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형 작가의 붕대감기를 읽고
p63. 내가 삶으로 꽉 차서 폭발해버리지 않게 하려면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헐어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렇게 얻어낸 공간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부정적 감정을 채울 수는 없다는 것,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전혀 모르고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미움을 집어넣을 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 그가 내가 해낼 수 있었던 최선의 생각이야. 내가 아는 사람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들어가면 그 자리는 꽉 차 버리는 걸.(세연과 진경의 이야기)
p123. 내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선생님을 많이 좋아하고, 잘 챙겨드릴 수 있어. 병원 잘 다니시게 감시하고, 아주 건강해지게는 못해도 지금보다 많이 나빠지지 않게는 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20년 넘게 나한테 좋은 선배가 돼서 이끌어주셨으니까 이제 내가 갚으려고 해. 그걸.(형은, 채이, 명옥)
p147. 형은의 다름이 채이를 화나게 하고 미움을 솟구치게 했다. 체온이, 함께한 시간이, 열이 내렸는지 보려고 서로의 이마를 짚어보던 밤의 기억이 있어서 그들은 가까스로 영원히 헤어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들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어렵고 어색하더라도 서로를 마주 보고, 이름을 말하고, 자기소개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그런 것들을 나눠갖기 시작할 수 있을까, 채이는 생각 했다.
p194. 어쩌면 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