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오른쪽 엄지손톱 주변의 살 느낌이 어색하다. 어색하지만, 낯설지 않은. 내가 어제 손톱을 바짝 깎았던가?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하루 종일 거슬린다. 밤에 클렌징크림으로 쓱쓱 얼굴을 문지르다가 손을 보니 역시 평소보다 엄지손톱이 너무 바짝 깎여있다.
늘 가려져있다가 갑작스레 시야에 나타난 연약한 살이 서러워보인다. 앞으로 이틀 정도는 세상풍파를 겪으며 점차 단단해지겠지. 또 너에게는 든든한 손톱이 있잖아. 다시 손톱이 널 가려주겠지.
잠든 아들의 모습을 보니 흡사 이 살과 같아 보여 안쓰럽고 짠하다. 겁이 많고, 낯선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을 힘들어하는 콩이. 이제 곧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엄마가 손톱역할을 못해주는 시간이 많아질텐데. 스스로 단단해지는 법을 어서 배워나가길.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콩에게 선택적함구증의 조짐이 보인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있는 것은 아니지만 ,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자니 나의 과거 성향과 많이 겹친다. 겹치다보니 상황별로 아이의 행동이 예측되고, 그 예측이 맞아떨어질 때마다 좌절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횟수가 늘수록 나는 담담해지기도 하는것 같다. 무뎌지는 것이다.
하루는 언니에게 물었다.
"어린시절 입을 닫고 있던 널 만나면 무어라 얘기를 해주고싶니?"
"글쎄......쫄지말라고?"
"나는 매일 생각하는데도 모르겠어. 뭐라 얘기를 해줘야 도움이 될지...... 한가지 대답밖에는 안떠올라ㅡ생각보다 사람들은 널 신경쓰지 않아. 네가 입을 열고 평소처럼 행동해도 그들은 너에게 집중하지 않아. 입을 열어도 돼. ㅡ하지만 그것은 7살 이후의 우리에게 하는 말이지. 4살의 우리에게는 뭐라고 해야할까..?"
"맞아. 유치원때의 우리는...... 말하고 싶은데 입이 안떨어지는게 아니었어. 우리는 그냥 아무와도 이야기하기가 싫었던거잖아."
맞아. 편하지 않은 장소에서는 말하고 싶은 의욕이 코딱지만큼도, 전혀 없었다.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콩이 다른점이 있다면, 첫째는 엄마보다는 내가 더 근무시간 조절의 자유가 있어서 양육시간이 많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엄마와 이모가 있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콩은 나보다 금방 이겨내리라. 단단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