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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Apr 03. 2019

같고도 다른 말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그래요 다음에 올 땐 꼭 보험 실비 한도가 얼마인지 알아서 오고요.”... 라던 상담실장은 내 입으로 언제 어떻게 입원을 들어오면 되냐고 수차례 묻게 전까지 입원 안내를 해주지 않았다.

1차 항암이 생각보다 너무 힘이 들었다.
구토 증세와 목감기로 말을 하지도 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겠는 일주일이 지났고, 그러고도 혀의 느낌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에 일주일이 더 걸렸다.
가뜩이나 스스로 챙겨 먹지 않는 인간이 입맛도 기운도 없어서 더더욱 격하게 먹지 않는 데다가 집에는 그 인간이 챙겨야 할 어린아이가 있는 상황이니까. 가장 힘들었던 건, 잠도 못 깬 상태로 아빠에게 안겨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가서 아빠에게 안겨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와 조심스레 엄마 눈치를 보는 아이를 보는 것이었다.

어떡하면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넘길 수 있을까. 병원에서 하지 말라는 걸 피해 가며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항암을 수요일에 하니까, 딱 이박삼일 눈 딱 감고 요양병원을 들렀다 집으로 올 마음을 먹었다. 별 것 아닌 수액이어도 몸이 힘들 때는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 나니까.
마침 친구의 이모가 인근 요양병원에서 잘 지내신 것을 보았기에, 친구의 추천을 받아 그 병원을 방문했다.
대단한 환대를 바란 건 아니었다.
대략 어떻게 입원하고 퇴원하고, 그곳에선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시설은 이러저러하다 정도의 얘기를 듣고 일정을 맞추고 오면 될 줄 알았다.
“아이를 맡아줄 양가 부모님도 안 계세요? 왜요?” 로 시작된 그녀의 상담은, 지금 집중해서 그 병원에서 추가로 받는 기타 등등의 치료로 암을 죽이지 않으면 아이를 오래도록 보기 힘들 수 도 있다... 까지 이어졌다.
난 그저 수액 길게 맞고 해독수프 먹고 뜸 좀 뜨면서 빨리 기운차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그거면 되는데.

“지금 주변에 폐 끼치는 걸 걱정할 때가 아니야. 나만 생각해. 내 몸을 귀하게 여겨야 해.”

뜸 선생님으로부터 나와 같은 병으로 뜸을 꾸준히 뜨며 11년째 생존중인 분을 만나게 해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동네 아는 언니가 뜸을 뜨고 수지침을 맞으며 병이 나으면서 내게도 그곳을 소개해주었는데, 집에서 뜨자니 아파트 온 복도에 담배 피우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고, 방송 나오고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한 며칠을 놀이터에 나가 뜨다가 감기가 더 심해졌다. 날도 추운데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어 사놓은 것만 뜨고 그만할 생각이었다.
그분의 이야기는 단순했다. 뜸 선생님을 만나 병이 낫고 관리되고 있는 이야기들. 요점은 주변 눈치 보지 말고 나 하나만 생각하고 진득하게 앉아 뜸을 뜨라는 것이었다. 뜸 값이 부담되겠지만 결코 아깝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도.

지난 저녁.
집에 있는 선풍기와 서큘레이터를 다 틀어놓고 뜸을 뜨다가 선풍기 바람에 촛불이 꺼졌다.
나는 왜 내 집이 없어서..
하필 레인지후드도 시원치 않은 집에 살아서..
어쩌자고 이 추운 계절에 아파서..
추위에 오들 떨며 이 짓거리인가.
서러움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 감정에 상관없이 삶은 늘 자기 모양대로 돌아간다. 항암 2주 차에 들어서며 입맛이라는 녀석도 혀의 감각이라는 것도 슬슬 돌아오고 있다.
살겠다고 추어탕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으며 이틀간 내가 보고 들었던 얼굴과 말들을 다시 곱씹었다.

내 몸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이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당신이 평생 본 암 환자 중에 가장 어리다며 걱정하던 그 눈빛도.
어쩌면 그리도 같은 말이 다를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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