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아한밍블 Jan 17. 2021

우리는 맛집에서 우정을 서비스로 얻었지.

책보며 뜻밖의 추억여행.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라는 책을 보다가 친구가 생각났다. 여름밤의 풀벌레 소리와 적당한 온도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낙엽 부서지는 처량한 가을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늘 이 친구가 생각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친구와 나.


 우리는 대학 OT화장실에서 만난 사이이다. 단체 생활보다는 개인 생활이 맞는 편이고 여러 명의 친구보다는 한 명의 친구를 사귀는 타입인 나는 그날도 딱히 어울리지 못했었다.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는 시간이 어색해 화장실만 들락거렸는데 거기서 나 같은 친구 한 명을 발견해 그 길로 집에 가자며 나왔다. 사실은 '나 같은' 친구는 아니었는지 모른다. 친구는 그저 화장실 올 일이 있어 왔는데 자신을 단체 생활 부적응자로 묶어 함께 나가자 했으니 그 친구에게는 좀 황당한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크게 이상한 아이였다 생각하지 않고 지금껏 지낸 이유는 그 친구와 나는 아직도 친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맞지? 단체 생활 부적응자로 묶어도 괜찮은 거지? 후훗


나는 그 친구를 처음부터 그렇게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묶어서 함께 했고 친구는 정말 나랑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공무원이셨고 첫째였고 교회도 다녔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먹는 것을 좋아해 대학 시절 맛집을 꽤 즐거이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와 나는 내가 언급한 것들만 같았다. 안정적인 가정환경, 첫째, 기독교인, 먹을 것을 좋아함. 그 외에는 죄다 다른 점뿐이었는데 나는 그때 어떻게 같은 점만 골라서 보았을까? 다른 점이 너무 많아서 우정에 서서히 틈이 생기는 순간이 와도 우리는 맛집 갈 때만은 다시 마음이 맞았다. 둘이 가도 메뉴를 3개 시킨다거나 핫플레이스를 가면 맛집+맛집+맛집의 코스를 짜도 서로에게 눈치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등이.


 물론 식성에도 좀 다른 것이 있긴 했다. 다른 것이 문제였다기 보다는 당연하게 나의 취향을 먼저 이야기하고 정한 것이 문제였다. 학교 앞 분식점에서 분식을 시킬 때 나는 늘 라볶이와 김밥을 세트로 시켰는데 그게 불만이었다고 친구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게 뭐가 문제지? 라볶이랑 김밥 먹을 거잖아. 너네도 먹고 싶은 거 하나씩 시키면 되잖아.라고 당당히 말하면 친구는 같이 먹는 건데 그게 안 먹고 싶을 때도 있는 거잖아.라고 말했다. 그렇구나. 라볶이와 김밥이 전혀 안 먹고 싶을 때가 있구나. 난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식성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쪼금은 받아들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다른 점을 발견했고 멀어지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 무언가를 먹으러 다녔다.



나는 늘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참 달랐지만 먹을 것 앞에서 해맑게 즐거워지는 순간이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를 낳고 마흔이 된 지금도 나는 그 친구를 생각하면 이번엔 뭘 먹으러 갈까 생각한다. 한동안은 주로 내가 맛집을 찾았고 요즘은 그 친구가 동네 맛집을 데려간다. 사는 곳도 북쪽, 동남쪽 달라서 그저 다른 동네 간 것만으로 음식이 색다르게 느껴져 어디든 좋았다. (같은 한국 맞고요. 한국 땅 조금씩 분위기는 다르지 않습니까? ^^)


그 친구와 나는 지금은 없어진 패밀리 레스토랑을 처음 갔고 퐁듀를 처음 함께 먹었다. 싱가포르 레스토랑에서 영어 메뉴를 한참 들여다보고 주문한 토마토 카프레제를 처음 봐 이것도 저녁 메뉴냐며 당황했고 말레이시아에서 에프킬라 맛이 나는 콜라에 기겁한 기억을 함께 한다. 대만에서 중국 향신료 냄새를 피하느라 코 막고 뛰어다니다 선배들의 눈총을 받았고 해외만 나가면 제대로 먹지 못하는 친구에게 매일 요구르트를 사다 줬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참 오랜 시간 다양한 경험을 함께 한 사이이니 우리가 기억할 만한 사건이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그것보다 나는 이렇게 우리가 함께 먹고 함께 싫어한 음식들이 생각난다. 왠지 어린 시절 철없던 그때가 무척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먹고 맛보고 즐기며 웃던 그 순간들이.


아이 때문에 자주 만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코로나 19로 만나 밥 한 끼 하기 어렵다.

우리는 여전히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주고받고 줌으로 얼굴을 보기도 하지만 음식을 마주하고 향과 맛을 각자의 방법으로 표현하며 까르르거리던 시간이 갑자기 그립다.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라는 책을 한 시간 만에 다 읽고 책 모서리 접힌 부분이 하나도 없어서 리뷰를 쓸 수 있나 고민했는데 뜻밖에 친구와 추억이 몽땅 소환되었다. 허허 이 책은 그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200% 다 한 것 같다.


감사합니다. 손기은 작가님.


친구야 코로나 전염병 사라지면 우리 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

작가의 이전글 돈이 되는 글쓰기의 모든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