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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Aug 12. 2022

아홉 살의 상실감

치즈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것

아침에 큰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다녀왔다. 치과의사 부모여도 제 자식 치료는 꺼려지는 법. 게다가 영구치가 이미 머리를 꽤 많이 내밀었는데도, 유치가 꿈쩍도 안 해서 마취를 하고 뽑아야만 했기에 고민 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소아치과로 갔다. 나도 소아환자들의 유치를 많이 뽑아봤지만, 그렇게 흡수가 안 된 긴 뿌리를 가진 유치는 처음이었다. 장을 꽤 많이 했는지, 치료가 끝난 뒤에도 아이는 거즈를 문 채, 소파에 앉아 한참 얼이 빠져있었다. 치과를 나와서 겨우 한 한마디는 "엄마, 마트에서 치즈볼 큰 거 한 통 사가자."였다. 커다란 치즈볼 통을 끌어안고 집에 가는 길에 아이 몇 번이나 "엄마, 허전해."라고 중얼거린다. "허전하지, 오랫동안 그 치아가 입안에 있었으니 적응되려면 하루 이틀 걸릴 거야." 아이도 점차 상실을 배워간다.


얼마 전에는 친정식구들이 오랜만에 모이게 되었다. 외할아버지가 이제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상기시켜줬더니, 네 살짜리 제 동생에게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 있다고 가르쳐준다. "나도 하늘나라에 갈래."라는 동생에게 제법 여유로운 웃음으로 거기는 갈 수 없는 곳이고, 할아버지는 이제 올 수 없다고 알려준다. 5년 터울, 그 사이에 아홉 살에게도 저만의 역사가  생겼다. 상실의  역사. 그 시작은 마트에서 잃어버린 닳고 닳은 곰돌이 애착 인형이었을 테다. 그렇게 아이들도 서서히 인생을 배워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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