운 영어가 이것밖에 생각이 안 나는 건가? 나는 의도를 모르겠는 이 물음에 당황했지만 답을 해야 했다. 음..‘I’m fine...이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둘째는 두 번째 문장을 내뱉었다.

“Angry?”

아. 파악 완료.

엄마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자 아이가 눈치를 살피며 물어 온 것이다. 역시 둘째의 눈치는 아무리 첫째가 똑똑해도 따라올 수 없는 능력이다.

“아니. 엄마 화난 것 같아? 그냥 할 일이 많으니까 조금 답답해지긴 했어. 하지만 너희들 잘못도 아니고 너희에게 화난 건 아냐.”라고 아이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왜 영어로 물었어?”

“음. 그냥. 영어로 물으면 재밌어서 웃게 되잖아?!”


마음이 쿵.


둘째의 지혜에 감탄을 해야 할지 엄마가 아이의 마음을 살피지 못함을 반성해야 할지.

만약 둘째가 엄마 기분 어떠냐고 물었다면 나는 단번에 ‘엄마 화났어!’ 또는 ‘엄마 바쁜데?’라고 한 문장 던지고 내가 해야 하는 집안일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을지 모른다.

영어로 질문을 받으니 왜 이 아이가 갑자기 영어를 하는지 궁금한 동시에 작고 귀여운 얼굴로 영어를 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말의 즉각적인 대답 대신 적절한 단어를 선정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 보니 퉁명스러운 문장이 아닌 정제된 문장을 구사하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수없이 날카로운 말을 내던졌길래, 상대가 약자라는 이유로 얼마나 함부로 차가운 반응을 했길래, 아이는 웃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지혜를 발휘한 걸까?


이후로도 아이는 종종 나에게 영어로 나의 기분을 물었다.

“Mommy, how are you today?”

나는 이 문장을 신호로 여겼다. 내가 또 무서운 얼굴로 아이들을 지배하고 있구나.

아이가 상황을 전환시키기 바라는구나.라고 생각해 마음을 정리하고 웃어 보였다.

나에게 생각할 틈을 주어 감사했다.


“이곳에 있는 석물은 수백 년 이상 된 것들이 대부분이야. 참, 이런 탑을 만들 땐 묘한 틈을 줘야 해.”
“네? 틈이라고 하셨나요?”
“그래, 탑이 너무 빽빽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아. 어디 탑만 그렇겠나. 뭐든 틈이 있어야 튼튼한 법이지...”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이 부분을 보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나는 실제로 틈이 많은 사람인데 겉으로는(사회적으로, 업무적으로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틈이 잘 보이지 않는 편이다. 아니 어쩌면 친한 사람들과도 대외적인 부분, 공식적인 부분에서는 모두 잘 해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꽤 열심히 시간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여러 가지를 다 잘 해내야 효율성 있다고 스스로도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틈이 없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의미다.

늘 하던 집안일을 하면서도 어느 한마디의 말이 갑자기 큰 바윗덩어리처럼 굴러와 나를 무너뜨리게도 할 수 있고 사소한 한마디가 가슴의 비수가 되어 피가 철철 날 수도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꼭 필요한 틈이었다.

완벽하게 정리된 집안, 무엇이든 잘 해내는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일할 때나 쉴 때나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과연 누구에게?) 아이들과의 대화도 뒷전으로 하고 집안일 머신으로 집중하고 있는 나에게 둘째는 영어 한 문장으로 파고들었다.


엄마, 우리 얼굴 보고 웃고 싶어서 휴직한 거 아니었나요?라고 묻는 듯했다.

1분 1초도 허투루 사용하고 싶지 않아서 벽돌 하나하나 딱 맞춰 기반을 쌓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갑자기 ‘그런데 무엇을 짓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한 것 같았다.

‘네? 안보이시나요? 지금 열심히 벽돌을 쌓고 있잖아요. 쉬지도 않고 집중해서 쌓고 있는데 보면 모르시나요?’ 어리석은 순간들을 돌아본다.


나는 마음을 잘 챙겨 둘째에게 대답한다.

“I’m happy.”

“Happy? Are you happy?”

“Yes! I’m happy. Becaue of... You!”

갑작스러운 행복타임이라니. 둘째는 안 믿는 눈치였으나 너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니 눈빛이 반짝반짝하다.

분명 엄마는 안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었는데 행복하다니 뭔가 이상하긴 하나 말하는 지금 엄마 눈은 웃고 있으니 아이는 안심했다. 늘 저런 닭살 돋는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다. 피곤하다고도 하고 조금 화가 났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 공간을 둔다. 틈을 만든다. 날카로운 감정이 조금 머무를 수 있게 아이가 공간을 만들어줬다.


아이를 온전히 집중해 바라보고 싶어서 휴직을 하게 됐는데 아이가 나를 바라봐 주고 있다. 엄마의 빡빡한 타임 테이블에 아이는 비집고 들어온다. 하지만 그 덕에 여유가 생긴다. 아이는 나를 방해하는 존재가 아닌 나를 좀 더 튼튼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틈이자 숨길이다. 생글생글 웃는 너의 얼굴을 떠올리며 엄마는 더 멋진 사람이 되기로 결심해. 너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그 경험을 잘 정리해 너에게 도전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바라기는 너와 나 우리가 서로에게 늘 틈이 되어주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는 사이가 되길, 단단한 벽을 자랑삼아 높이 쌓아 올려 결국 멀어지는 사이가 아닌 언제든 넘어 다닐 수 있는 바람 길이 나있는 정겨운 돌담 같은 사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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