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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l 08. 2019

아기 엄마의 방사선 치료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하필 딱 아이의 어린이집 이동기간이라 전체 방사선 치료 일정 중 절반 가까이 아이와 함께 다녔던 것 같다.

방사선 치료가 다 끝나 적어보는 치료의 기억.



1. 파란선

비누칠을 하지 않고 물로만 씻어도 선은 흐려진다.
자면서 땀을 많이 흘려도 흐려지니까.
아예 흔적도 없이 지워 오는 게 아니면 된다며, 방사선실에서 적당히 그려주며 치료를 진행했다.
문신이 있다고 하던데 땀을 많이 흘리고 불안하다면 그 방법도 좋을 것 같다.



2. strata XRT크림
본원 방사선과에서 받은 크림인데, 전원한 방사선과에서도 처방을 내주고 있었다.
방사 시작하는 날 오전부터 매일 아침저녁 꼬박꼬박 발랐다. 피부 재생과 보습에 효과가 좋다고 하던데, 실제로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불그스름해진 피부에 바르면 피부가 진정되는 게 눈에 보였다.
피부가 희고 일광화상에 약해서 방사선 치료기간에도 피부가 못 버틸까 걱정이었는데,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3. 방사량과 보험
총방사량이 5000 단위 이상이면 수술로 소급해 적용된다는 정보를 얻었다. 실제 대법원 판례도 있었다. 하지만 내 보험이 있는 두 곳의 손보사는 칼 대는 수술에 한정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건 좀 따져봐야겠다.


4. 속옷
가슴과 상체 위쪽에 선을 죽죽 그어놓아서, 입던 브래지어는 착용이 좀 애매했다. 속옷에 선이 다 뭉개지거든. 속옷을 뒤지다가 아이 수유할 때 입었던 임부속옷을 찾아냈다. 수유 러닝. 소재도 좋고 몸에 꼭 끼지도 않아 선을 보존하기에도 용이한 것이 방사선 기간 동안 입고 지내기에 딱 좋았다.
둘째를 낳게 되면 입으려고 남겨뒀던 것인데, 이렇게도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


5. 아이 동행
집에서 제법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방사선 치료를 전원 했다. 제법 가깝기도 했고 비교적 한산하고 친절한 곳이어서 아이를 동행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이가 잘 뛰어다니는 월령이어서 일부러 주차장에서부터 유모차에 태워 다녔다.
유모차에 앉혀놓고 핸드폰과 간식을 주고 방사선실 문 앞에 세워뒀는데, 친절한 간호사님들과 방사선실 선생님들이 안전한 곳에서 보호해주시곤 했다.
방사선 일정이 일정해지면서부터는 매일 같은 얼굴의 환우들을 보게 되어, 그분들도 알게 모르게 아이를 돌봐주셨다.
사실 방사선실 안에 들어가 치료받는 시간은 짧다.
정말 찰나의 시간이지만, 아이를 밖에 혼자 두고 들어온 엄마의 시계는 다르니까.

물론 다시 생각해봐도, 아이는 병원에 데리고 오는 것보다 어디라도 믿을만한 집에 부탁하는 편이 좋다. 하지만 정말 여의치 않을 때라도 어떻게든 방법은 있는 것 같다.


6. 시간
초반 이틀 정도는 병원에서 지정해주는 시간에 가야만 했다. 밤 9시 전후였던 것 같다.
하지만 곧 내가 원하는 시간대로 시간이 조정되어 낮 시간에 쭉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아이를 돌봐줄 이가 있다면 아예 사람도 적고 이동시간도 짧게 걸리는 밤 치료도 좋았을 것 같다.


7. 치료 중단
친정아버지의 상황이 엄중하셔서, 방사선 치료 내내 언제고 치료를 중단하고 상을 치러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병원에 사정을 얘기했더니, 이사 등 의 사정에 따라 일주일 정도 방사선 치료를 중단했다가 재개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쉼 없이 치료를 끝내는 것이고.
감사하게도 중단할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월요일에 끝나는 마지막 방사를 토요일 오전으로 당기긴 했지만.
그 덕에, 병원 측의 배려 덕에, 치료도 자식 된 도리도 다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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