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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콜라 Jul 11. 2024

반장 선거

학기가 시작할 때 꼭 치르게 되는 날이 있다.

바로 '반장 선거'를 하는 날이다.


아이들이 반장 선거를 대하는 태도는 정말 다양하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 있게 "나 반장 선거 나갈 거야!" 선언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난 안 나갈 거야."라고 빠르게 포기하기도 한다.

또 어떤 아이들은 "나가볼까?"라며 갈등에 휩싸이기도 한다.


며칠 전부터 꼼꼼하게 공약 발표를 준비하고 연습하는 아이도 있는가 하면

그날 아침 쭉 찢은 종이에 급하게 공약을 준비하는 아이도 있고,

아무 준비 없이 그냥 나와서 아주 짧은 한 마디를 하고 들어가는 아이도 있다.


준비를 열심히 한 아이도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아이도

개표의 순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너무나 긴장된 표정으로 한 표, 한 표를 간절히 원한다.


반드시 누군가는 당선되고

누군가는 당선되지 못한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는 아이가 나올 때도 있다.


선거 전 선거의 의미와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에 대해 교육을 해도 어떤 해는 인기투표가 되기도 하고, 어떤 해는 아무 공약도 말하지 않은 아이가 웃기다는 이유로 뽑히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선거가 끝나면 꼭  한 명쯤 눈물을 글썽이며 슬픔에 잠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선거 후보로 나선 어린이들은 용기가 엄청난, 아주 대단한 어린이들이라며 칭찬을 하고 R의 이야기를 해준다.


R은 반장 선거를 시작하는 2학년 때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반장 선거와 부반장 선거를 나갔다.

그리고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번번이 실망하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R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다음 학기에 또다시 도전하고, 그다음 해에 또다시 도전했다.

어떤 때는 자신이 적은 1표밖에 받지 못하고, 또 어떤 때는 3표를 받았다. 언젠가는 아쉽게 2등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6학년 반장 선거에서 R은 최고 득표수를 받으며 반장에 당선되었다.

R은 "선생님! 저 진짜 매년 빠짐없이 도전했는데 드디어 처음으로 반장이 되었어요!"라며 기뻐 소리쳤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던 반장이 된 R은 누구보다 열심히, 즐겁게 반장의 역할을 수행했다.



매년 반장 선거에 떨어지면서 R은 실망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다음 선거를 기대하며 즐겁게 학교 생활에 참여했다.

아이들은 안 보는 것 같아도 시간이 쌓일수록 누가 우리 반 반장이 되면 좋을지, 어떤 친구가 열심히 잘 해낼지  판단하는 눈이 생긴다.


R이 반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언제나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하였고,

반장을 하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다른 친구들 눈에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매번 떨어졌음에도 끊임없이 반장 선거에 포기하지 않고 나온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위해 몇 번이고 도전할 수 있는 마음.

창피함을 무릅쓰고 실망을 넘어서서 그래도 한 번 더 도전해보는 마음.

꺾이지 않고 계속 하는 마음.

그리고 그 끝에 얻게 된 보답에 기쁘게 최선을 다해 임하는 마음.

내가 R에게 배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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