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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은 Jan 09. 2024

기운을 모아야 한다.

초등 돌봄, 돌봄 지옥을 앞둔 나에게

대망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내일 오후 1시 초등학교 돌봄 교실 뽑기가 열린다. 예비 소집일에 돌봄 신청서를 받아 들고 올 때부터, 또 아니 유치원 졸업식이 있는 날부터 아니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기다려온 날이다. 두려워해 온 날이다.


20년 전에 교수도 엄중한 초등 돌봄 뽑기 이야기를 수업에 앞서하더라.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강산이 두 번 바뀌어도 풀기 힘들다. 아니면 풀지 않는 건지도. 경기도에 사는 손녀의 돌봄 문제에 경상도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긴장한다. 지역, 세대, 진영을 막론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출산율이 낮다며 출산을 장려한다면서 얼마를 지원하고 무엇을 제공한다고 연일 시끄러워도, 원하는 이 모두 늘봄학교를 한다고 양 당이 현수막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해도, 3월 입학생을 둔 초등학생 양육자의 고민은 풀리지 않는다.


현수막이 나부끼는 경수대로 주변엔 지역 돌봄 센터가 있는데,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혼자서 학교에서 길을 건너가기 위험하고 멀다. 세 군데 있던 센터 중 하나는 운영을 멈추었고 한 곳에 연락했더니 대기 17명이다. 나머지 한 곳은 지난주 뽑기를 했다. 긴장 속에 열린 뽑기에 먼 예비 번호를 뽑아 들고 망연자실하는 이도 있었다. 우린 다행히 예비2번인데 순서가 오더라도 학원 하나를 보내 학교 - 센터 연결을 부탁해야한다. 그 시각 난 일터에서 조바심치며 아이가 잘 갔나 핸드폰으로 연락할테고.


학교 돌봄이 있지 않냐고. 뽑혀야 한다. 뽑아야 한다.그게 내일이다. 50명의 학생 중 25명을 뽑는단다. 취약계층, 다자녀가 1,2순위이고 맞벌이는 3순위다. 돌봄을 원하는 일하지 않는 엄마는 뽑기조차 못 한다.(!)


 “돌봄을 지자체에 위탁해야 한다”거나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 라거나 “돌봄으로 아이를 학교에 오래 두는 건 아동 학대” 라며 공적 돌봄을 줄이려는 이들의 목소리는 일단 제쳐둔다. (가만있지 않겠다!)


아이의 친구 엄마들은 무한한 걱정 끝에 휴직과 퇴사를 했고 계약 연장한 한 엄마는 또 답 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 아빠들은 옆에서 어쩌나 어쩌나.. 하며 묵묵히 일한다. 오늘 태권도에서 아이를 데려오는데 참 이상하고도 익숙한 장면이더라. 여성인 엄마가 돈을 감사히 치르면 아빠인 남성이 교육과 돌봄을 착실히 제공한다. 자본주의 시장과 성역할 아래 교육과 돌봄이 착착 이뤄지고 있다니. 공교육 현장으로 옮겨가면 대다수 여성인 선생님이 여성인 엄마를 상대로 여성의 돌봄 선생님과의 관계 속에서 길항작용을 할 테다. 남자들은 어디로 갔냐고.


익숙하지만 무거운 돌봄을 오늘도 여성들이 묵묵히 해낸다. 일 하면서 또 일을  안 한하면서.


나는 내일 일을 빠지고 신성해보이기까지 한 뽑기에도전한다. 기운을 모아야 한다. 아이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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