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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은 Sep 25. 2023

육아하는 활동가

외로워서 그래

923 기후정의행진 전날 아이와 함께 피켓을 만들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옥토넛 동화책에서 잉클링교수님(문어), 페이소(펭귄)을 밑그림으로 그리고 "바다가 아프대요" "페이소를 지켜요" 글씨를 썼다. 아이가 그 위에다 색칠했다. 출장 준비, 집 청소, 아이 밥 먹이기 사이에 정신없이 진행된 일이다.

923 기후정의행진엔 아이와 길을 나섰다. 걷기 싫어하는 만 6세 딸은 작년 행진과 같이 킥보드를 챙겼고, 서울까지 먼 길에 중간에 찡찡거릴 수 있어 참치김밥과 아이 간식과 물을 준비했다. 날이 추워질 수 있어 점퍼도 넣었고, 낮엔 햇살이 강하니 선글라스, 모자도 챙겼다. 남편이 들었지만, 피켓 외 소소하게 짐이 많았다.


만남의 장소 시청역 7번 출구에서 정치하는엄마들과 반올림이 만났다. 한 시간 사전 행사로 이미 지친 다른 아이에게 캐러멜을 건넸다. 평소 사회적 활동이 활발한 엄마가 지친 아이 옆에서 더 지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내겐 "아기기후소송"을 한 아이에게 인터뷰 약속이 잡혀있었다.

평소 지구지킴이로 활동하는 아이는 배운 것을 실천하고, 곧잘 이야기도 잘했다. 카메라 앞에서는 부끄러움에 내 뒤에 섰다 사방을 뛰어다니다 소리 지르다 하였다. 카메라를 든 이가 "아직 이렇게 어린아이가..."라며 미숙한 아이로 전제하는 질문을 시작하니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파가 많은 곳에서 인터뷰할 카메라를 직접 찾아가야 한 고충과 카메라 앞에선 아이의 부끄러움은 이해받진 못한 채 "한 번 더 그러면 아저씨가 화낼 거야!"라는 윽박지름까지 듣다니! 당장이라도 인터뷰를 그만두고 싶었다.


본 대회 근처에서 우호적이지 않은 인터뷰를 부랴 끝내고, 한결 조용한 시청역 7번 출구에 왔다. "집회 참석도 안 하는 건 처음 본다"는 본투비 운동권 남편의 핀잔에도 행진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합류한 지 얼마 안 돼 아이는 더위와 소음에 힘들다 했고, 교보문고로 빠져 쿠로미와 마이멜로디 스티커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하는 아이 곁을 지켜야 했다.

다음날, 다른 단체 활동가가 결혼하여 아이랑 또 함께했다. 남편은 그 시간 등산을 가도록 했다. 아이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고 나면 지칠 것이 뻔하므로 이후 육아를 하도록. 결혹식장에 들어선 아이는 축하 메시지 그림을 그리고, 결혼식을 지켜보고, 뷔페도 야무지게 골라먹고 활동가들 사이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워낙 아기 때부터 함께했기에 자신이 '반올림'인 줄 안다.

끝나고 집에 바로 와 쉬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글씨도 못 아직 못 읽는 아이는 캐릭터가 입구에 있는 저곳을 가리킨다. 한국만화박물관이다. 아이보다 내가 더 신기하긴 했지만, 4층까지 규모 있는 박물관에 그날따라 축제가 열린 한옥체험관에서 아이는 공연을 보고 솜사탕도 사달라 졸랐다. 행사장 성격과는 상관없는 솜사탕, 액세서리 부스들은 양육자들을 힘들게 한다. 쓴 입에도 오전부터 서둘러 나오느라 못 마신 커피 한 모금이 무척 당겼다.

6시에나 도착한 집에서 한바탕 신경이 곤두섰다 잠에 들었다. 12시간 넘게 꼬박 자고도 피곤한 아침, 유치원에선 추석 맞이로 한복 입고 등원하라고 한다. 오늘따라 자동차가 없는데 택시보단 버스가 좋다는 아이의 성화에 버스를 기다렸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기에 버스를 갈아타는데 아이가 내린다고 배려할 리 없다. 흔들리는 차량에서 킥보드와 가방 두 개와 아이까지, 버스카드까지 내밀고, 계단을 오르며 무사히 유치원에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고군분투했지만, 지각이었고 또다시 미안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킥보드를 끌고 사무실 가는 지하철로 향하는 오전 9:30 나는 이미 지쳤다.

지하철에 요행히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데 임산부에 앉은 중년 여성이 임산부석 옆자리에 앉은 내게 킥보드 때문에 불편하다며 사과 안 한다고 뭐라 한다. 가만히 있지 않고 쏘아붙인다. "임산부석이니 비워두셔야지요!" '당신들 때문에 아이를 더 낳을 수가 없다'라는 말은 속으로 삼킨다.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겠다'는 말을 당최 믿을 수 없는 건 내 임신 기간 의 경험 때문이다.


킥보드를 끌고 도착한 사무실, 나는 유튜브 기획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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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노동안전보건 단체는 근래 여성노동자들의 젠더 이슈 발굴에 힘쓰고 있음, 노동안전보건 단체의 여성 활동가들의 활동을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면 어떨지, 임신, 출산, 육아는 어떠했는지


-이야기 손님 : 반올림 권영은 외


-구성 :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단체 활동과 최대한 병행하는 중인 반올림 권영은 활동가 이야기와 이 과정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고군분투했을 두 동지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어떠한 교훈과 결론을 내리기보다 과거, 현재의 상황을 보여주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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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손님으로  활동가께 전하니.. 이야기 말고, 현재 육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란다. 응원한단다. 그리고 주변에 육아하는 활동가가 없어 외로울꺼란다.


ㅜ ㅜ


혼자 있는 사무실, 혼자서 눈물만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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