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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Aug 26. 2020

엄마 나는 소가 되기 싫어요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사촌동생을 보고 온 아이가 엄마 건강해지면 남동생 하나 낳아달라고, 동생 하나만 낳아달라고 졸랐다. 동생이 생기면 빨래도 청소도 기저귀 갈이도 우유 주는 것도 전부 자기가 할 테니 동생 하나만 낳아달라고 말이다.

내가 무남독녀인데 딸아이도 외동이라서, 늘 아이 하나를 더 낳아야하나 하나만 잘 키워야 하나 고민이었다.
올해 가져서 내년에 낳으면 큰애가 일곱 살.
내년에 가져서 연말이나 내후년에 낳으면 학교 갈 나이다. 아이들만 놓고 보면 각자 외동처럼 독립된 정서를 가지고 자랄 수 있는 나이 터울이고, 아이의 취학으로 한참 정신없을 때 갓난애를 품고 있어야 하는 상황인데, 더 늦으면 노산으로 분류된다.
코로나 19로 종일 아이와 함께라지만, 사실 아이가 자라면서 이제야 겨우 손발이 조금은 자유로워졌는데 다시 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도 들었다.

사실 아이 둘은 낳을 생각이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그렇게 낳아 기르고 싶었다.
둘째를 계획했던 그 해에 아이 말고 암이 왔을 뿐이었다. 조기폐경을 하더라도 항암을 서두르자는 의사에게 죽어도 싫다고 박박 우겼던 게 나였다.
여차저차 표준치료가 끝나고 나니 다시 그 지점인가 보다. 당장 내년 초에 있을 본스캔(전신뼈검사)은 꼭 해야 할 것 같아서, 혹여 가지더라도 그 검사 이후로 잡아야겠다고 하루에도 여러 번 생각이 갈팡질팡 하던 차였다.

출처. sbs 동상이몽


생각만 했지 검색은 하지 않았는데,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내 머릿속에 들어가 앉아 있나 보다.
예전에 부모 자식 간의 이야기를 다뤘던 동상이몽 프로그램을 보여준걸 보니 말이다.

아이가 일곱인 어느 집의 첫째 딸과 엄마의 사연이었다. 나는 아이를 저렇게 많이 낳을 생각도 없지만, 그래도 본 김에 앉아서 봤다. 그리고 아이도 곁에서 같이 봤다.
할머니 할아버지에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 일곱.
이 대가족 안에서 엄마를 도와 살림하고 동생들을 챙기는 열네 살 언니의 삶이 참 고단해 보였다.
모두가 그 고단함에 공감하던 중에 김구라 씨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는데, 그 말이 바로 “아이고, 네가 너네 집 소구나 소.” 였다.

...

우리 집 여섯 살 어린이는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하루 종일 “니가 소구나 소.”를 종알거리길래, 그 말에 패널들 모두가 웃었어서 그게 재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싶었다.

...


“엄마 나 동생..”

이틀이 지났나.
밤에 자려던 아이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엄마 나 동생 없어도 돼요. 사촌동생들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그냥 나 하나만 잘 키워줘요. 나는 소가 되기 싫어요.”

그날 밤 이후로 아이는 동생은 필요 없고 사촌동생을 낳아달라고 조르고 있다.
이유는 똑같다.
방송에 나온 언니만큼은 절대 아닐 텐데, 동생들 챙기고 먹이고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하는 실제 모습을 본 게 아이 입장에서는 충격이었나 보다.
이래서 동생이라는 존재는 큰애가 아기일 때 연이어 낳으라고 했나 보다.


아이의 말을 전해 들은 남편은 정신없이 웃느라 바빴고, 할머니들은 아이가 똑띠라며 하나나 잘 키우라고 하셨다.

딸 하나만 키우면서 우아하게 살 팔자인가 보다.

우아하게 골골 백세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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