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시금치는 안 먹어. 파프리카만 먹을래. 이 고기는 싫어."
씹던 고기를 휴지 한 장 뽑아 뱉고, 아들은 파프리카를 아삭 씹으며 얘기한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애써 숨긴 채 잔소리한다.
"조금만이라도 먹어.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지. 편식하면 안 돼."
사실 아들에게는 비밀이지만, 나는 지독한 편식쟁이였다. 맘에 드는 반찬이 없으면 밥을 아예 안 먹었으니, 나에 비하면 우리 아이는 골고루 먹는 셈이다.
날 키웠던 것. 반은 간식이었다. 할머니는 엄마와 자주 실랑이를 벌였다. 이런 간식을 자꾸 먹이니까 애들이 밥을 안 먹죠. 그럼 이거라도 먹어야지, 안 먹어서 삐쩍 마른 애들을 그냥 놔둬? 엄마는 간식 껍데기를 볼 때마다 걱정이 되었지만, 할머니가 육아의 대부분을 담당했기에 애써 신경을 껐단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우리를 위한 초콜릿을 사 왔다. 명절이나 생일에는 근처 슈퍼에서 우리를 가장 기쁘게 하는, 과자 선물세트를 사 왔다. 알록달록한 포장지를 뜯으면 나를 일주일 동안 기쁘게 해 줄 온갖 과자들이 가득 차 있었다. 할머니는 젖병을 못 끊는 쌍둥이에게 5살까지 젖병을 물렸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가 양치질을 마무리해준 기억은 없다. 아마 아주 어릴 때부터 각자 칫솔질을 하게 놔두지 않았을까 싶다. 고로 우리는 충치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도 그 시절 좋아하는 반찬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가 '빨간 돼지고기'라고 부르던 제육볶음이었다. 할머니의 제육볶음은 특히, 보리차에 밥을 말아먹을 때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밥을 싫어하던 나는 밥 먹는 시간이 되면 기분이 안 좋았는데, 반찬으로 제육볶음이 있으면 군말 없이 밥 한 그릇을 비웠다. 적당히 빨갛고, 적당히 국물기가 자작했던 할머니의 제육볶음. 나는 세월이 흘러도 할머니의 제육볶음만큼은 잘 먹을 자신이 있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할머니가 우리 집 일을 관두게 되었고, 할머니가 손수 만든 반찬을 먹을 기회가 사라졌지만 내 마음속의 일등 반찬은 역시 빨간 돼지고기였다. 대학생이 된 뒤,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던 학생 집이 마침 할머니가 사시는 동네여서 과외하는 날에 맞춰 몇 번 찾아갔다. 할머니는 그때마다 나를 반겼다.
"아이고. 우리 애기 왔어? 이렇게 컸어? 아이고."
스무 살의 나를 이미 봤는데도, 스물한 살, 스물두 살 나이를 먹어가는 내가 계속 크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할머니는 종종 날 위해 특별히 제육볶음을 해놨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제육볶음인데 상을 보는 순간, 어쩐지 낯설고 속상하다. 할머니의 빨갛고 자작하던 제육볶음은 십여 년 사이 어느새 색도 연하고 국물도 많아졌다. 할머니가 연세 들면서 입맛이 변한 건지, 미각이 둔해진 건지, 제육볶음은 무척 싱거웠다. 그 작은 방에서 밥상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와 마주 앉는 일은 슬펐다. 더 이상 나는 그 제육볶음을 만날 수 없구나. 할머니는 점점 늙어가는구나. 나는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억지로 밥과 눈물을 꼭꼭 씹어 함께 삼켰다.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빨간 돼지고기이다.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서도 제육볶음, 두루치기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갈 정도다. 어쩌면 할머니는 하늘나라에서 날 보며 '우리 애기는 여전히 빨간 돼지고기를 좋아하는구나.'하고 흐뭇하게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늙은 할머니가 다 큰 나를 생각하며 요리했을 그 싱겁고 묽은 제육볶음이라도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머니, 여느 맛집을 가봐도 나에게는 할머니의 빨간 돼지고기가 최고야. 그 어렵지도 않은 얘기를 생전 한 번도 못해준 게 미안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