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낙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코끼리 Nov 14. 2017

잊힐 때도 됐건만...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순간, 떠올리기 싫은 생각들이 불쑥불쑥 머릿속에 닥친다. 이불킥의 순간. 보통 한 사건이 반복하여 떠오르면서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감정에 이르기도 하고, 간혹 다양한 일련의 사건들이 떠올라서 "미치겠네........."라는 소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예민한 사람일수록, 남이 날 보는 시선을 좀 더 의식하는 편이니 결국 이불킥의 순간도 더 많이 겪지 않을까 싶다.

 

 요즘 나의 머릿속에 자꾸 반복 재생되는 사건은 대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빨간 티를 입고 강남 한복판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던 그 시절. 나는 택이라는 중2병에 걸린 한 학생에게 수학 과외를 해주고 있었다.


 수학에 취약하던 택이는 중1 때부터 나에게 과외를 받기 시작했다. 지인의 지인이 소개해준 학생이었는데, 그 집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택이의 누나는 거실에서 동생의 과외선생을 맞았는데, 그녀는 나와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지희였다. 10년이 지났지만 지희의 얼굴은 별로 변함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벙어리 같이 보냈던 나는 연락하는 동창이 한 명도 없었을뿐더러, 초등학교 시절은 내 기억 속에 통째로 지우고 싶은 시기였다. 그 당시에는 친한 친구들이 초등학교 때 얘기를 해도 나는 입 밖으로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썩 꺼내지 않았다. 나의 친구들은 내가 초등학생 시절 내내 선택적 함구증을 겪은 일은 전혀 모르고 있거나 , 알아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도 못 한다.  


 다행히 택이 과외를 하는 시간에 지희는 대부분 집에 없었고, 나는 창피함은 뒤로 하고 과외에 전념할 수 있었다. 택이는 수학 성적에 서서히 상승세를 보였고, 그의 어머니는 나에게 무한한 신임을 주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중2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고난과 역경의 시기인가 보다. 중2가 되자마자, 그 아이는 집중력이  심각하게 흐트러지고, 문제를 풀자 하면 책상에 팔 괴고 엉뚱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어느 날, 수학 문제집을 함께 푸는데,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렇듯이 그 날 그 문제도 "~~ 빈칸에 써넣으시오."로 끝났다. 집중을 전혀 하지 못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택이에게 나는 조금 화가 났다. 이 녀석이 나를 무시하나.

 " 택아! 잘 봐. 이 문제  풀어보자."

나는 문제를 읽었다.

 ".........(중략)...... 빈칸에 처넣으시오!"

택이가 킥킥댄다. 써넣으시오를 처넣으라니. 나는 속으로는 창피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다시 읽는다. 나의 뇌는 또박또박 그 문장을 반복한다. 그리고 입은 뇌의 흐름을 따라간다. 택이는 내가 읽는 동안 웃음을 참지 못한다. 나는 점점 혈압이 오른다.

" 야! 진짜 너 정신 차려. 그만 웃고, 집중하라고! 빈칸에 네가 한 번 처넣어봐!!!!!!!!"

오 마이 갓. 이건 꿈이 아닐까.

택이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 날의 굴욕이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니. 평소에는 기억력이 왜 이렇게 안 좋냐며 나 자신을 탓하다가도 이럴 때는 제발 이 일에 관한 나의 기억력이 쇠퇴되길 바란다.


 결국 택이는 중학교 2학년 내내 하위권의 성적을 유지한 채, 돌연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택이 어머님이 오랜 시간 고심 끝에 얻을 결론이었다. 한국에 있어봤자 놀기만 하고 대학도 못 갈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서 노는 아이가 거기 간다고 안 논다는 보장은 없을텐데...하기야 갔다 오면 "유학생" 타이틀은 붙을 일이었다. 씁쓸하지만 한국사회의 현실이었다. 어느덧 택이도 서른 살이 되었네. 과연 택이는 유학생활을 무사히 끝내었을런지. 부디 그의 머릿속에 "처넣어봐."의 기억은 잊혀있길.

 

매거진의 이전글 숫자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