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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Aug 19. 2019

부럽다, 육아휴직

독박육아 도치맘 에세이

육아 양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 자리였다.

아내가 평가하는 남편의 육아 점수와 남편이 평가하는 아내의 육아 점수를 매겨보는 시간이었는데, 아이 엄마의 평가는 2점인 반면 남편의 평가는 8점인 가정이 있었다. 남편들의 대부분은 자신에게 후하다는 우스갯소리에 웃으며 뒤를 돌아보니, 몇 년 전의 우리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찡얼거리는 아기를 아기띠로 안고 달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엄마와 어색하게 아기의 발을 잡고 있는 아빠, 참 익숙한 장면이었다. 남자는 그래도 내 나름 노력을 하고 있고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편이라 자부했으나, 여자는 남편이 무엇을 해도 서투르고 못하고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그날 토크쇼 자리에서 나왔던 이야기 중 상당 부분은 육아 양립을 통해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정부가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홍보하는데 할애되었다. 사실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알려줬거든.

"인사 담당자랑 이야기하다 들었는데, 이제는 출산휴가를 일주일이나 준대. 그리고 육아휴직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쓸 수 있도록 아예 지침이 내려왔대."

"어... 좋네."


내게 육아휴직이라는 것은, 암환자가 가는 요양병원만큼이나 아득하고도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이다.

아이의 또래 육아모임에는 유독 휴가도 잘 쓰고 육아휴직도 척척 내며 아이의 대소사에 함께하는 남편들이 은근히 많아서, 유독 박탈감이 심했다. 대체 너네 신랑은 뭐하는 사람이길래 아내가 이렇게 힘든데 휴가도 못 내느냐며, 오직 어린이집의 도움만으로 모든 것을 버티는 나에게 그녀들이 뭐라 말 한마디씩 던질 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러게. 그래서 우리 딸은 혹여 결혼이라는 걸 하겠다고 하면, 여차했을 때 아내와 자식을 위해 회사를 때려치워도 살 수 있을 정도의 최소 은수저에 제주 은갈치 하고 짝 지어주려고."


남편은 전형적인 흙수저다. 그렇다고 개천에서 용 난 개룡남도 아니다. 그저 성실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오늘을 사는, 그런 평범한 직장인이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아빠 카드 긁기와 공부뿐이었던 나는, 나와는 삶의 결이 다른 이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듬직했다. 이미 고생을 하며 자란 사람이어서, 살면서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내 뒤로 숨지 않고 같이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았다.

둘이 두 손 맞잡고 가는데 못할게 뭐가 있겠어!

포부는 원대했으나, 현실은 더 어마 무시했다. 현실은 그랬다.


"엄마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온몸이 뜨겁다며 아이가 침대 위에서 울며 방방 뛰었다. 하필 저녁 퇴근길 러시아워 시간이었다. 이미 몇 달 전에 아이가 비슷하게 아팠던 적이 있어서 바로 감이 왔다.

'아, 이건 입원 각이다.'

열이 아주 높지는 않아서 우리 조금만 더 참고 있다가 차가 좀 덜 막힐 때 응급실에 가자고 안고 달래다가 결국에는 서둘러 입원 짐을 챙겨 나왔다.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했는지 모르겠다. 퇴근길에 한 시간 반, 지옥의 양재사거리를 뚫고 응급실에 도착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역시나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속을 밟으라는데 수액을 맞으며 잠든 아이를 데리고도 놓고도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침 같이 응급실에 있던, 같이 병실로 올라갈 어느 집 엄마와 할머니가 옆자리라 그분들과 담당 간호사에게 양해와 부탁을 하고 일처리를 마쳤다. 수속을 밟고 차에서 짐을 꺼내 오고. 무슨 정신으로 달렸는지 모르겠다.

그날도 야근 중이었던 남편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병실로 찾아와 잠든 딸의 얼굴을 보고 갔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병실로 올라온 아기 엄마네는 아이 엄마가 좀 쉬어야 한다며 시부모님과 남편이 번갈아 교대를 해주었는데, 나는 그 아기 엄마가 너무나 부러웠다. 정말 너무너무 부러웠다.

병원에서 종일 아이와 함께 있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아이였지만, 하필 수액 혈관을 발에 잡아서 걷게 둘 수도 없었다. 밥은 마침 아이가 이유식을 할 때여서 아이가 먹고 남긴 걸로 먹었다. 그렇게라도 병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만약 아이가 분유를 먹는 시기였으면, 밥 사 먹으러도 쉽게 나가지 못하고 쫄쫄 굶었을 처지였을 것인데 말이다.

아이가 입원했다는 소식에 주변의 걱정이 산처럼 쌓였다. 남편은 그 흔한 휴가를 하루도 못 내냐고, 친정이 그 상황이면 시댁은 뭐하시느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위중하신 친정아버지 간호로 꼼짝을 못 하시는 친정엄마는 그저 우실 뿐이었고, 일하시느라 바쁜 시어머니는 어떠셨는지 모르겠다. 아마 걱정하신다고 입원 소식도 전하지 않았을 걸.


효자인 남편은, 그 당시 회사에 "뼈와 살을 갈아 넣어가며" 매일 야근으로 밥을 대신하고 있었다. 해외로 의료서비스 상품을 수출하는 회사인데, 수출에 필요한 무슨 인증 절차를 이 사람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회사가 빨리 수출을 하여 수익이 나고 잘 되는 것이 자신 또한 잘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도 했다. 그래서 그는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집에도 거의 못 들어와서 며칠 치 속옷과 갈아입을 옷을 챙겨 들고 남편 회사 앞으로 찾아가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랬다. 그때는 그렇게 해야 딸아이가 아빠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 아이가 아프니, 내가 아프니 육아휴직이 안되면 반차라도... 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자기 자신의 기술과 건강이 그가 가진 최고의 자산인 사람에게 있어 30대 직장인으로서의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버텨야 내가 버티고, 내가 알아서 버텨야 그도 버티는 그런 상황이었다.

실패한 고학력 인생인 나는, 아이의 출산을 기점으로 그나마 하던 일들이 전부 끊겨 수입이 없었다. 내게 돌아갈 자리라고는 우리 집뿐인데, 그 집이라는 것도 그의 월급에서 전세자금 대출과 적금과 생활비로 빠듯하게 굴리며 유지되는 상황이었으니, 아무리 육아 휴직 후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 해도 당장의 생활을 이어야 하는 우리에게는 선택 가능한 옵션이 못 되는 것이었다. 그건 설령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잘려도 호기롭게 그 시기를 보낼 수 있거나, 휴직으로 인해 월 수입이 평소보다 줄어도 좀 아껴 살면 살아지는 형편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인 것을.


눈이 내렸다. 양 볼에 저 메디폼은 볼터치용이 아니고 산소 콧줄을 고정하는 용도였다.


그래서 나는 혼자 아이를 데리고 입원을 했다가, 아이랑 둘이서 병원에 있다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퇴원을 했다. 내게 자동차가 있고, 운전을 꽤 잘한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크게 감사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


"나도 휴직하고 곁에서 지켜주고 싶었어. 내게 여유가 조금만이라도 있었다면, 나도 그렇게 했을 거야. 진심이야."

몇 년이 흘러서야 그가 말했다.

나도 안다. 이게 진심이었고 사실이라는 것을.


뒷자리 아기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손을 번쩍 들고 우리 집 이야기를 떠들어보고 싶던 찰나, 딱 그 타이밍에 진행자 정주리씨의 한 마디에 모두가 박장대소를 했다.

"남편이 똥기저귀는 가는데 그걸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서 결국 내 차지가 되는 그런 상황 말씀하시는 거죠?"

(기억에 의존함. 정확한 워딩은 아님)

헐. 똥기저귀 처리를 할 줄 모르는 애 아빠가 있다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그 자리에도 상당수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그 순간, 나는 내 남편의 그  말이 진심이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아! 중요한 이야기.

그렇게 뼈와 살을 갈아 넣으며 충성을 다 바쳤던 회사에서 남편은 결국 해고를 당했다. 예상보다 빨리 수출을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더니, 이제 당분간 이 사람의 역할이 필요 없어졌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고상한 말로, 인건비 절감.

몇 달의 마음고생이 있었고, 더 좋은 회사를 만났다.

요즘이라고 야근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

그가 나에게 새로운 회사에 합격했음과 사실 몇 달 전에 잘렸음을 알리던 날, 그 마지막 한 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아 진짜, 환장할 3개월이 지났다.”





독박 육아 암환자 아기 엄마에게 왜 요양병원이 꿈같은 이야기인지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mintc/54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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