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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작 Apr 06. 2024

그렇게 42세가 되었다.

  작년에 ‘만 나이 통합법’이라는 게 시행된다고 했을 때, 나는 참으로 못마땅한 심사가 들었었다. 아니 우리가 이제껏 만 나이를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니었잖아? 공문서에 적는 ‘약봉투 나이’랑 지극히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언니 오빠 누나 형 등의 호칭 정리를 위해 필요한 ‘떡국 나이’를 이제껏 잘 구분해서 사용해 왔는데, 갑자기 그걸 일괄적으로 통합해 버린다는 건 일종의 문화 말살 정책 아닌가? ‘문화 말살’이라고까지 과격하게 표현하는 게 너무 큰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국제사회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바로 그 ‘Korean age’에 나는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더랬다. 갓 태어난 아기의 나이가 0살이 아닌 1살부터 시작된다는 건 태아의 시간을 인생의 시간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니까. 한국식 나이 계산법에는 그런 생명존중 사상이 밑받침돼 있었던 건데, 국제사회에 발맞추겠다고 우리 고유의 좋은 정신이 담긴 문화를 굳이 깨버려야 하는가... 그것이 못내 아쉽고 못마땅했다.

  그랬던 내가, 정작 내 나이를 셀 때는 만 나이를 적용하는 이 이중성이라니... 그렇다. 오늘부로 나는 만42세가 되었다. 어차피 생일 무렵에만 잠시 인지하고 곧 까먹을 나이라 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만 나이로 적었다고 구차한 변명을 덧붙여본다. 정말이지 언제부턴가 누가 나이를 물으면 나도 내 나이가 몇 살인지 헷갈려서 그냥 출생연도를 말해버리곤 해왔다. 그러고 보면 어차피 만 나이 통합법이라는 게 나 같은 사람에겐 아무 의미 없었던 건데 나는 뭐하러 혼자 열불을 낸 걸까.

  사실 나에게 만42세라는 나이는 좀 특별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어제까지의 나이였던 41세가 나에겐 특별한 숫자였고, 이제는 그 숫자에서 더 나아갔다는 사실이 특별해진 오늘이다. 내가 그 특별한 숫자 41세를 통과하는 중이라는 걸 깨달은 건 불과 두 달 전쯤의 일이다.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라는 연극을 보게 됐는데, 같은 제목의 프랑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의 핵심 키워드는 ‘장기 기증’이다. 뇌사 판정을 받은 한 청년의 심장이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되기까지의 24시간을 단 한 사람의 배우가 100여 분 동안 무대에 펼쳐내는 작품이었다. 이 기본정보만으로도 이 작품이 끌렸던 가장 큰 이유는 나도 장기이식의 수혜자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2006년에 각막이식 수술을 받았다. 6개월 간격으로 양쪽 눈을 각각 다른 사람에게 기증받았는데, 2월에 수술한 왼쪽 각막의 공여자는 41세 미국인 여성이었다. 그리고 8월에 73세 한국인 할머님의 각막으로 오른쪽 눈까지 마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내 몸 어딘가에 타인의 장기가, 더욱이 국적도 나이도 다른 두 사람의 장기가 이식되었다는 게 내 인생을 꽤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요소였다. 덕분에 내 삶을 희뿌옇게 가로막던 짙은 안개가 걷히고 투명한 각막으로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황송한 인생인가! 그런데 그에 더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특별한 스토리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한 번씩 이 각막들의 원래 주인이었던 분들의 나이를 셈해보곤 했었다. ‘2006년에 41세였던 왼쪽 눈의 나이는 이제 59세인 것이고, 오른쪽 눈은 무려 91세가 되셨구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지금은 내 눈에 들어와 있다 해도 나이를 계산해보면 존칭이 절로 나오는 숫자다. 당시는 만 나이 통합법이 시행되기 한참 전이었어도 병원에 기재되는 나이는 만 나이였을 테니,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나이로는 그보다도 한두 살이 더 많은 것이지 않은가.

  이렇게 내가 각막의 나이를 셈해가며 감히 구순이 넘은 어르신의 인생을 대신 사는 듯한 환상에 한 번씩 빠져보는 건, 내가 알고 있는 각막 공여자들의 정보가 국적과 성별, 그리고 나이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삶 중에 내가 유일하게 그려볼 수 있는 것이 나이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분들의 각막이 내게 와서도 계속 나이를 먹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 그분들의 삶이 멈춘 나이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걸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보면서야 깨달았다. 극 중에서 뇌사 상태에 빠져 심장 공여자가 되는 주인공 시몽 랭브르의 나이는 열아홉 살로 나온다. 작품은 그가 아직 살아있던 시간, 그의 심장을 뛰게 했던 순간들도 보여주기에 관객들은 열아홉이란 나이가 생을 마감하기에 얼마나 이른 나이인지를 더욱 적나라하게 실감하게 된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나는 41세 미국 여성의 각막을 이식받을 때, 만41세란 나이가 얼마나 창창한 나이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고작 만23세였으니... 나에게 서른 살 이후의 삶이 있을 거라고도 상상할 수 없는 나이였다 그때는. 그러니 41세의 죽음이 얼마나 앳된 죽음인지가 와 닿았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보면서 문득, 지금의 내 나이가 만41세라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심지어 연극을 본 시기가 공교롭게도 18년 전 내가 수술을 받던 때와 같은 2월이었다. ‘딱 이 무렵이었겠구나! 고작 이만큼 살고 마감된 삶이었던 거구나!’ 이름도 모르고 직업도 모르고 나이밖에 몰랐던 어느 미국여자의 생의 시간이 그제야 내게 와 닿았다. 그분의 각막을 이식받은 지 18년 만에.

  그 이름 모를 미국여자는 과연 18년 전 그 무렵, 자신의 생의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음을 예견하고 있었을까? 갑작스런 사고사였는지, 아니면 시한부를 선고받은 투병 끝의 죽음이었는지... 사인(死因)에 관해선 들은 바가 없으니 생의 마지막 며칠을 어떤 심정으로 보냈을지는 짐작할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든 못 했든 41세의 죽음이 허망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던 당시  혹은 내 친구들 중 누군가가  죽음을 맞는다고 상상해보면 41세의 죽음이 당사자에게나 주변인들에게 어떤 느낌이었을지 대충이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막 ‘꽃다운 나이’라고는 할 수 없고, 이제는 ‘청년’에도 속하지 못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아직 해야 할 일과 못다 이룬 꿈이 너무 많은 나이. 그래서 생을 마감하기엔 너무 이르고 아까운 나이. 41세란 그런 나이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거기서 한 살을 더 먹어 42세가 되었다. 내 왼쪽 각막의 본래 주인께선 살아보지 못한 나이. 그분의 몫까지 생각해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18년 전 받은 커다란 선물에 대한 최선의 보답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만42세의 생일을 기념해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해본다. 그 흔한 SNS조차 안 하고 살아온 내가 어딘가에 내 삶의 단편을 남겨보기로 마음먹은 건 싸이월드 이후로 처음인 듯하다. 첫 글이 이렇게나 길어진 걸 보니 그동안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이도 고여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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