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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끼리 Oct 26. 2017

숫자 3

@pen ee-3, Venice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반갑지 않은 숫자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 숫자는 '3'이다. 3은 나에게 불완전하고, 불안하며, 재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할까?물어본적은 없지만 3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나에게 친구란 동네 친구 한 명뿐이었다. 말을 하지 않았으니 친구가 생길리 만무했다. 나약한 어린아이가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사실 좀 끔찍한 일이다. 그 시절이 지나갔으니 이렇게 냉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 사실 나에게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가 썩 없다.


 그렇게 소리 없이 힘든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보통의 학생이 되어 중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친구관계에 약간 심취해있었다. 교환일기,쪽지 등이 그 시절의 여학생들의 일상이긴 했지만, 그 때의 나에게 '우정'은 몹시 큰 의미였다. 나는  엄정화의 <하늘만이 허락한 사랑>을 들으며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의 갈등 따위를 왜 하지? 우정을 버릴수 있다면 그건 진짜 우정이 아니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늘 친구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있거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있거나, 저 아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 사이가 요새 왜 어색해졌는지 따위를 늘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왜 그토록 친구 문제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요즘 드는 슬픈 생각은 이게 선택적함구증의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가만 생각해보면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내내 친구가 없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오면,  나는 중학교3년,고등학교3년 도합 6년에 어찌보면 대학교4년까지 총 10년  대부분의 시간을 세 명의 친구들 사이에서 마음 졸여했다. 왜 난 꼭 이렇게 되지? 마치 3이라는 숫자는 피하려 하면 할수록 늪지대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사람 세 명이 모이면 좀 더 가까운 친구 둘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결국 나머지 한 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바로 그 나머지 한 명이 늘 나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셋이 모이면 나는 늘 두명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했고 그 둘은 나를 정말 좋은 친구로 생각하지만 결국에 나는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닌, '그 다음' 친한 친구로 선이 그어져 버리는 것이다.


대학생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사귈 기회가 생겼다. 술자리를 좋아하고 (초등학교시절이나 지금에 비해) 좀 더 외향적이었던 그 때는 수업이 끝나면 불러주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내 단짝친구 K는 나보다 훨씬 내향적이었고, 그 술자리에 가지 말고 둘이 놀고 싶다며 나를 설득시켰다. 나는 내 마음보다는 단짝의 의견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술자리를 거절하고 K와 시내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1학년이 끝나가는 시점에는 단짝과 몇몇 술친구들을 제외하고는 그리 가까운 친구들이 없었다.


 2학년이 되면서 나는 예정되어있던 생명과학과로  전공을 선택했고,K도  미리 예정되었던 화학과로 선택했다. 당연히 우리의 시간표는 같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교양과목은 같이 짤수 있었다. K는 금세 같은 과의 J와 친해졌고 그 친구와 시간표도 같이 짰다. 한 번은 나와 같이 듣기로 한 교양과목을 드롭시키고는 나에게 뒤늦게 알려줬다. 화가 나고 실망스러운 일들이 계속 되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학기초에 다른 친구들도 많이 사귈걸. 왜 나는 K만 신경썼을까 싶었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날 K는 나에게 편지를 써주었다. 자신때문에 내가 여러 친구 못사귄것이 미안하다고, 성격 '좋은' 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3년간 느꼈던 외로움을 위로해주지 못했다. 성격이 좋다는 말은 마음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말과 종종 혼용되는 것 같다.


비단 3이라는 숫자가 나에게 주는 부정적인 느낌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엄마는 종종 웃으며 얘기했다.


 "나는 둘만 낳으려 했는데, 니가 따라나오는 바람에 셋이 됐잖아. 세명 안좋아. 생각해봐. 니들 쌍둥이 둘이 그렇게 꼭 붙어다니니 오빠가 얼마나 외로웠겠어. 안쓰러워 죽겠다니까."


 분명 농담삼아 한 이야기인데, 엄마가 웃으며 시작한 얘기는 씁쓸한 표정으로 끝났다. 엄마의 얼굴에는 대상을 알 수 없는 후회만이 고요히 남아있었다.


 그 외에도 아이가 3세때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거나, 직원들이 3명일때 유독 분위기가 안좋다거나 등등의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생략하겠다.


 그래도 언젠가는 3이 주는 기쁨도 맛보게 되지 않겠나. 나는 3이 주는 불안함 따위를 이겨내고 싶다.  오랜만에 로또를 해봐야겠다. 3을 가득 넣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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