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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은 Feb 11. 2024

며느리하려고 결혼한 건 아닙니다.

상견례 때 애인 어머니 손을 잡고 “우리 딸은 찌짐(전)도 잘 못 부칩니더“ 하던 엄마 옆에서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남의 집 전 부치려고
결혼하려는 줄 알아?! “


그래선지 결혼한 지 8년이 넘도록 전은 부치지 않습니다. 함께 먹기에 적당히 밀가루를 묻히거나 행주질은 합니다만. 그 집에서 의례 하게 되어있는 다른 일에도 비슷합니다.


이번 설에도 남편 누나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반죽을 돕고 부칠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남편이 프라이팬 앞에 자연스레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집 가사 분담에도 요리는 남편이라 어색하진 않았습니다. 귀한 막내아들이 자연스레 요리를 담당하고 기다렸던 며느리는 안방에서 아이랑 놀다 잠들어버리니 첨엔 당황했겠지요.


이젠 그러려니 합니다. 안 그러면 어쩌겠어요. 관습이, 전통이, 가부장제가 아무리 압박을 가해도 할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제 쪽인 걸요.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는 남편 맞은편에 잔소리를 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기름을 넉넉히 둘러라. 휴지로 여기 닦아내라. 부침가루는 가볍게 발라라.” 잔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집에서 며느리 역할을

안 하길 천만다행입니다.


저만 안 한다 생각하지 어른들은 봐주시는 거겠지요. 명절을 앞두고 “이제 연로한 어머니 대신 부엌은 며느리! 가”라는 말이 나왔을 때 속으로  명절은 피해야겠구나 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위는 엉덩이 한 번 안 떼어도 비싼 도라지 접시를 담아 코 앞에 놔줍니다. 부엌일은커녕 어떠한 일에 부담을 준 적 없습니다. 얼굴만 비춰도 고맙지요. 딸과 무탈히 살아달라 비는 장모의 마음인가요? 내겐 시어머니이신! (이래서 설명절 아침에 얼른 나왔어야 하는데 아이가 윷놀이 같이 하고 싶다고~ )


근방에 있는 휴지를 그가 손까딱만 하니 멀리서 있는 부인이 부러 가져다주는 걸 보니 그간 대우받고 살았는지 알겠더라고요.  설명절 며느리인 나는 가세상(가부장제)에 맞서는 기분으로 ‘안 한다’ 하고 있는데, 그쪽은 당연하게 누리고 있네요!  당장 균열이라도 아니, 불편하게라도 해야지요.

지난밤부터 안 그래도 전통과 자부심이 가득해보이는 자개장 아래에서 장일호 기자의 <슬픔의 방문>을 읽었습니다. 덕에 힘을 하나 얻었습니다. 지난 추석엔 <가족각본>을 읽었기에 며느리 상을 뒤엎고 싶었습니다. 마음은 그랬다구요...

제 먹은 만큼은 해야지 싶은 마음에 설거지를

돕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네가 사과 깎는다고? “ 하십니다. 하지도 않은 말을 먼저 하시는데. 하~


“저 그런 적 없어요. 할 생각 없어요!”


”저~기 사위 시켜보세요~ “


첨엔 못 알아들으신 어머니... 어찌 사위에게! 당황하시는가 했는데


제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 사이 농담처럼 말씀 하시더라고요! 


”자네가 사과 깎으려나?”


당황했는지, 온갖 너스레를 떨며 사과 하나 깎는 것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확인할 게 있네요. 결혼 첫 해에 어머니께 말씀드렸듯 저는,


 “며느리 하려고 결혼한 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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