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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Dec 11. 2019

엄마 나는 ‘진짜’가 좋아.

(잘못 들어선 길은 없어. 지금의 내가 된 과정의 길)

“이번 주말에 우리가 볼 공연이야. 한번 봐 볼래?”


휴직을 하고 내가 전시나 공연을 보는 만큼 아이들도 거의 매주 공연을 보고 있다. 이전에는 시간이 없는 만큼 공연 하나 보는 것에도 많은 신경을 써서 양질의 공연, 퀄리티 있는 괜찮은 공연을 찾느라 애썼고 돈도 많이 들였는데 요즘에는 자주 보는 만큼 저렴하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공연을 찾고 있다. 또 다양한 앱과 리뷰를 위한 카페 덕에 마음과 시간을 내면 무료로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오늘도 공연 초대를 받아 초대석 자리를 예매하며 아이들에게 이번 주말에 볼 공연의 내용을 대강 말해 주며 홈페이지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번 주말에 공연 보러 갈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포스터와 배우 사진이 나와 있는 상세페이지를 보여주는 것의 임팩트는 어른이나 아이나 천지차이다. 아이들은 매우 관심을 보이며 꼼꼼히 내용을 읽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나의 관심과 노력을 더해 다양한 공연을 함께 볼 수 있음에 스스로 뿌듯해졌다. 잠자리에서 우리 둘째가 이야기했다.


“엄마, 주말에 공연을 보러 간다는 생각을 하니 나 기분이 너무 좋아.”

“그래? 영화는 싫어하는데 공연 보러 가는 건 그렇게 좋아?”

“응. 영화는 싫지만 공연 보러 가는 거는 너무 좋아.”

“왜 영화는 싫고 공연은 좋아?”

“공연은 진짜 사람이 나오잖아. 영화는 아니고. 난 진짜가 좋아.”


아이가 말하는 ‘진짜’의 의미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 직접 나온다는 의미이다. 문자적으로 분명하게 이해되는 의미인데 ‘진짜’를 강조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예전에 보았던 에세이에 나온 동화가 생각이 났다.




 <벨벳 토끼> 이야기. [내생에 단 한번 /장영희]


“나는 ‘진짜’ 토끼가 되고 싶어. 진짜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잠자는 아이의 머리맡에서 새로 들어온 장난감 토끼가 아이의 오랜 친구인 말 인형에게 물었다.

“진짜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아무 상관이 없어. 그건 그냥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야.” 말 인형이 대답했다.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아파야 해?” 다시 토끼가 물었다.

“때로는 그래. 하지만 진짜는 아픈 걸 두려워하지 않아.”

“진짜가 되는 일은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야? 아니면 태엽 감듯이 조금씩 조금씩 생기는 일이야?”

“그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야.”

“그럼 진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아이가 진정 너를 사랑하고 너와 함께 놀고, 너를 오래 간직하면, 즉 진정한 사랑을 받으면 너는 진짜가 되지.”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깨어지기 쉽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갖고 있고, 또는 너무 비싸서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장난감은 진짜가 될 수 없어. 진짜가 될 즈음에는 대부분 털은 다 빠져 버리고 눈도 없어지고 팔다리가 떨어져 아주 남루해 보이지. 하지만 그건 문제 되지 않아. 왜냐하면 진짜는 항상 아름다운 거니까.”




말 인형은 어쩜 그렇게 정답을 잘 알고 있었을까? 진짜가 되어 본 경험이 있었던 걸까?


나는 때로 날카로운 모서리를 뽐내며 비싼 자태를 자랑하는 고급 크리스털 수집품처럼 우아함을 추구한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자아도취 되기도 하고 충만함을 느낄 때도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나의 다른 면을 들춰보며 소박하고 털털한 모습을 사랑스럽게도 여긴다. 나는 꽤 자아 만족도가 높은 행복한 사람인 듯싶다. 하지만 우리 둘째가 말한 ‘진짜’라는 단어에 멈칫하며 ‘벨벳 토끼’가 생각나는 걸 보면 결국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털이 다 빠지고 눈도 없어진 아주 남루한 모습이지만 사랑받는 ‘진짜’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각종 트렌드를 분석한 책과 리포트가 쏟아진다. 그 안에는 다양한 단어로 사람들의 심리와 소비를 해석하고 사람들은 그 규정된 내용대로 자신의 행동의 의미를 찾는다. 과연 대중의 행동을 분석한 트렌드 예측인지 트렌드라고 하는 것에 사람들이 방향을 맞추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지만 분명한 건 각종 매체가 뽑아낸 단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

그중에는 단연 ‘나’가 화두이다. ‘미타임(Me time)’ ‘멀티 페르소나’ ‘미추에이션(나를 위한 초개인화 큐레이션) 등 모두 ’나‘를 중심으로 한 변주이다.

‘멀티 페르소나’에는 어떤 내가 있는지, 다양한 계정 속에 감춰진 내 모습은 무엇이 진짜 나인지, 인친, 페친, 실친 중 나의 진짜 친구는 누구인지, 과연 그 진짜라는 건 무엇인지 다양한 현상 분석을 보며 요즘 들어 다시 생각해보는 문제가 있다.



말 인형이 말했듯 진짜가 되는 일은 나의 취향을 인증하고 소비한다고 해서 갑자기 생기는 일이 아닌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다. 세상의 기준에 따라 프레임에 갇혀 살았든 표준의 삶이 제시하는 방향대로 그저 따라왔든 그 과정을 겪으며 내가 새겨온 나만의 세월이 쌓여 ‘지금의 나’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생물학적 나이를 먹고 그와 엇비슷하게 생각이 자라 시야가 넓어지고 융통성이 생긴 ‘지금의 나’도  어제와 다른 ‘진짜 나’이다. 이제껏 살아온 삶에 ‘진짜 나’는 없었다며 애써 걸어온 길을 부정하기보다 그 시절 그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어리석은 몸부림을 쳤던 나를 애썼다 토닥토닥해줄 수는 없을까?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내 모습을 칭찬하며 수고했다 여겨주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가 누구인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대학, 취업, 결혼, 육아로 이어지는 보통의 삶, 하지만 결코 녹록지 않은 삶에 지친 사람들이 한숨 돌리며 나를 발견하는 자아발견의 시간은 참 바람직한 일이다. 나는 다만 그 발견의 시간이 과거의 부정이 아니라 인정과 격려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휴직한 지 벌써 1년이 다 채워지고 있다. 휴직을 한 나도, 열심히 일하는 누군가도 1년을 돌아보며 여러 생각이 드는 연말이라 더욱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1년 동안 계획한 방향이든 조금 어긋난 방향이든 오늘까지 애쓰며 살아온 나를 격려해주자. 잘못된 길은 없으며 잘못된 결정도 없다고. 그 길과 그 결정 덕에 오늘의 내가 있는 거라고. 누가 뭐래도 그게 있는 그대로의 ‘진짜 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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