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순간, 떠올리기 싫은 생각들이 불쑥불쑥 머릿속에 닥친다. 이불킥의 순간. 보통 한 사건이 반복하여 떠오르면서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감정에 이르기도 하고, 간혹 다양한 일련의 사건들이 떠올라서 "미치겠네........."라는 소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예민한 사람일수록, 남이 날 보는 시선을 좀 더 의식하는 편이니 결국 이불킥의 순간도 더 많이 겪지 않을까 싶다.
요즘 나의 머릿속에 자꾸 반복 재생되는 사건은 대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빨간 티를 입고 강남 한복판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던 그 시절. 나는 택이라는 중2병에 걸린 한 학생에게 수학 과외를 해주고 있었다.
수학에 취약하던 택이는 중1 때부터 나에게 과외를 받기 시작했다. 지인의 지인이 소개해준 학생이었는데, 그 집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택이의 누나는 거실에서 동생의 과외선생을 맞았는데, 그녀는 나와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지희였다. 10년이 지났지만 지희의 얼굴은 별로 변함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벙어리 같이 보냈던 나는 연락하는 동창이 한 명도 없었을뿐더러, 초등학교 시절은 내 기억 속에 통째로 지우고 싶은 시기였다. 그 당시에는 친한 친구들이 초등학교 때 얘기를 해도 나는 입 밖으로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썩 꺼내지 않았다. 나의 친구들은 내가 초등학생 시절 내내 선택적 함구증을 겪은 일은 전혀 모르고 있거나 , 알아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도 못 한다.
다행히 택이 과외를 하는 시간에 지희는 대부분 집에 없었고, 나는 창피함은 뒤로 하고 과외에 전념할 수 있었다. 택이는 수학 성적에 서서히 상승세를 보였고, 그의 어머니는 나에게 무한한 신임을 주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중2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고난과 역경의 시기인가 보다. 중2가 되자마자, 그 아이는 집중력이 심각하게 흐트러지고, 문제를 풀자 하면 책상에 팔 괴고 엉뚱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어느 날, 수학 문제집을 함께 푸는데,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렇듯이 그 날 그 문제도 "~~ 빈칸에 써넣으시오."로 끝났다. 집중을 전혀 하지 못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택이에게 나는 조금 화가 났다. 이 녀석이 나를 무시하나.
" 택아! 잘 봐. 이 문제 풀어보자."
나는 문제를 읽었다.
".........(중략)...... 빈칸에 처넣으시오!"
택이가 킥킥댄다. 써넣으시오를 처넣으라니. 나는 속으로는 창피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다시 읽는다. 나의 뇌는 또박또박 그 문장을 반복한다. 그리고 입은 뇌의 흐름을 따라간다. 택이는 내가 읽는 동안 웃음을 참지 못한다. 나는 점점 혈압이 오른다.
" 야! 진짜 너 정신 차려. 그만 웃고, 집중하라고! 빈칸에 네가 한 번 처넣어봐!!!!!!!!"
오 마이 갓. 이건 꿈이 아닐까.
택이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 날의 굴욕이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니. 평소에는 기억력이 왜 이렇게 안 좋냐며 나 자신을 탓하다가도 이럴 때는 제발 이 일에 관한 나의 기억력이 쇠퇴되길 바란다.
결국 택이는 중학교 2학년 내내 하위권의 성적을 유지한 채, 돌연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택이 어머님이 오랜 시간 고심 끝에 얻을 결론이었다. 한국에 있어봤자 놀기만 하고 대학도 못 갈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서 노는 아이가 거기 간다고 안 논다는 보장은 없을텐데...하기야 갔다 오면 "유학생" 타이틀은 붙을 일이었다. 씁쓸하지만 한국사회의 현실이었다. 어느덧 택이도 서른 살이 되었네. 과연 택이는 유학생활을 무사히 끝내었을런지. 부디 그의 머릿속에 "처넣어봐."의 기억은 잊혀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