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사랑한다
생일이다. 스스로 알리고 스스로 생일 선물 사고 스스로를 운동하고 맛있는 거 먹을 예정이다. 가족 외남들이 알아주고 챙겨주는 건 어렵다는 걸 안다. 내가 원하는 선물에 내가 원하는 말만 딱 한다는 건 더욱.
아침에 딸에게 하트옷 잔뜩 박힌 원피스를 입혔다. 엄마 생일이라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알려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라 했더니 저녁 생일파티(파티... 아닌데 말만으로도 설렌다)에 줄 선물 만들어오겠단다. 6세 딸은 내 마음에 쏙 드는 말을 잘한다. 사랑스레 쓰다듬어주고 뽀뽀해주고 내 생일을 더 설레어한다. 한참 전부터.
나의 엄마도 벌써부터 생일 선물로 돈을 보내고 음식을 택배로 보내주긴 했다. 한참 동안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았던 건 오래전 이긴 하나 한참 겪었던 엄마의 부담스러운 편지 때문이었다. 택배를 열면 “사랑하는 우리 딸아”로 시작하는 편지엔 나의 암울한 현재와 노력해야 할 현실과 산적한 미래의 과제로 가득했다. 그리고 엄마가 힘들단다. ‘이 잘난 딸이 뭐가 모자라 이런 지 하루하루 답답하고 속이 상한단다’ 그런 엄마로 만든 그 딸은 택배 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얹힐 듯했고 결과로 보답해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언제까지 우린 늘 미래를 기다리고 오늘을 암울해하기만 해야 해? ” 우울증 고위험군 진단을 받은 뒤 한참을 생각하다 내가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가 지긋하면서도 지친 하루 끝에 그래도 내가 쉰다면 엄마 장롱 아래 까슬한 이불 폭 덮고 깊은 낮잠을 자는 거였는데. 엄마 뱃속 같던 수영장 물속에서
잠영을 하며 영원히 이곳에 머물고 싶기도 한데!
시간으로 치면 15년 전의 일이고 그 후로 많은 변화를 생각할 땐 이제 잊어도 되는 일이다. 잠결에 내 온기가 좋아 파고드는 딸의 볼을 살며시 만지면서 ‘오늘이라 참 좋은’ 내가 되어 다행이다 싶다. 오늘이 내 생일이기까지 하니 더욱 그렇다.
엄마가 보낸 게 맞나 싶은 문자에 화들짝 놀라고 만다. 할 수 있었네! 44년 만에 새로운 엄마를 만난 느낌. 엄마에겐 평생 걸린 변화겠다.
사랑해 엄마. 사랑해 딸아. 사랑해 영은아!
나를 위해 백합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