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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l 05. 2019

용서라는 것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우리 집 언니의 3차 병원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진료를 보고 1층 로비에 있는 커피숍에서 빵 하나씩 사고 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해 나오다가 작년 7월에 내 아버지를 지금의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시술을 집도한 의사를 발견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할 때는 볼 수 없었던 그 얼굴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관찰실에 있던 우리에게 돈 많이 드는 뇌파검사를 하실 필요가 있겠느냐며 경제적 여유가 되시냐며 치료 포기를 권했던 곰같이 생긴 의사도 그 옆에서 웃고 있었다.
사실 이 의사 곁에 있던 사람의 명찰을 보고서 알았다. 내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인간이 저 사람이라는 걸.

아이 손을 잡고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하며 다가가니 그 둘은 바람처럼 도망갔다. 연거푸 부르니 뒤를 돌아보며 웃는 얼굴로 목례를 했던가. 나는 당신 둘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는데 말이지.

그 꽁무니를 보며 욕 밖에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내 부모님은 용서하자 하셨는데, 과연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이었을까.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애써 용서하고 잊어야 하는 걸까.
내가 용서하면 하늘이 대신 벌을 내려주실까.

용서고 뭐고.
계속 그렇게 피하고 살아라.
나는 계속 그 병원 다녀야 하니까.
내가 죽는 날까지 네 놈 이름 세 글자는 안 까먹을 거다.

그리고 부디 꼭 좋은 의사가 돼라. 내 아버지의 목숨이 헛되지 않게.



2019년 3월 18일(오전 11시 45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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