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6년 같았던 6개월...
콩이가 드디어 아이들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다닌 지 6개월 만에. 엄마는 어린 시절 입을 열기까지 6년이 걸렸는데 말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콩이가 말을 안 하는 것에 대하여 내가 걱정하면, 그 정도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정작 콩이가 몇 마디 하는 거에 대해 내가 기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다.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나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선생님은 아직도 콩이가 집에서는 수다쟁이에다가 대화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것을 모르니 그럴 수 있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처음 입 떼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 한 번 두려움을 이겨내면 그 뒤로는 아이들과 섞이는 일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에 차차 가속도가 붙으면서 더 좋아지리라는 것을 난 안다.
무엇이 콩이를 변하게 했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짐작 가는 일이 있다.
첫째, 어린이집 선생님이 바뀌었다. 선생님이 바뀐 것에 엄마들은 매우 불안해했고 나 또한 반갑지 않았으나, 전화위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콩이는 사실 기존 선생님을 좀 무서워했다. 그분은 목소리가 크고 기분이 얼굴에 잘 나타나는 스타일이었는데, 콩이는 남의 눈치를 지나치게 많이 보는 성격이라, 나는 어린이집 첫날부터 담임선생님과 콩이가 적응이 서로 오래 걸릴 것 같다는 감이 왔었다. 콩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종종, 선생님이 콩이를 안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콩이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해 무엇을 물어도 대답을 확실히 안 하고, 다시 또 묻게 만들고 한 번 더 챙기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피곤했을 테다.(실제 콩이가 손이 많이 가는 아이라며 나에게 종종 피로를 토해냈으니...) 아기 때부터 식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로 눈치가 빨랐던 콩이 선생님의 피로를 몰랐을 리가 없다.
반면, 새로 바뀐 선생님은 콩이에 대해 잘 모르는 채로 시작하며 아마 더 자연스럽게 콩이를 대했을 테다. 콩이는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어린이 집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재미있어."라고 했다. 긍정적인 시그널이 분명했다.
둘째, 주 1회 하원 후 퍼포먼스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미술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두려워하는 콩이에게 5명 이하의 소수 아이들을 규칙적으로 접하게 해주고 싶었다. 콩이는 아기 때부터 문화센터를 싫어했다. 많은 아이들이 원으로 빙 둘러앉은 환경에 긴장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단지 얌전한 아이로 보일 수 있겠지만, 긴장된 채로 활동을 잘 하지 않는 모습이 나는 힘들었다. 콩에게도, 나에게도 문화센터의 기억을 또다시 소환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며칠 고민을 하다가 소아과 정기검진을 갔다. 소아과 선생님에게 사회성에 대하여 물어보길래 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친구들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며 미술학원을 고려중이라 말하니, 좋은 생각이라고 하였다. 조기교육에 돈을 쓰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남편도, 아이들에 대한 긴장감을 풀 수 있다면 석 달만이라도 다녀보게 하자며 적극 찬성했다. 무엇이든 아이에게 다른 친구들과 있어도 재미있게 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했다. 어린이집 친구 한 명이 그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콩에게는 그 친구를 주 1회 어린이 집 밖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행운이었던 것 같다.
추석 연휴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콩이에게 바라는 일을 말하면 달님이 이루어 준다고 이야기해 주니, 까불대던 표정이 숙연해진다.
"콩아, 바라는 게 뭐야? 우리 소원 빌자."
"엄마, 나 못하겠어. 부끄러워......"
네 살 콩에게는 오랜만에 보는 큰 보름달이 소원까지 들어준다 하니, 하나의 인격체로 느껴졌나 보다. 부끄러운 표정으로 내 뒤로 숨는다.
"그럼 엄마가 대신 이야기해줄게. 달님, 우리 콩이가 부끄러움이 좀 사라지게 해주세요. 어린이집에서도 집에서처럼 이야기 많이 하고 재밌게 놀 수 있게 해주세요."
콩이는 슬금슬금 내 앞으로 나와 달을 바라본다.
"콩아, 또 무슨 얘기할래? 어린이집에서 친구 누구랑 친해지고 싶어?"
"김진우"
"김진우랑도 친하게 지내게 해주세요."
만족한 듯한 웃음을 짓고 잠자리에 들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콩이 눈에 잠이 그득할 때 즈음, 갑자기 콩이 입을 연다.
"엄마."
"응?"
"나 부끄럼이 좀 좋아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