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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은 Aug 31. 2023

텃밭 이야기

요란하고 풍성한

왜 텃밭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랬구나...


집회나, 기자회견에서 만나던 노동안전보건활동가가 질문을 건넸다. **이 문제에 대해서 **단체 입장은 어때요? 이번 집회 참석 가능해요? 이런 질문을 주로 주고받던 터라 낯선 질문이긴 했다.


"그러니까. 무언가 무척 기르고 가꾸고 싶었어요. 아이를 더 낳아 기르고 싶었지만, 상황이 어려우니, 식물이라도..."


육아도 그랬지만 잘 기르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처음이라 만만치 않았다. 겨우 10평이라 했지만, 오이, 콩, 상추, 감자, 고구마, 공심채, 고추, 호박 로즈마리, 참외, 토마토 등 욕심만큼 심어두어 할 일이 가득했다.  


나이 더 들어서 하지!아서라.


유튜브, 책을 보며 열심히 보다 200 텃밭을 가꾸는 부모님께 물어보면 기막힌다는듯 허허. 웃었다.  '아서라' 말렸던 부모님은 4시간 떨어진 우리집을 오자마자  어설픈 밭에 들러 들쭉날쭉한 상추 옮겨 심어 주었다. 지지대 세워주고, 파를 가지런히 금세 심어주셨다. 일단 낳아만 놔라.. 내가  키워줄게. 하던 부모님.  키워주진 못하네! 싶어 서운했는데, 이번엔 말렸던 텃밭을 '언제 모종 심냐. 밭에 물이 많아    텐데.' 라며 걱정해 주신다.  


새싹이 나고, 열매가 나자 아이의 친구, 친구의 부모를 초대해 파라솔 설치하고 흙놀이, 고추, 오이 따기를 했었다. 금방 따온 루꼴라로 피자를 만들고 바질을 얹었다. 샐러드도 옆에 두었다.  여기저기 뻗어나가 어쩔 줄 올랐던 고구마 줄기는 삼일 밤낮 거실에 말려 주변에 나누었고, 넘쳐나는 상추는 이웃에 나누었다. 상추대로도 요리한다네요~ 새로운 요리 재료에 호기심도 나눴다. 이웃과 친구들이 먹기만 했겠나. 텃밭에 들러 오이 지지대로 세우고, 돌도 치워주고, 지지끈도 메어주고, 결코 혼자는 아니었다.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육아처럼 텃밭도 온 마을이 떠들썩했다. 올 해 텃밭도 혼자 할 수 없다 생각했다. 마침 단체가 이사 온 금천구에서 밭갈이도 퇴비 넣기도 모종 나누기도 한다 하니 같이 할 이들만 구하면 되었다.


노동자 생명도 살리는 노동안전보건단체 활동가들, 식물을 살리는 건 어떨까요?

제안서를 그럴듯하게 쓰고 보니 반응들이 다양했다. 농사일 보통이 아니다. 하고 싶지만 바쁘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사람은 살려도 식물은  못 살린다. 남이 하는 거 얻어먹는 게 편하다. 등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자식을 잃은 김용균 어머니는 '어머, 좋아요! 감자 심어요' 했다. '집 베란다에선 잘 안 자라는데 텃밭은 다를까요' 라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나래 활동가는 호기심을 가졌다. '난 안 가겠지만, 아주 가끔 얻어먹긴 하겠다'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이상수 활동가는 선을 그었다.

그렇게 시작한 노동안전보건단체 활동가들의 텃밭  '씨 처음 심어봤어. 너무 신기해!' 라며 가끔이라도 들릴 때면 환호를 질렀다. '직접 따온 상추로 샐러드를 해 먹는데, 못 생긴 거라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겠더라' 라며 오늘의 저녁 식사를 사진 찍어 보내줬다. 회의와 회의 사이 단 30분 있다며 들른 텃밭에서 맨손으로 잡초를 제거하고 '개운하다' 며 만석부자처럼 밭을 둘러봤다. '무슨 가지가 이리 크냐' 며 가지 특화 텃밭이라고 좋아했다. 싱싱한 루꼴라를 먼지만 털고 입에 넣으며 '이게 농사의 맛이다' 했다.

주말에 고추장, 계란프라이, 참기름을 들고 모였다. 텃밭에서 난 채소를 넣고 비벼 먹었다.

맛있었다. 아니 멋있었다.

내일부터 가을 개장이다. 배추와 무 모종을 준다고 하는데 또 쑥쑥 자랄테지. 어쩌나!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겨울, 우리는 김용균재단의 부엌에 자리잡고 김장을 하고 있진 않을지.


벌써부터 요란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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