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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Aug 23. 2021

친구가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친구의 생일날. 

오래간만에 둘이 만나 바닷가를 한 바퀴 돈 뒤 아담한 레스토랑에 들어가 정식 메뉴를 주문하고, 메인 디쉬를 기다리다가 친구가 말했다. 


"There is somebody..."


설마, 했던 마음이 '진짜?'로 바뀌는 순간, 머릿속에 그녀의 9살 된 딸과 남편 A의 얼굴이 훅 떠올랐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녀의 얼굴은 우리가 모두 미혼일 때 만났던 12년 전 그때의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당시 남자 친구였던 A를 얘기할 때처럼 들뜬 표정으로 그녀가 새로운 사랑에 빠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수줍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얼마나 세심한지, 기타 치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는지, 목소리는 얼마나 좋은지. 그의 녹색 눈동자에 대해 얘기하던 친구는 급기야 인**그램을 켜서 그의 사진까지 내게 보여줬다. 


들떠 있는 그녀의 말투와 행동에 나 역시 잠깐 10년이 넘는 세월을 잊어버린 듯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어쩌다 그녀의 마음이 기울게 된 건지, 그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고, 그녀는 어떻게 행동했는지 등등. 그렇게 과거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현재로 흘러올수록 환각 효과가 떨어진 건지, 그녀의 딸과 남편의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물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그 남자가, 혹은 네가 고백이라도 한 거냐고. 


그 질문에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지며, 


"했는데 거절당했어"


라고 답했다. 그녀의 답에 난 두 종류의 충격을 받았는데.. 하나는 그녀가 먼저 고백을 했다는 거고, 또 하나는 그녀가 그토록 우울해 보이는 게 고백을 거절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친구는 남자가 자신을 거절한 것에 대해 정말 상처 받고 우울해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남자가 고백을 거절한 까닭이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한번 실패한 결혼에 대한 후유증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친구는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 슬퍼 보여서. 나라면 그의 상처도 다 감싸 안아 줄 수 있을 텐데 왜 그는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 걸까"


12년 전의 나였다면 아마 친구에게 '그래도 상황 때문이니까, 그 사람을 향한 네 마음이 그토록 크다면 좀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가까워지는 게 어떨까' 뭐 그런 소릴 조언이랍시고 했을 거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녀의 친구로서 그녀의 행복을 바라는 건 당연하지만, 솔직히 그녀를 알아왔던 시간만큼 그녀의 남편과도 친구처럼 알아왔기 때문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묻고 싶었다. 만약 그 남자가 고백을 받아들였다면 그녀는 뭘 할 생각이었는지. 그리고 혹시 그 고백을 하기 전에 A와 딸 생각은 하지 않았냐고. 


그 질문을 소리 내어하지는 않았다. 어쩐지 친구는 그 일을 그녀의 현재 상황과 무관한 일로 대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으니까. 거기다 거절당했으니 이제 마음을 접으려 한다고, 그와의 접점도 줄이려고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굳이 찬물을 끼얹고 싶지도 않았고. 


우리는 그 후에도 한참 동안 식사를 하며, 후식을 먹으며, 차를 마시며, 근처 공원을 걸으며 수다를 떨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헤어졌다.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밖에 나와 있던 남편 A와 인사를 하고, 그녀가 A에게 다정하게 입 맞추며 다녀왔다는 말을 하는 걸 보고 나는 뒤돌아섰다.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던 45분의 시간. 기분이 솔직히 좀 이상했다. 


'사랑'이라니. 

아이들을 향한 내리사랑, 남편을 향한 습관적 인사처럼 사용되는 사랑의 말이 아니라, 진짜 모르는 타인을 향한 이성적 감정이라니. 


그런 감정은 결혼하면서부터 희석되다가 출산과 육아, 양육을 반복하며 아예 도태되어 사라지는 감정인 줄 알았는데. 아니, 도태된다기보다 그 형태와 대상이 변한다고 해야 하나. 타인이었던 사람에게서 내 가족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로 변해가는 그런 감정. 


솔직히 몇 년 전부터 여자 친구들과 만나면 대부분의 화제가 집, 아이들, 육아, 학교, 진로, 휴가, 일 등등에 집중될 때가 많고, '이성'이라고 해봤자 각자 남편 혹은 지인/가족인 남자들의 근황 정도라서 대화에 성별이 제외된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나마 '데이트' 비슷한 주제가 나올 때는 이혼한 친구들과 대화할 때 정도라고 할까. 그래도 대부분 다시 데이트 마켓에 뛰어든 친구들이 찾는 건 '사랑'이라는 원초적 감정이라기보다 '대충 상황이 맞고, 내 처지를 이해해주고 나와도 맞는 사람'이라서 이때마저도 대화는 좀 삭막하게 진행된다. 


그런데. 친구가. 그것도 10년에 가까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아이까지 있는 그녀가. 한 순간의 '사고'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말했다. 그걸 현재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라는 둥 그런 식으로 합리화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뭘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지도 않고. 


다만 그녀는 12년 전 그때처럼 온전히 자기 자신의 감정만을 이야기했고, 심지어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했다. 


아마 누군가는 그녀가 대책 없다고, 무책임하다고,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그녀의 결혼이 이미 파국에 이른 것 아니냐고, 그래서 도피성으로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또 누군가는 한번 사는 인생, 본인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거니 이렇게 운명의 사랑 역시 뒤늦게 찾아올 수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나도 뭐라 딱히 할 말은 없다. 솔직히 나도 이성적으로는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으니까. 그런데도 자꾸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 말을 하던 그녀의 표정이, 들떠있던 그 목소리가. 


그건 꽤 충격적이었으니까. 이미 사라졌다고 믿고 있던 멸종 동물을 다시 마주했기 때문일까.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일이 가능해지는 걸 목격했기 때문일까. 금단의 영역이라며 문이 있는 줄도 모르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걸 봤기 때문일까. 


차라리 친구가 누군가와 키스했다거나 원나잇을 했다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충격받진 않았을 거 같은데 (좀 서글픈 일이긴 해도 이 나이쯤 되니까 그런 '사랑과 전쟁'같은 이야기는 정말 흔하게 일어나더라;;), '사랑'이라니. 


..... 


남편에게도 차마 못한 말을 대나무 숲에 온 기분으로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왠지 알고 나니 저마저 조마조마해져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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