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서 말하는 영국 중산층 여자란, 대충 40대에 접어든, 결혼을 했든 이혼을 했든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고, 전문직을 가지고 있는 여자를 말한다.
가족 동반 하우스 파티에서의 일이었다.
친구 중 한 명의 집에 여섯 가족이 남편과 자녀들을 데리고 참석했고, 그렇기에 파티에 참석한 인원수는 20명이 넘어갔다 (다들 평균 2명의 자녀가 있기 때문에).
참고로 여기서 알아둬야 할 건 영국에서 middle/upper middle class라면 이 정도 규모의 사람을 수용해 하우스 파티를 주최할 수 있는 크기의 집과 정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남편과 나의 결혼기념일이 파티 날짜와 근접했기 때문에 파티를 주최한 친구가 우리 아이들을 봐주겠다며 sleepover (다른 사람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는 것)을 제안했다.
그 덕에 파티 당일 저녁에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한 우리는 평소보다 차려입은 상태로 파티에 등장했다.
드레스를 입은 나를 보고, 친구들이 한 마디씩 칭찬을 건넸고, 나는 사정을 설명하며 말했다.
"보통 일하러 갈 때만 차려입어서 - dress up - 이번에는 남편과 데이트 기념으로 꾸며봤어."
내 말에 친구들의 반응이 두 가지로 나누어졌다.
반 정도 되는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고, 남은 반 정도의 친구들이 반문했다.
"Do you dress up for work?" (일하러 갈 때 차려입고 간다고?)
자, 여기서 대충 영국 중산층에 속한 여자들은 두 종류 타입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 타입은 나이가 들고 개인의 취향이 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꾸미지 않는 모습을 선호한다.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고, 외모에 신경 쓰고 불편한 옷도 입어야 했던 건 모두 20대 혹은 아직 데이팅 마켓에 있을 때의 이야기.
이제는 결혼도 했고 어느 정도 생활도 안정되기 시작했으니 외모에 신경을 쓰기보다 가족이나 일, 집과 관련된 것에 신경을 더 쓴다.
그렇기에 이들이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은 무난함과 편안함이 중심이다. 직장에 갈 때도 무난한 무채색의 정장 바지에 셔츠나 니트를 입고, 드레스를 입어도 몸에 딱 붙기보다 헐렁하지만 패턴이나 색이 다양한 종류를 입어 포인트를 주고, 신발도 편한 단화를 신는다.
이 쪽에 해당하는 여자들은 직업군도 옷차림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곳에 종사한다.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의사나 약사, 혹은 좀 더 무난한 복장이 선호되는 공무원 혹은 사회 복지 관련된 직종 등등 말이다.
두 번째 타입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본모습을 유지하는데 신경을 쓴다. 다들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하나씩은 규칙적으로 하고 있고, 여전히 패션에 관심이 많고, 자신의 스타일이 확고하다.
회사에 갈 때도 다양한 스타일을 추구하며 맨 얼굴을 보여주는 걸 꺼려하고, 스틸레토힐은 아니더라도 굽이 있거나 옷 스타일과 맞고, 상황에 맞는 신발을 신는다.
이들은 만약 파티나 외부행사가 있으면 과감한 드레스에 아슬아슬한 하이힐을 신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평소에 화장이 과하거나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볼 때는 겉으로 표현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다들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그런 태도가 나이에 맞지 않고 격이 떨어져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쪽에 해당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고객이나 비즈니스 파트너를 상대해야 하는 전문직, 교직 등에 종사한다. 보여주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보니 여전히 관리를 꾸준히 하는 거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대체로 끼리끼리 어울리거나 모임의 성향에 따라 만나는 타입이 바뀌는 경향이 강해진다.
예를 들어 다 같이 저녁을 먹으려고 레스토랑에 모였는데, 대다수가 두 번째 타입으로 다들 드레스에 화려하게 차려입고 등장했는데 자기 혼자 청바지에 운동화 입고 등장한다고 생각해 보자.
반대로 두 번째 타입이 레스토랑인 줄 알고 꾸미고 갔는데, 알고 봤더니 첫 번째 타입들이 모인 수더분한 동네 펍이었다? 그럼 바로 흥이 깨지는 거다.
그런 까닭에 타입에 따라 모이는 장소도 달라진다. 첫 번째 타입은 편하지만 cosy (아늑하고) 분위기 좋은 장소를 선호하고 가능하다면 afternoon tea 같은 걸 즐길 수 있는 카페나 tea shop을 좋아한다.
반면 두 번째 타입은 트렌디한 곳을 좋아한다. 맥주보다는 칵테일이나 와인을 즐길 수 있고, 이왕이면 꾸미고 나가도 괜찮은 저녁 약속으로.
이쯤 되면 만나는 장소에 따라 알아서 옷을 차려입고 가기도 한다. 자신의 성향보다 중요한 건 그런 분위기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
그렇게 모이면 대화의 주제는 다양한데 대충 자식들 교육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집 이야기 (이번에 새로 주방 바꿨다며? 어디 거야? 사진 보여줘. 나 이번에 새로 가구를 바꾸려고 하는데 고민이야, 등등), 직장 이야기 (자세히는 안 들어간다. 대충 요즘 일 어때? 많이 바쁘겠다, 등등), 그 외 최근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문제 (특히 자녀들 교육이나 정책과 관련된 것들이 핫토픽으로 나온다), 잡다한 이웃이나 지인들 이야기를 한다.
그 외 정보 교환도 이루어지는데, 다들 집이 가까우면 cleaner (대부분 청소 도우미를 고용한다), 정원사, 건축/설비업자의 정보를 교환하고, 그 외 아이들 과외 (대부분 음악이나 운동과 관련된 걸 주로 한다. 나중에 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영국 중산층 엄마들은 아이들의 공부와 관련된 과외를 잘 시키지 않는다. 그건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휴가지, 등등의 정보를 나눈다.
그러다 보니 교류가 잦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다들 비슷한 서비스를 쓰거나, 물품을 가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만 해도 이런 정보 교환으로 친구 세명과 같은 청소 도우미 업체를 썼고, 같은 브랜드의 가전제품과 비슷한 시기에 피아노도 친구와 같이 구입했으니까. 'The Joneses' 같은 영화가 괜히 나온 게 아니란 소리다.
우리는 친구들과 가족 동반으로 휴가를 같이 가기도 한다. 같이 캠핑하러 간 적도 있고, 스페인에 커다란 별장을 빌려 총 세 식구가 일주일 동안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건 모두 나와 두 친구의 성향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전형적 이게도 여기서도 보통 가족 휴가는 엄마/아내들이 주로 결정한다), 선호하는 휴가 스타일, 음식 취향, 각자의 스타일, 소비 수준까지.
이렇다 보니 40대에 접어들어 영국에서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려면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상대방과 내 성향이나 취향이 맞아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육아 방식이나 육아에 대한 사고방식도 비슷해야 하고, 남편들의 직장이나 교육 수준도 서로 맞아떨어져야 한다. 거기다 서로 사는 수준과 소비 방식도 비슷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대화 중에 어색한 불협화음이 발생할 수 있고, 무엇보다 상대방과 친해졌다 해도 가족 간의 교류를 형성할 수가 없다. 그러면 가끔 가다 날 잡아 한 번씩 보게 되는 사이로 남을 때가 많다.
이렇게 적다 보니 참... 새삼 당황스럽네요. 이런 걸 왜 전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