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선흘포럼에서
2025.10.22-23
여행 간다 들뜬 아이 손 붙잡고, 날씨 가늠 안 돼 이것저것 챙긴 큰 캐리어에 직전까지 일하다 빈속인 상태로 김포 공항 가는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미 지친 몸.
지친 마음에 더해 언제 선흘포럼에 이르나 했는데, “우와 포슬포슬한 구름이다!” “너무 신나~” 한껏 설레하는 아이가 기분을 풀어준다.
조마조마 어둠 속 돌담길 들어서니 온화한 빛 따뜻한 분위기 잔잔한 웃음 흘러나오고 어디서 이리 모였나 싶은 50여 명이 집중하고 있었다. 제주 여행을 관광객으로 올 때와 사뭇다른 장면이었다.
누구도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기획 집행바가 아닌 서로 나누어 살펴 만들어가는
포럼. 오기 전 조한혜정 선생님께 듣긴 했지만 마지막날 포트락 파티 때 준비에 주도하셨을 레이지마마 이연희 선생님은 “많이들 준비에 힘들죠? 라 걱정해 주는데, 돌발적으로 또 계획적으로 던진 조한 선생님의 제안들이 어렵지 않게 이뤄지고, 장소가 변경되어도 다 찾아오고, 우리가 원하는 판을 열면 따라오더라. 누구 하나 힘든 행사가 되어선 안 된다는 조한 선생의 말씀대로“ 말하셨다. 아무도 모르던 장소에 아이랑 동행하여 뒷자리에 오가다 어느새 양육자들과 함께한 상에서 나눈 대화 중이었다. 식사에 같이 앉은 이들과 어색할 새 없이 본대화에 이르기도 한 건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삶으로 받아들인 것이고, 서로를 살피고 돌보는 것일 수.
참여한 포럼 두 개 중 하나는 비혼 여성주의자, 나이 듦,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늘을 살고 함께 살고자 함이 있었다. 우에노지즈코 선생님은 “내 연구를 잘했다 생각한 건 어떻게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라 거듭 얘기했다.
기혼 여성주의자로 간간이 죽음을 떠올리고 자주 나이 듦을 느낄 때. 5월 대만 아시아젠더평등포럼 후 식사시간 우에노 지즈코 선생님께 말했다. “이제 뭔가 할 줄 알게 되고 판단하게 된 것 같은데, (무람되게 나이가 들어) 얼마 못할까 걱정이다”는 내 말에 “영은, 아직도 한창 남았어 시작이야...” “정말 용감한 싸움꾼이야!” 란 칭찬도. (나는 조한혜정 선생님께 brave fighter! 라 소개하시고) 77세 희수를 맞은 선생님이 말하셨다. 대만 여서점을 동행했던 케이코 선생님은 (우에노 재단) “왕성하게 활동했던 내가 은퇴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많아요. 에너지 넘치고 다정한 우에노를 따라다니며 그 활동을 지켜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는 지금 만족해요 “ 라 했다. 이번에도 케이코는 우에노 옆에서 영상으로 기록하고 챙기고 함께 얘기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 돌파구가 필요한 때“라고 조한혜정 선생님께 말씀드렸었는데, 그래서 할 말이 드릴 질문이 많았었는데, 포럼을 들으며 맨 뒤에서 포럼 장면을 스케치하며 따뜻한 포옹만으로 눈빛만으로 충분하다 여겼다. “나를 만나러 서울에서 제주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연락도 없이 아이손 잡고 나타난 내게 고맙고 반갑고 기뻐했다.
두 번은 없다. 쉠보로스키의 시를 종종 떠올린다. 이것으로 끝일까 늘 안타깝고 조급했다. 두 번 기회가 없을까 포럼장에서 식당으로 아이스크림집으로... 따라가는데, 초대된 손님 옆은 쉬이 자리가 나지 않는다! (곁을 내주는 것도 필요한 일) 스치듯 만나며 늘 처음처럼 케이코 선생님은 ”교토에 와요! 꼭! “ 초대로 환대의 자리를 마련해 줬다. 난 안으며 따뜻함을 느끼며 말 그대로 감사함을 전했다. “Thank you for your warm heart! ”
세 번의 포럼과 그 사이 자유로운 모임은 만 하루 만에 끝났다. 아이랑 아침 산책하다 동네를 어슬렁 거리다 김현미 선생님도 처음 만나고 조한혜정 선생님도 또 만난다.
(난 20년 전 세계여성학대회 때부터!) 내적친밀감으로 인사드리고 또 본대화에 바로 이르다 또 마주쳐요! 인사하며 헤어진다.
제주에 더 머무시는 분들을 위한 안내가 카톡방에 올라온다. 내일도 새롭고 거듭된 대화가 이뤄질지도 모른다. 아니어도 상관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