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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Oct 15. 2023

이별이 필요한 이유

커플은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자기 얼굴 보는 시간보다 상대방 얼굴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아서 그런지 표정도 비슷해지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걸 같이 하려고 하다 보니 취향도 비슷해진다. 그러다 나중에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습관이나 행동, 말투, 버릇 같은 것 마저 따라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연인이 남들이 보기에 개차반인 사람이라면? 


어떤 이들은 당신의 연애를 대놓고 반대할지도 모르고, 조심스레 조언을 건넬지도 모르며, 누군가는 당신 팔자 당신이 꼬고 있는 거라며 뒤에서 혀를 찰 지도 모른다. 혹은 당신의 못쓸 안목을 탓하거나, 당신 역시 동류라 그런 거라며 몰아갈지도.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을 만나는 설명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남들에게는 개차반이라도 당신에게는 더없이 좋고 따뜻한 사람이라거나, 당신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숨겨진 매력이 있다거나, 아니면 헤어지고는 싶지만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몰라 당신 역시 고민 중이라거나. 


그 관계가 유지되든 끝나버리든 간에 그 경험은 당신에게 자국을 남긴다. 어떤 기억, 습관, 사고방식의 변화 등등. 그리고 그건 당신을 이루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될 거다. 도대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당신의 몸 일부가 되어 버린 작은 점 혹은 사마귀처럼.




회사에도 분위기라는 게 있다. 


그건 회사에서 방침상으로 정해놓고 일부러 만들어낸 분위기일 수도 있고, 임원 혹은 회사 오너의 성향에 따라 맞춰진 것일 수도 있고, 직원들 사이에 저절로 형성된 문화일 수도 있다. 


그런 회사와 하루의 삼분의 일 이상을 꾸준히 함께 보내다 보면 당연히 내게도 그 회사의 분위기가 스며들게 된다. 처음에는 수영장 물이 낯설게 느껴질지 몰라도, 한참 그 안에서 놀다 보면 물 밖으로 나오는 게 더 어색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처럼. 


지인 E는 벌써 몇 년째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중이다. 얼마나 사장이 돈만 밝히는지, 회사 사람들은 얼마나 배려가 없는지, 업무 진행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인지 등등.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와 처음 구한 직장이라 이런 회사일 줄 몰랐다며 배신감에 치를 떨던 E는 어느 순간부터 그나마 자신이라 이런 회사에 다녀주고 있는 거란 소릴 하더니, 나중에는 자신이 없으면 이 회사가 굴러가지 않는다는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신입 사원이 들어오지 않아 일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하던 E의 회사에 드디어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고 했다. 우리는 그제야 그 지인의 “my company is rubbish” 소리를 그만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지만, 웬걸. 


이제 불만의 화살은 그 신입 사원에게로 향했다. 행동이 굼뜨다, 질문이 너무 많다, 자꾸 원리원칙을 따지는데 직장 생활 많이 안 해본 티가 난다, 그 정도 스펙에 취업을 한 게 어딘데 도리어 회사가 마음에 안 드는 티를 낸다, 지만 잘난 줄 안다, 등등. 


그 신입 사원이 했다는 말과 행동이 E를 그동안 봐온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기에 우리는 그저 입을 닫았다. 속으로는 너도 이제 그 회사 사람 다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익숙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뭘까? 


그걸 멈추면 된다. 


내가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면 멈춰보면 된다. 관계를 멈추고 거리를 두면 내가 그 관계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지, 혹은 내가 그 관계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연인에게 매일 아침 걸려오던 전화. 습관적으로 문자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들어 올린 폰, 퇴근 후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행동. 

상사가 보낸 이메일 수신 알림이 뜨자마자 자동적으로 나오는 한숨, 무신경한 말을 내뱉는 동료의 모습을 보고 일부러 바쁜 척 모니터로 고개를 처박는 행동, 모든 것에 의문점을 갖는 후배의 질문을 듣기도 전에 훅 하고 치밀어 오르는 짜증. 


그런 것들이 끊어진 뒤에야 자각이 든다. 

그동안 진짜 내가 그랬었나?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렇게 반응했던 걸까? 


더 확실한 방법은 상황을 바꿔보는 거다. 다른 사람을 만나보고, 일부러 다른 길로 가보고, 다른 메뉴를 선택해 보고. 익숙해진 환경을 바꿨을 때야 익숙한 것들과의 차이점과 새로운 게 눈에 들어오는 법이니까. 


일도 비슷하다. 내가 회사에서 어떤 인간이었는지, 이 회사 혹은 일이 내게 진짜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면, 상황을 바꿔보면 된다. 작게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함께 일하는 팀 바꿔보기, 다른 부서로 보직 변경해 보기, 직책 바꾸기, 혹은 다른 회사로 이직하거나 극단적으로 직업군을 바꿔보거나. 취미로 정원일을 즐겨하던 동료 대학 교수가 어느 날 아예 tree surgeon (나무 의사)로 전향해 버린 것처럼.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냐고? 당연히 쉽지 않다. 


대충 십몇 년 동안 여러 사람 만났다가 대체로 결혼하면서 종료되는 연애에도 매 관계마다 시간과 노력이라는 투자가 필요한데, 보통 30년 넘게 지속되는 직장 생활이라고 다르겠는가. 


물론 그동안 한 우물만 파도 괜찮다. 그게 당신이 추구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 어떤 분야는 일정 시간을 투자해야만 다음 단계로의 길이 열리기도 하니까. 만약 그 회사에서 일하면서 만들어간 당신의 모습이 당신이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한다면 그야말로 윈윈 (win-win)이다. 함께 성장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관계, 얼마나 이상적인가.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회사와의 자유연애를 추천하고 싶다.


순정 따위 없는 회사와의 관계에 나를 다 내어주고, 누가 그러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회사 취향에 맞게 내 성격도 개조하고, 내 삶의 방식도 바꾸고, 난 너뿐이라고 틈틈이 사랑 고백도 하고.. 


그러다 어느 날 뒤통수라도 맞아봐라. 배신감도 배신감이지만 다른 곳에 적응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전에 이미 누군가에게 맞춰진 내 행동, 습관, 사고방식부터 고쳐야 할지 모르니까. 


그러니 지금 당신의 회사가 영혼의 단짝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적당히 사랑하고 이별도 수시로 생각하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때 전 연인과의 흔적은 다 지우고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관계를 맺더라도 변하지 않는 건 나 자신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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