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는 다 불편하거든요
날이 따뜻하다. 어느새 콩이 숲놀이학교를 다닌지 두 달 정도 됐다. 집에서는 아직도 많이 울다가 나가지만, 가서는 곧잘 지내는것 같다.
처음 며칠은 긴장하고 언 표정으로 자리에 앉지도, 밥을 먹지도 않았다. 내 예상대로 아이가 결국 나처럼 되는것 같았다.
그래도 며칠만에 선생님을 곧잘 따랐다. 문제는 아이들 옆에는 가지 않고,선생님만 너무 따라다녀서 '그림자'라는 별명이 붙었단다.
시간이 지나니 선생님은 안되겠다 싶어 일부러 콩한테 선생님 손 잡지 말라고 친구 손 잡으라고 시켰단다. 그날부터 어쩐지 하원 후 집에서 많이 울고 보챘다.
콩이가 선택적함구증 인가 싶은 순간들은 여전히 종종 있지만 , 그렇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순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참 다행이다. 이제 밥도 잘 먹고, 아이들 옆에서 혼자 놀긴 논다. 무엇보다 친구들과 함께 율동을 따라하는 동영상을 보고 눈물나게 기뻤다. 그러나 여전히 ,선생님이 '화장실 갈사람 손들으라'해도 손들지않고, 콩에게는 늘 모든 질문을 개인적으로 한번 더 해줘야 한단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얘기를 먼저 잘안해도 선생님한테 말을 할 때가 꽤 있다니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나는 선생님한테 조차도 필요한 얘기를 못했었으니까.
만약 내가 선택적함구증을 겪지 않았다면 , 몰랐을 많은 점들이 있기때문에 나는 남들보다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같다. 증상은 다 다르겠지만 , 내가 겪었기 때문에 더 감이 잘 오는경우가 있다.
단순히 소극적인 아이들과 선택적함구증 아이들의 차이점이 몇 가지 있다. 나와 언니의 경험으로 조금 서술해보려한다. 집에선 시끄럽고 평범한 아이들, 유치원이나 학교 등 특정 환경에서는 돌변한다.
1. 배가 고픈데 먹지를 못한다. 쑥스러워서 먹지 못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선택적함구증 아이들은 간식이나 밥을 가지러 가는 행위 자체도 긴장해있다. 입을 크게 못벌리고 경직된 표정으로 씹는다.
2. 다른 친구들처럼 율동을 할 수도, 안할수도 있다. 도저히 못따라하겠어서 가만히 있거나, 나만 혼자 안따라하는것이 튀어 부끄럽기때문에 어떻게든 대충 따라한다. 율동을 하는 여부는 아이들마다 아주 다양할 것이다. 단순히 앉아,일어서 같은 통일된 행동은 모두 따라하지만, 율동은 좀 다르다. 아마 잘 따라하더라도 표정이 밝지는 않고 의무적으로 따라하는 것이리라.
3. 어쩔 줄모르는 순간에 선생님의 지시가 있으면 좀 더 수월하게 행동한다. 가령, 선생님이 "이거 먹고싶은 사람 앞으로 나와."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자. 나는 저 간식이 지금 너무 먹고싶은데도 나가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해를 못할테지만 , 정말 발이 안떨어진다. 내가 나간다고 해서 아이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마치 그렇게 느껴진다. 다른 친구들이 다 받아먹어도 끝까지 참는다. 차라리 "전부 다 나와서 이거 받아가~"라고 하면 갈등의 여지가 없는데, 자율적인 의지가 필요한 일은 그들에게 어렵다. 다른 친구들이 냠냠쩝쩝 먹고있어도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선생님이 "민트야,너도 얼른 와서 이거 먹어~"라고 하면 그제서야 먹는다.
4. 발표시간에 개미 목소리로 발표하는 것은 사실 그리 기뻐할 일은 아니다. 물론 아무 말도 하지않고 서있는것보다 백배 나은 일이지만 말이다. 정해진 문장을 읽는 것보다 나의 생각을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더 큰 도전이다. 함구증이 아닌 소극적인 아이들도 발표는 작게 얘기할 수 있다. 아마 그들은 자기 생각을 얘기할 때 부끄러워서 웃는다거나 혀를 내민다거나 쑥스러운 감정을 표출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못했다. 발표를 할 때 쑥스럽고 힘든 감정을 표정으로 보이지 못한다. 정해진 문장을 읽을 때도, 내 생각을 발표할 때도 표정은 똑같다. 우울하고 힘없는 표정. 발표할 때의 목소리크기가 중요한 건 아니다. 만약 아이들 한가운데서 조금이라도 발표 중 희미하게라도 웃을 수있다면 그건 정말 기뻐할 일이다.
5. 입이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는 긍정의 표정 뿐 아니라 부정의 표정도 못한다. 웃는 것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좋은 상황이 닥쳐도 자연스럽게 찡그리거나 울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방주사 접종 시간에도 심장은 아주 많이 콩닥 거리는데 , 표정은 무표정하다. 주사가 자입되는 순간에도 아프지만 찡그리지 못한다. 옆 짝꿍이 내 손을 꼬집을 때, 차라리 찡그렸더라면 나를 덜 괴롭혔을텐데.
치과에 어린 환자들이 오면 반응이 가지각색이다. 그 중 마취주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모든 치료를 얌전히 잘 참아내는 아이들이 간혹 있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고, 치료하기 수월하니 감사한 일인데. 나는 어쩐지 그 아이들을 보면 조금 딱할때도 있다. 어찌보면 의젓한 아이이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남들 앞에서 감정 표현을 자연스럽게 하지 않는것이 생활화된 것 같아서 말이다. 어릴 때 수많은 이 치료를 받았던 나도 치과의사선생님에게 참 잘한다고 매번 칭찬을 들었었더랬다. 칭찬받지 않아도 괜찮으니 , 무섭고 긴장되는것을 표현하는 편이 좋을텐데..하지만 다시 돌아간다해도 나는 아픈것도 참고 떨리는것도 참았겠지 ?
콩이 숲학교에서 미소를 지을때가 많다고 하여 참 다행이라고 안심이 되었는데, 어제 처음으로 소리를 내서 웃었단다. 그 말에 나는 어쩐지 감격스러웠다. 보통 엄마들로서는 이게 왜 감격인지 정말 이해가 안가는 일일테다. 작은 일에도 기뻐하라고 내가 그 험난한 시기를 겪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