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였던 적도 있고 나뭇가지였던 적도 있어. 벌이었던 적도, 늑대였던 적도 있고. 별과 별 사이의 공허를 가득 메운 창공이 되어 그들의 숨결을 엮은 그물로 노래를 지은 적도 있지. 한때는 물고기였고 플랑크톤이었고 부엽토였어. 그 모든 게 다 나였어.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하나가 되어 얽혀 있었던 적이 있으면서도….그것들은 나의 전체가 아니야. 육체와 분리되어 있는 너희 편의 관계망은 생각만 해도 혐오스럽지만, 그런데도 레드, 나는 너를 보면서 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 이따금 고립되고 싶은 욕망이, 타인 없이 내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 보이거든. 그리고 내가 거듭 떠올리는 것은 내가 순수하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자아로 여기는 나다움이란….바로 허기야. 욕망이고, 갈망이기도 해. 무언가 소유하고 싶은, 무언가 되고 싶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부서졌다가 다시 모습을 갖추고 싶은, 그리고 다시 부셔졌다가 씻겨 흘러가고 싶은 갈망. 그건 어느 생태계에나 꼭 필요한 일부이지만 다른 이들은 그걸 불편하게 여겨. 채워지지 않는 그 무력감을. 어려운 문제야. 정말로 어려워.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전쟁에서 패배한다 中 블루의 편지)
나는 모범생이었던 적도 있고, 방송반 활동을 하며 백댄서 오빠들을 쫓아다닌 적도, 매일 노래방에서 살던 적도, 일드와 미드만 하루종일 보며 잉여인간에 대한 생각을 깊이 했던 때도 있다. 한때는 취준생이었고 공시생이었으며 성실한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은 어떤 소속없이 그저 매일을 규모있고 부지런하게 꾸려가는 보통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퇴사 후 책을 출간하며 그렇게 솔직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감상과그래서 나의 삶을 진정성있게 이해하게 됐다는 서로 다른 평가 속에서 살고 있기도 하다. 모든 이야기가 내게 영감이 되고 또 한편으로 모든 이야기가 내게 상처가 되기도 하는데 그런 긴 넋두리를 함께 할 수 있을까싶었다. 마주 앉아 나누기엔너무 길고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를 끝없이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데 이 책(당신들은 이렇게 시간전쟁에서 패배한다)의 레드와 블루가 서로에게 보낸 편지가 그랬다
지금 쓰고 있는, 의식의 흐름대로 쓴 엉망진창인 글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보면 분명 이불킥을 할테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의 마음을 적지 않으면, 처음부터 그럴 듯한 사람인 척 할 게 분명하기에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내 글에는 엉성하게 비어있거나 쓸데없이 가득 채워진 말들이 있는데 나는 그 공간을 그대로 둔다. 무엇으로 고치든 나중에 보면 역시나 당시 내가 집중했던 허영이, 내가 아닌 것들이 어색하게 덕지덕지 붙어 있을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의 글에도 그런 구멍을 여러개 남겨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망설임 없이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 소중한 라즈베리에게. 세상에 붉은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내가 이때껏 몰랐던 건 아니야. 단지 그것들이 나한테 초록이나 하양이나 금색보다 조금도 더 중요하지 않았던 것뿐이야. 지금은 온 세상이 꽃잎과 깃털과 조약돌과 피를 통해 나한테 노래하는 것 같아. 전에는 안 그랬다는 말이 아니야. 가든은 소리로는 도저히 표현 못 할 만큼 깊이 음악을 사랑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 노래가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해 들려와. (당신들은 이렇게 시간전쟁에서 패배한다 中 블루의 편지)
레드와 블루가 살아온 세계는 서로 다르다. 비록 적으로 만났지만 서로의 허기를, 외로움을 한 눈에 알아본 이들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나는 이 사랑을 자기애라고 본다. 나를 알아주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 비슷한 세계에서 얼추 같은 모양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내가 직장 동료들과 사이가 좋든 나쁘든 그들을 더 큰 감정으로까지 껴안게 되지 않는 이유는 세계가 비슷해서이다. 상대를 통해 새삼스럽게 나의 새로운 면을 본다거나 누군가의 어려움을 애달파하지 않는다. 그런데 블로그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 글을 쓰면서 친해진 사람, 투자 이야기를 통해 삶을 공유한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어쩌면 확대경을 들고 한 면만 보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와 다른 무엇이 더 아름답고 특별하고 사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마음으로 사랑했다. 특별하게 여겼고 마음을 많이 썼다. 과거형으로 쓰지만 여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와 닮은, 또는 나와 전혀 다른 면을 보며 매력을 느끼고 그들의 눈에 비친 나를 쓰다듬는다. 결국은 나를 사랑하고 싶은 행위인 것 같다. 화를 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대는 그저 타인으로 존재할 뿐이다. 아무 잘못이 없으며 원인이 없다. 나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나는 나에게 화를 낸 것이고 어리석고 부족한 나를 인지하는 것이 괴로울 뿐이다.
내 책을 본 누군가가 목적 지향적이며 관계 지향적인 내가 잘 드러난다고 했다. 목적 지향인 것은 맞다. 그런데 관계 지향적이라는 말은 어쩐지 많이 들었던 말인데도 턱 걸리는 표현이다. 그 안에는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을 열심히 보고 사랑한 이유는 호수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기 위함이었던 것. 타인을 그저 호수로 여겼을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그 호수를, 거울을 많이 아꼈다. 그것엔 거짓도 부끄러움도 없다. 그런 것도 관계라 할 수 있다면 관계지향적인 것이 맞겠지만.
어쨌든 오늘 블로그에 당신들은 시간전쟁에서 이렇게 패배한다 라는 책 리뷰를 하며 레드와 블루는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한 게 아닐까 하는 질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조금미워하는 것도 같다. 확신이 없는 이유는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고 생각하는 어떤 면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