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임시보호> 유기견이라서 그래

오늘의 수다

by 상지

“얘가 00이 엄마를 자기 주인인 줄 아는가 봐.
자기가 자리만 뜨면 계속 우네.”

점심 약속과 병원 일정이 있던 날이었다.
치와의 분리불안이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하고 간식과 식사와 물을 넉넉히 준비해주고 외출을 다녀오면 될 줄 알았다. 결국 나는 약속시간에서 40분가량 늦었다.
아파트가 울리게 짖어대는 강아지를 차마 두고 나올 수가 없었다. 간식을 넉넉히 여기저기 던져줘도 이 아이는 입에도 안 대고 그저 숨 넘어가게 짖어댔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을 것 같았다.


점심 약속이 잡힌 집에는 장모종 닥스훈트가 산다.
같이 사는 웰시코기 형아에게도 겁 없이 덤비는 치와라서 혹여 끝없이 싸우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되었는데, 집주인 언니가 흔쾌히 데리고 오라고 해줬다.

치와는 씩씩했다.
집주인 닥스훈트를 이겨먹고
닥스훈트의 밥과 물과 취침용 쿠션과 간식까지 전부 뺐었다...............


두 강아지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며 그동안 나는 두어 번 자리를 비웠는데, 그때마다 치와는 난리난리를 하며 울부짖었다고 했다.

분리불안이 심한 것 같다고.

유기견이라 그런 걸 수 있다고.
그리고 마치 나를 새로운 엄마로 인지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
난 잠깐 데리고 있는 사람일 뿐인데.
원 보호자가 집을 비운 후 일주일 동안 치와는 혼자 집에 있었다.

물론 그동안 보호자에게 부탁을 받은 지인이 매일 오가며 치와의 밥과 물과 배변패드를 갈아주고 간식을 주고 놀아줬다. 나는 그저 그의 다음 타자일 뿐인 것인데, 이 아이 입장에서는 원 보호자가 자기를 버리고 갔다고 여겨졌나 보다.

나와 함께 반나절쯤 치와를 관찰한 지인은 이 아이가 버려지기 전에는 주인 손에 어화둥둥 안겨 자란 것 같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치와는 보이는 사람마다 안아달라며 고공점프를 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의 무릎에 앉는다. 사람에게 예쁨 받기위해 최적화된 교육을 받은 아이마냥 짖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마 잘 때도 같은 이부자리에서 끼고 잤던 게 아닐까 싶다.


...

치와가 우리 집에서 지낸 첫날이었던 지난밤에는 호시탐탐 침대 위로 올라오려는 강아지에게 단호하게 안된다고 알려줬다.
방 문을 닫자 치와는 정신 나간 강아지처럼 울면서 거실을 뱅글뱅글 돌아다니고 방 문을 긁어댔다.
친구의 강아지를 데리고 온 거라 내심 내일도 출근할 남편의 눈치가 보였다.
급하게 이것저것 찾아보니 강아지들은 구석진 자리에 잠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남편도 잠들기 전에 혼자 밖에서 얼마나 무섭겠냐며 침대 위에만 올라오지 않으면 된다고 했기에 우리 침대 아래에 자리를 깔아줬다.


"여기에서 자는거야. 다른데 돌아다니면 안돼!"


얼추 알아들은 눈치 같았다.

그렇게 잘 잘 자는 줄 알았다.
잘 자는 줄 알았는데, 느닷없는 부스럭 우다다다 끽끽 우두득 와자작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뜨고 치와를 찾아보니 우리 침대 옆에 있는 아이의 침대 위에 올라 이것저것 씹고 뜯고 맛보고 있던 게 아닌가.
순간 화가 났다.

강아지에게 화를 낼 일은 아닌데, 올라가지 말라고 여러번 알려준 아이 침대에 올라가 있는게 정말 너무 화가 났다.



친구가 데리고 있었던 유기견이 이번에만 다섯 번째다.

사람들은 유기견이라고 하면 사람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실 데리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캉말캉하지만은 않다. 버림받은 상처는 상처대로, 지금 이 주인과의 관계는 관계대로 챙기는 녀석들이다.


친구의 첫 번째 페키니즈는 공주님이 되어 남은 여생을 꽃처럼 살다 세상을 떠났다. 참 예쁘고 똑똑한 아이였다.


두 번째는 실험실에서 구조되었다는 비글이었는데, 사람을 무서워했다. 겁이 많아 작은 소리에도 숨기 바빴던 아이. 나는 비글 꼬리가 다리 아래로 말려들어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 녀석은 다른 강아지들이 많은 집으로 입양되어 제법 강아지답고 비글답게 산다고 하던가.


세 번째는 꼬리를 자르지 않은 웰시코기 암컷이었다. 참 예쁘고 예쁜 무릎 강아지였다. 그때 잠시, 우리에게 강아지를 키울 여력이 된다면 유기된 강아지를 데려다 키우자며 남편과 생각을 맞추기도 했더랬다.
인식 칩도 있었던 그 아이는 연락을 절대 받지 않던 주인의 품으로 결. 국. 돌아갔다. 자신이 키울 여력이 안되어 친척집에 부탁을 했다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개고기용 도살장에서 구조가 되었다고 들었다.


“세상에, 그 좋은 종자인 웰시코기가 어떻게 개고기용 도살장에 있을 수 있어?”


“버려지면 그게 진돗개 건 웰시이건 그냥 개고기야.”
...
네 번째는 또 다른 웰시코기 수컷이었다.
일단 힘이 다르고 목청도 컸다.
이 녀석의 고집과 잠버릇에 한동안 시달린 친구가 강아지 훈련원 같은 곳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들었다는 말이 내게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이 머리 좋은 녀석이 주인을 힘들게 괴롭히면서 조련을 하고 있었다고했다.

다섯 번째가 지금 우리 집에 있는 치와다.
외모를 보면 나이가 좀 있어 보이나 치아 상태를 보면 아직 어린 아이라는 치와와.

추정나이 2살이다.
겁이 많아 바들바들 떨지만 지지 않고 포기를 할 줄 몰라서, 저보다 덩치가 훨씬 큰 웰시코기 형아에게 매일 덤비는 녀석이다.


...


이 녀석이 한 시간째 울고 짖고 끙끙대고 있다.
방 문을 열어달라고.
문을 열고나면 또 어제의 반복일 것이다.
오늘은 남편이 나섰다.
달래고 어르고.
종이를 접어 맴매 모양을 만들어 보인 남편은, 치와가 문 앞에서 울고 짖을 때마다 종이로 방 문을 쳤다.

다 자는 시간이야.
우리 집에서는 사람만 방 안에서 자.
너는 네 자리에서 자는 거야.

남편이 잠이 들고 이제는 내가 방 문 앞에 앉아있다.
그 종이 맴매를 한 손에 들고.


분리불안인 강아지들은 아무 데나 쉬를 해놓고 챙겨준 간식도 먹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어서 내일 아침의 일이 두렵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이 상황이 무섭고 서러울 치와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너의 주인이 오기 전까지 나는 너랑 함께 잘 지내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니까.

지금 여기서 문을 열고 나가면 내일 밤에는 오늘보다 더 긴 시간과 실랑이가 필요할 테니까.

“00이 엄마. 이 아이를 너무 불쌍하게 여기지 마. 쟤도 포기할 것은 포기하는 걸 배워야 해. 어쩔 수 없어.” 오늘 들은 말이 머릿속에 맴맴 돈다.

주저앉아 이 글을 쓰는 사이 문 밖이 조용해졌다.
치와가 잠이 들었나 보다.
부디 모두에게 평안한 밤이 되길 기도한다.

내일은 아침산책시켜주고, 낮에 간식들을 종이뭉치에 숨겨 여기저기 던져놓고 짧은 외출을 시도해봐야겠다.

너 버리고 가는 거 아니야.
나갔다가 꼭 들어와.

제발 믿고 기다려줄래.


... 녀석이 부디 메시지를 알아듣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눈에서 보이지만 않아도 난리를 치는 강아지와 면역력 약한 아이를 데리고 혼자 병원에 갈 재간이 없었다.
원래 계획은 내가 외래 진료를 보는 동안 우리 집 어린이를 지인에게 잠시 부탁하는 것이었는데, 치와 덕에 다음 주로 연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반려동물을 키울 사람이 못 되는 것 같다.

이걸 깨달았으니, 사서 하는 이 고생도 영 헛수고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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