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때 애인 어머니 손을 잡고 “우리 딸은 찌짐(전)도 잘 못 부칩니더“ 하던 엄마 옆에서 빽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남의 집 전 부치려고
결혼하려는 줄 알아?! “
그래선지 결혼한 지 8년이 넘도록 전은 부치지 않습니다. 함께 먹기에 적당히 밀가루를 묻히거나 행주질은 합니다만. 그 집에서 의례 하게 되어있는 다른 일에도 전 건성입니다.
이번 설에도 남편 누나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반죽을 돕고 부칠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남편이 프라이팬 앞에 자연스레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집 가사 분담에도 요리는 남편이라 어색하진 않았습니다. 귀한 막내아들이 자연스레 요리를 담당하고 기다렸던 며느리는 안방에서 아이랑 놀다 잠들어버리니 첨엔 남편네 가족은 당황했겠지요.
이젠 그러려니 합니다. 안 그러면 어쩌겠어요. 관습이, 전통이, 가부장제가 아무리 압박을 가해도 할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제 쪽인 걸요.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는 남편 맞은편에 잔소리를 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기름을 넉넉히 둘러라. 휴지로 여기 닦아내라. 부침가루는 가볍게 발라라.” 잔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집에서 며느리 역할을
안 하길 천만다행입니다.
저만 안 한다 생각하지 어른들은 봐주시는 거겠지요. 명절을 앞두고 “이제 연로한 어머니 대신 부엌은 며느리! 가”라는 말이 나왔을 때 속으로 명절은 피해야겠구나 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위는 엉덩이 한 번 안 떼어도 비싼 도라지 접시를 담아 코 앞에 놔줍니다. 부엌일은커녕 어떠한 일에 부담을 준 적 없습니다. 얼굴만 비춰도 고맙지요. 딸과 무탈히 살아달라 비는 장모의 마음인가요? 내겐 시어머니이신! (이래서 설명절 아침에 얼른 나왔어야 하는데 아이가 윷놀이 같이 하고 싶다고~ )
근방에 있는 휴지를 그가 손까딱만 하니 멀리서 있는 부인이 부러 가져다주는 걸 보니 그간 대우받고 살았는지 알겠더라고요. 설명절 며느리인 나는 세상(가부장제)에 맞서는 기분으로 ‘안 한다’ 하고 있는데, 그쪽은 당연하게 누리고 있네요! 당장 균열이라도 아니, 불편하게라도 해야지요.
지난밤부터 안 그래도 전통과 자부심이 가득해보이는 자개장 아래에서 장일호 기자의 <슬픔의 방문>을 읽었습니다. 덕에 힘을 하나 얻었습니다. 지난 추석엔 <가족각본>을 읽었기에 며느리 상을 뒤엎고 싶었습니다. 마음은 그랬다구요...
제 먹은 만큼은 해야지 싶은 마음에 설거지를
돕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네가 사과 깎는다고? “ 하십니다. 하지도 않은 말을 먼저 하시는데. 하~
“저 그런 적 없어요. 할 생각 없어요!”
”저~기 사위 시켜보세요~ “
첨엔 못 알아들으신 어머니... 어찌 사위에게! 당황하시는가 했는데
제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 사이 농담처럼 말씀 하시더라고요!
”자네가 사과 깎으려나?”
당황했는지, 온갖 너스레를 떨며 사과 하나 깎는 것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확인할 게 있네요. 결혼 첫 해에 어머니께 말씀드렸듯 저는,
“며느리 하려고 결혼한 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