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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밍블 Oct 31. 2021

어떤 글을 써야 하나요?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

얼마 전 제9회 브런치 북 응모를 마쳤다. 지난주 함께 글 쓰는 친구들과 응모를 완료하고 아쉬움은 없는지, 마치고 난 마음은 어떤지를 나눴다. “아, 저는 특별한 감정이 없는데요? 브런치 북 응모를 세 번 정도 했지만 수상 근처에도 가지 못하면서 오히려 브런치 북이 채워질 때마다 브런치 북 개수만 채우는 것 같아 의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때도 있었거든요. ^^;” 자조적인 내용의 소감이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처음 응모했을 땐 나도 이렇게 출간 작가가 될지 모르겠다는 기대를 잔뜩 했었다. 내 글이 전국에 뿌려지면 혹시 누군가가 마음 다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건 아닌지 특정인이 바로 떠오르는 건 아닐지 별걱정을 다 하며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었다. 그리고 발표날까지 시간이 그렇게 느리게 갔다. 수상자에게는 별도 연락이 온다는데 미리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 수상과 거리가 멀다는 증거일 텐데도 발표 당일까지 수시로 브런치를 들락거렸었다. 같은 경험을 몇 번 더 하다 보니 아, 브런치에서 특별히 내 글을 주목하고 있는 건 아니구나. 출간이 오직 나를 위해 준비된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아니구나 하는 나 중심의 시선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조금이 아니라 어차피 써도 나만 보겠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는 오히려 아무 글이나 쓰기도 했다. 독자도, 목적도, 이유도, 의미도 없는 글.

      

검토에 검토를 거듭했던 글은 다시 보니 비문 투성이었다. 분명 A라는 주제로 시작한 글이었는데 A는 사라지고 맥없이 끝나버리기도 했다. 이래서 뽑히지 않았구나 자기반성을 하면서 내 실력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나를 폄하하지 않고 계속 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나를 인정하며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뒤가 같은 말인 거 안다. 그것이 나였다. 내가 제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 있게 시작했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에 풀 죽었고 쪼그라들었지만 어느새 바람을 넣어 다시 빵빵하게 부풀어 시작했다. 매번 같은 패턴이었지만 여기저기에 남겨진 내 글이 조금씩 단단해졌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브런치에서 알아주지 않아도, 출판사에서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안다는 마음이 생겼다. 내게 조금은 맥락이 생겼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읽은 책이 늘어났고 이해하는 폭이 깊어졌다. 나를 보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타인을 향한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변화라고 여겨졌다.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더 좋은 글을 쓸 것이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책을 출간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내 브런치 북을 찾아봤다. 분명 나는 아무 글이나 썼는데 내가 쓴 글의 주제는 두 가지였다.(물론 삭제한 브런치 북은 포함하지 않았다^^;;)일하는 엄마, 내가 읽은 책. 일하는 엄마가 읽은 책이며 책을 읽으며 일하는 나에 대한 글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엮은 브런치 북이 “균형 있는 일상을 위해 출근합니다.”였다. 여기에는 내가 출퇴근하며 읽은 책을 바탕으로 워킹맘으로 균형을 잡기 위한 나의 노력이 담겨있다. 꼭 워킹맘이 키워드가 된 것은 아니지만 지극히 소심하고 평범한 여성이 직장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다뤘다. 마냥 싫지도 그렇다고 천국도 아닌 직장생활. 하지만 내 삶의 균형을 이뤄주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하여. 아!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였구나. 그동안 나는 무슨 글을 쓸 수 있는지, 내가 써야 하는 글이 어떤 건지 몰라 헤맸었다. 그냥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무작정 쏟아냈다. 바보 같고 무식한 방법이지만 그렇게 100여 개의 글을 발행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내 이야기가 이것이었다는 걸.     


그래서 브런치 북에 응모하고 난 뒤의 마음이 특별한 기대감은 없지만 쓸쓸하지는 않다. 내가 내 이야기를 찾았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발견했으니까 말이다. 직장생활은 계속되고 균형을 잡기 위한 나의 노력 역시 끝나지 않았다. 혼자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해 좋아하는 작가들의 이야기에 여전히 귀 기울일 테고 흘러넘치는 마음을 글로 쏟아내겠지. 그것이 나의 이야기였다. 두 가지를 계속 쓸 생각이다. 더불어 쎃여가는 나의 두터운 마음에 대해서도, 글쓰기라는 오랜 친구에 대해서도 이제는 조금씩 할 말이 생겼다. 의미가 없어도, 목적이 없어도,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계속 써보시라고. 지금 당장 맥락을 찾지 못해도 그런 나를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언제든 굵은 체에 걸리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난 도무지 모르겠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난 그냥 지금이 좋아.’라는 이야기로 미적거려온 나도 발견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누구든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고. 그저 포기하지만 말자고. 그렇게 브런치 북 응모 소감을 마치겠다. (수상소감 아니고 응모 소감이라는 것이 죄송하지만 나는 오늘도 이렇게 부정적인 마음을 이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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