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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Oct 15. 2023

영원한 사랑 따위

한때 나는 직업은 한번 선택하면 그대로 정해지는 건 줄 알았다. 어렸을 때 그런 질문 많이 듣지 않는가. 


"장래 희망이 뭐야?"


그 질문의 답을 고민할 때 나는 내가 종국에 다다라야 할 어떤 종착점을 상상했다. 그 후 "무슨 일을 하세요?" 하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변될 그 종착점.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 우리는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고,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고... 


연애 역시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연애 소설의 끝은 결혼. 외전은 우당탕탕 육아 일기. 


누구도 "넌 어떤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런 사람들이랑 결혼해보고 싶어"라는 복수형으로 대답하지 않는 것처럼, 연애에도 확고한 종착점이 존재하는 듯했다. 내가 그리는 이상형, 그 이상형에게 나 역시 괜찮은 선택지가 되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함께 하게 되는 미래. 


연애는 자신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결혼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치열한 여정. 결혼을 하고 나면 해피엔딩. 




내게도 한때는 확고한 장래 희망이 존재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보호 안경을 쓴 채 실험에 열중하고, 뭔가를 발명해 내는 공학자. 학교에서의 공부와 대학으로의 진학 등등은 모두 그 종착역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공대에 입학했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혼잡한 도로를 벗어나 드디어 내 꿈을 향한 일차 도로가 펼쳐졌구나. 이 길만 따라 쭉 가다 보면 공학자가 될 수 있겠지. 


그런데 웬걸. 그 일 차선의 도로 위에서 나는 술 취한 사람처럼 자꾸만 비틀거리며 차선을 넘고, 다른 길들을 엿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볼 때는 근사한 궁처럼 보였는데, 거리가 막상 가까워지자 빛바랜 페인트칠과 낡아 삐그덕 거리는 창문 같은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그 '장래 희망'으로 불리던 직업의 실체가 상상과 다르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건 블러 처리되어 있던 내 꿈 위에 모공마저 보여주는 적나라한 필터가 씌워지는 기분이었다. 


꿈을 향해 가는 걸음은 느려지고 자꾸만 옆으로, 뒤로 눈이 돌아갔다. 이게 맞나 싶고, 이대로 가다가 돌이킬 수 조차 없게 될까 봐 덜컥 두렵기까지 했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는 동안 무수한 삽질을 해대며 장래 희망을 여러 번 바꿔대던 나는 결국 전공을 바꿔 영국으로 유학까지 왔다. 공학과 관련 없는 석사 과정을 마친 나는 또 학부, 석사 때와 다른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시작했고 학위를 받았다. 그 뒤 나는 여러 번의 이직을 하면서 영국에서 Private sector (민간부문 - 사기업), Academia (학회 - 연구원/대학 교수), Public sctor (공공부문 - 공무원), 그리고 다시 사기업 직장인으로 세 개의 산업분야를 걸쳐 직업과 직종을 바꿨다. 


연애로 치면 아주 카사노바가 동지라는 의미로 윙크를 보내며 어깨를 두드려 줄 정도다. 


지금 누군가가 내게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영국에서 회사 다니고 있습니다"라고 답하겠지만, 그게 나라는 사람의 전문성, 혹은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요"다. 이건 내가 잠시 뒤집어쓰고 있는 가죽일 뿐이니까. 


이 조직, 저 회사, 그런 직업, 이런 직책 등등에 맞게 적당한 보호색을 뒤집어쓰고 묻어간다. 그렇게 몇 년 일을 하면서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득템 한 뒤 또 다른 곳으로 이직해서 거기에 맞는 보호색을 만들어 덮어쓴 뒤 스며든다. 


그렇게 여기 뛰고 저기 뛰는 메뚜기 같은 삶에 익숙해진 나는 더 이상 영원한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다. 하나의 상대와 서로를 차근히 알아가면서 연인보다 가족 같은 안정감을 보장해 주는 진득한 관계를 오랫동안 이어가기보다, 차라리 서로에게 질려 권태기가 오기 전에 적당히 서로에게 좋은 연인일 때 헤어지길 선택하는 거다. 


결혼 전 내가 연애 기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잦은 이별을 했던 것처럼. 


그럼 내가 결혼 후 정착한 것처럼 언젠가는 한 회사와 좀 더 진득한 관계를 맺게 되지 않을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사실은 내게 맞는 직장을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방랑벽 있는 사람처럼 떠돌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어느 분야에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의심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전제부터 잘못 잡은 건 아닐까? 이 관계의 종착점은 '내 꿈의 직장'이 아니라, '은퇴' 아닌가?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도 시간과 재력이 보장된 자유의 확보, 말이다. 


그러니 어차피 헤어질 거, 내가 정말 원하고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의 실리를 추구하며 적당히 사랑하다 헤어져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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