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드는 행복 list
"너는 근데 쭉 돈을 벌다가, 월급이 없는데 괜찮아?"
"어. 완전 괜찮아! 아무 상관없어~."
직장인들이 사표를 가슴에만 품고 실제 퇴사까지의 결정이 어려운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이미 퇴사한 사람으로서 퇴사하지 않은 사람의 속내를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종합했을 땐 크게 두 가지였다. 경제적 이유와 퇴사 후 느낄 막연한 상실감과 두려움.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매월 따박따박 들어오는 고정급여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월급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출의 기회, 크고 작은 복지 혜택, 소속감, 자부심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니 더욱 그렇다.
그럼 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했느냐 묻는다면, 글쎄. 늘 진행 중이지, 완료형은 없다. 다만 익숙해졌고 잘 관리할 수 있는 정도이다. 물론 ISTJ로서 퇴사하기 전 여러 가지 조건을 다 시뮬레이션해보긴 했다. 고려할 여러 조건 중 경제적인 부분과 나의 만족도를 가늠할 요소로서 생활비가 아닌 순수 나의 행복을 위한 용돈 부분을 특히 꼼꼼히 따져봤다. 주변 친구들에게 공공연하게 말했던 금액은 50만 원이었다. 그래서 나는 월 50만 원만 벌면 나를 위한 소비는 아낌없이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선 그보단 좀 더 벌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실제 가계부를 써보니 내가 쓰는 금액은 20만 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친구를 좀 많이 만났나? 싶은 달이나 그렇지 않은 달이나 비슷했다. 그건 약속을 잡을 때 횟수나 비용을 이미 조정하며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 내가 월 50만 원만 벌어도 나는 충분했던 것이다.(가계에 약간의 보탬도 되면서..ㅋㅋㅋㅋㅋㅋ50만 원으로 행복해지는 여자)
어쨌든!
위와 같은 최소한의 용돈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리고 '돈'만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실제로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내고 집에만 있어도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행복리스트를 적어보았다. 돈이 필요한 행복과 돈 안 들이고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을 나누어서.
솔직히 말하면 도서관만 있어도 나는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근처에 친구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고. 물론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된다는 전제하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우선 나는 도서관 가는 길부터를 좋아한다. 나에게 시간이 있다는 것, 근처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 평일 낮에 서가를 거닐 수 있다는 것, 보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것, 이런 것만으로도 우선 감동 샤워.^^;;;;; 게다가 요즘은 지역서점 바로대출 서비스까지 있어서 매월 2권씩 신간 새책을 집 근처 서점에서 빌려볼 수 있으니 이것만 해도월 3만 원은 아낄 수 있다. 가족 명의로 다 신청한다면 12만 원인데 그런 부지런함과 열정까지는 없어서 한 달에 한 권 간신히 챙겨보는 것 같다. 도서관을 방문해서 책을 빌려오는 것부터가 행복인데 책을 읽는 재미, 그것을 블로그에 기록하며 느끼는 뿌듯함, 다 읽은 책을 추천하는 즐거움, 가끔 맘이 맞는 친구와 책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게 되면 책 하나로 얻는 행복이 몇 가지가 파생되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책에 관한 이야기로 책 출간까지 했으니. 게다가 이 즐거움은 한계가 없고 다시 무한반복될 수 있는 것들 아닌가!!!!!!!!
도서관의 위치는 또 산책하기 얼마나 좋은가. 정확히 말하자면 도서관의 위치는 대중교통으론 접근성이 떨어지는 게 대부분인데 난 시간이 많으니까 쉬엄쉬엄 다녀오는 재미가 있다. 봄가을엔 자연을 느끼며 걷는 행복까지 더하면 정말!!
아! 도서관의 어마어마한 매력이 또 있다. 양질의 강연!!!! 오늘 돈 안 들이고 행복한 리스트 중 도서관 하나만 얘기해도 이 포스팅이 끝날 것 같은데 어쨌든 요즘 도서관의 기획은 정말 입이 떡 벌어진다. 안타깝게도 우리 동네 도서관에서는 내가 원하는 북토크나 강연이 열린 적 없지만 관심만 있다면 내가 사는 지역도서관이 아녀도 강의를 다 수강할 수 있다. 혹시 지역이 달라서 안되려나? 걱정했는데 얼마나 혜자스러운지! 이 또한 혼자 빨빨거리고 정보를 수집해서 다닌 것은 아니고 내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덕에 유명작가님이 오시면 나는 해당 도서관에 회원가입하고 수강신청을 할 뿐이다. 이번엔 드물게 지인찬스가 아닌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미술평론가님의 인스타에서 도서관 강연소식을 접해 미친 경쟁률을 뚫고 수강신청을 했다. 1회성 강의가 아닌 12회차 미술 수업이고 두 번이나 미술관람을 함께 하는 어마어마한 커리큘럼이다. 돈으로 따지면 100만 원 이상할 것 같은 그런 수업이랄까?(내 생각 ㅋㅋㅋㅋㅋ) 암튼 오늘 첫 수업이었다. 분당에서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고 서대문구까지 가는 여정이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더운 날씨도 따뜻하고 햇살이 좋았다 기억될 뿐이다. 하하하하하하 나는 이렇게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인 것이다.
다녀와서 씻고 선풍기를 켜고 기분 좋게 까슬거리는 인견패드가 깔린 침대에 누워 조혜련이 쉽게 설명하는 오십쇼 신약 유튜브를 보니 잠이 솔솔 왔다. (나는 성경말씀 유튜브를 틀어놓고 자곤 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까무룩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유튜브를 다시 처음부터 재생하며 반복학습을 했다(사실은 반복 아닌 첫 청취지만..ㅋㅋ) 그리고 대출해 온 책을 뒤적인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은 완독의 부담이 없다. 대충 느낌만 보고 반납해도 되고 천천히 읽어도, 모셔만 놓고 반납했다 다시 빌려도 상관없다. 이런 하루를 보내는 데 필요한 돈은 교통비 정도다.
물론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는 세상이다. 그것을 40대인 내가 모를 리가 있나. 하지만 적어도 그 정도의 준비는 하고 퇴사를 했고 앞으로도 돈을 벌겠다 마음먹으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도 있으니 지금 이런 시간을 충분히 감사로 누리는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만이 삶의 여유도 누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껏 자신의 삶을 책임감 있게 이끌어 온 사람이라면 월급이 있든 없든 돌파구를 찾아내지 않을까?
행복리스트를 적는다는 게 도서관 얘기만 하다 끝나버렸다. 와우 이렇게 적는 것으로 행복이 추가된다. 얼마나 생산적인 기쁨이야? ㅋㅋ
우선 오늘은 여기까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