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지 Oct 07. 2020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암환자의 삶)

아기 엄마의 투병일기

주말 내내 아팠다.
부러진 발가락도 아프고
발가락 때문에 목발 짚고 다니느라 어긋난 온몸 관절들도 아프고
세수하다 삐끗한 손목도 아팠지만,
무엇보다 속이 너무 쓰리고 아팠다.


사실 나는 위가 그리 건강하지 못하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안 좋았는데, 성인이 되어 커피를 물처럼 들이켜어서인지 더 안 좋아졌다. 그런 이유로 우리 집에는 제산제가 마데카솔 타이레놀만큼이나 상비약이다.
보통은 새벽에 속이 쓰려 깬다.
제산제를 꺼내 뜯어먹고 웅크리고 엎드려 한참을 있으면 곧 가라앉는 게 평상시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이 즈음의 통증은 양상이 달랐다. 결국 제산제를 한 봉 더 먹고서야 좀 진통이 가라앉았는데, 그마저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침대 위에 웅크리고 엎드려 끙끙 앓는 동안,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위가 아닐지도 몰라.
유방암은 뼈랑 폐 그리고 간과 뇌에 잘 전이가 된다는데 혹시 간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


나는 직장 종합검진으로 암을 찾았다.
그때 받은 결과표는 유방외과 정밀검진을 요한다는 내용과 위 상태에 대한 언급 외에 모든 게 정상이었다. 비록 암에는 걸려있었지만 그래도 제법 다른 문제는 없는 몸이었다.
2년이 지나, 내시경까지 제대로 챙긴 올해의 검진은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뭐가 그렇게 많은지.
무슨 결절과 혹이 그렇게 생겼는지.



"나이에 비해 뭐가 참 많으시네요."

주말 내내 당장 동네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갈까 적당히 버티다 월요일에 동네 내과에 갈까 한참을 고민했다.
결론은 버티는 걸로.

그렇게 버텨서 동네 내과에 갔다.

복통이 느껴지는 위치와 통증의 양상.
올해 1월에 유방암 항암치료를 마친 환자라는 사실.
몇 달 전에 있었던 건강검진 결과.
혹시 간이나 담낭이나 췌장 쪽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싶은 불안감.

내 말을 들으며 건강검진 결과지를 병원 차트에 기록하던 의사가 말을 꺼냈다.
나이에 비해 뭐가 참 많다고.
"그러게요. 암 치료 하나 받고 났더니, 뭐가 되게 많아졌네요."
목발을 옆에 세워놓고 앉아 너스레를 떨었다.

의사는 위를 통증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내 염려와는 다르게 간이나 다른 수치가 괜찮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검사에 나온 지표들도 아직은 염려할만한 것은 아니라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그래서 나는 내 몸에 없다는 간염 항체주사를 맞고, 제산제보다 더 강한 약을 처방받아 병원 문을 나섰다.


간염 항체.
분명 아이 임신을 준비하면서 간염 주사를 맞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종합검진을 받을 때마다 항체가 없다고 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안 생기는 몸인가 보다.' 하고 살았다. 앞으로도 맞을 생각이 없었는데, 혹여나 간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겁에 질린 주말을 보내고서야 그 주사를 맞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암이 재발되고 전이될 요인을 이렇게라도 제거할 수 있다면, 이거라도 해야 하지 싶었다.  


마음이 바뀐 이유는 사실 아이 때문이었다.
엄마가 끙끙 앓았던 며칠간, 엄마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면 아이는 배고픔을 숨겼다. 배가 고프지 않다고 세상 생글생글 웃고 놀다가 아빠나 할머니를 만나야만 배가 고프고 간식이 먹고 싶다고 필요한 것을 술술 꺼내 놓았는데, 그걸 보고 있으니 아픈 속이 더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항암을 하던 시기에는 당장 어떻게든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유아여서 마음이 짠했고, 이젠 제법 어린이라고 눈치를 보고 배고픔을 참는 모습에 심장이 찢어지는듯했다.
그러니 저 불쌍한 내 새끼를 위해서라도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위험요인을 하나씩 없애는 노력이라도 해야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혼자 끙끙 고민하느라 밤새 고민하지 말고, 병원에 와서 확인해 염려 거리 하나라도 내려놔야지.



주사를 맞고 약국에서 약을 지어 들고 정형외과로 갔다.
지난주에 반깁스를 하고 일주일이 지났으니, 오늘은 뼈 사진을 찍어 상태를 봐야 했다.
뼈는 제자리에 잘 붙고 있다고 했다.
혹시 지병이 있으시냐* 묻던 의사의 심각한 표정이 오버랩되며, 뼈가 잘 아물고 있다 말하는 환한 얼굴이 더욱 환하게 보였다.
그래도 아직은 젊다고 뼈도 빨리 아무나 보다.
젊어서 암이 빨리 자랐는데. 젊어서 뼈도 빨리 아무는구나.
(* 이 나이에 엄지발가락이 부러져서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했다. 혹시 골다공증 같은 질환이 있을지 모르지 골밀도 검사를 하자는 말을 들었다.)

그립다. 오리갑.


내가 잠실야구장에서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서서 목청 터져라 야구를 보던 시절, 그 시절 도루왕은 엘지 트윈스 이대형 선수였다.
"슈퍼 소닉. 이대형 안타. 오오오오오오오 안타."
일단 출루만 하면 어찌나 도루를 잘하는지, 이대형이 출루를 하면 상대 투수는 견제구를 너무 던져서 우리 팀 관중들의 야유를 사곤 했다. 맨날 지기만 하던 경기에서 그나마 제대로 신이 나는 순간 중 하나였다.
언제부턴가 이대형이 나오면 같이 야구를 보던 사람들의 주문이 하나 더 늘었는데, 바로 "대형아 몸 아껴라. 이제는 뼈 부러지면 잘 붙지도 않는다."였다. 아직 젊은데 무슨 뼈 타령인가 싶었지만, 그 시절 같이 야구를 보던 오빠들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병원 의자에 앉아 잠시 그 시절을 회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지금이라도 당장 잠실야구장에 달려가서 응원가 메들리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아이 하원 하러 갈 시간.
다시 목발을 짚고 절뚝이며 주차장으로 가야 하는 신세다.


선생님 손을 잡고 내려온 아이가 엄마를 보자마자 꽃 한 줌을 내밀었다. 엄마가 병원을 오가는 사이,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꺾어왔다고 했다.
이미 다 시들어버린 꽃은 집에 와 물을 올려줬어도 살아나지 못했다.



표준 항암치료가 끝났다. 분명 치료는 끝났는데,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요즘이다.
암은 없앴는데, 온몸 곳곳에 성한 곳이 없다.
그래. 살겠다고 죽지 않을 만큼의 독극물을 집어넣었는데, 이 정도면 훌륭하지.
그래도 이런 순간에는 한없이 서글퍼진다.

젊고 풋풋했던 시절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젊고 풋풋하고, 건강하고 걱정 없었던 그 시절이 유난히도 그리운 날이다.  






상지 | 商摯
*mail | piaounhui@gmail.com
*insta | @mintc_jaey : 일상계정
              @mintc_books : 글쓰기 북리뷰 계정

댓글과 좋아요는 저에게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나는 소가 되기 싫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