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모든 비슷하겠지만, 영국의 부모들도 아이들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좋은 걸 먹이고, 좋은 걸 입히고 싶은 건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가 원하는 거니까.
다만 다른 점이라면 '뭐에 돈을 쓰는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산층의 부모들은 아이의 교육이나 방과 후 활동, 여행 같은 경험과 관련된 것에 많은 돈을 쓰고, 워킹클래스로 갈수록 과자나 스낵, 값싼 액세서리, 장난감 같은 소비재에 돈을 쓴다. 아마도 첫 번째 경우는 장기적인 지출과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일 거다.
계급의 대물림 현상이 극심한 영국에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그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렇지 않겠는가, 영국의 사회 특성상 20살에 임신해서 줄곧 정부 지원금 (benefit)으로 아이를 키운 사람과 경제적인 독립을 한 30대가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일단 그 부모의 사고방식이나 생활 습관 자체에서 차이가 나는데.
영국의 중산층 부모들은 자식의 교육과 양육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이들의 안전에 예민하고, 손수 만든 이유식이나 가격대가 높은 친환경 브랜드 제품을 선호하며, 교육에 진심이라 몬테소리 같은 교육 방식, sensory play (오감발달 놀이)를 찾아다니고, 음악 수업이라든지 농장이라든지 하여튼 많은 곳에 데리고 간다.
영국에서는 중산층일수록 시내나 중심가라 할 수 있는 상업지구와 떨어진 주거지역에서 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자가용이 없거나 재력이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의 예절 교육에도 엄격한 편에 속하는데, soft play 같은 놀이방에 가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아이들 위치를 확인하며 혹시 아이들이 물리적인 다툼에 휘말리면 즉시 주의를 주고 제재를 가하는 편이다.
그럼 자기 아이들이 뭘 빨고 놀든, 어디서 누구를 때리고 있든 신경도 안 쓴다? 그런 걸 다른 부모가 말해줘도 들은 척도 안 하거나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쯤 되면 아실 거라 믿는다.
이런 교육의 열정은 아이들이 자라면서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그런 까닭에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은 방과 후 활동으로 꼭 예체능과 관련된 걸 하나씩 한다. 이런 점도 대화에서 그대로 나타나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What does xx (아이 이름) do after school?"이라고 묻지 "Does xx do anything after school?"이라고 묻지 않는다. 뭘 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 오전에 녹색으로 펼쳐진 근처 field에 가보면 축구, 럭비, 크리켓, 하키를 하는 아이들과 그 근처에 커피를 들고서 서있는 부모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여기서도 웃긴 건 그 부모들의 옷차림새다. 딱 봐도 일정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웰링턴 부츠, gilet (패딩 형태의 조끼), 혹은 롱패딩 점퍼, 등등.
하여튼 그런 이유로 중산층 아이들은 잘 하진 못하더라도 다들 뭐 하나 해본 경험이 있다. 그게 악기든 운동이든. 그중에 진짜 자신의 적성을 깨달아 그쪽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해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매해 그 활동을 바꾸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다.
주로 하는 운동들은, 수영, 럭비, 축구, 테니스, 네트볼, 핸드볼, 체조, 태권도 정도를 어릴 때 많이 하고 애들이 좀 크면 하키, 승마, 크리켓, 등등 종목이 좀 더 다양해진다.
그럼 아이들은 방학 때 뭘 하는가?
학기 중에 그만큼 바빴으니 집에서 쉬거나 친구와 만나서 놀까?
그렇지 않다. 왜냐면 대부분 중산층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해외나 어디로 휴가를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학 때가 가까워지면 아이들은 묻는다.
"Where are we going this time?" (이번에는 어디로 가요?)
그런 아이들에게 해외여행은 새롭지 않고, 가끔은 심드렁해하기도 한다. 친구들이 어딜 갔다 왔다고 얘기해도 마찬가지다. 그건 부러워할 게 아니라 누가 '너 점심으로 밥 먹었어? 난 빵 먹었는데' 하는 정도의 정보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휴가와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 교육에 진심이고 돈을 아끼지 않는 부모들이지만, 그만큼 아이들에게 제재도 많이 가하는 편이다.
식사 예절을 지켜라, 욕을 하지 마라, 무례하게 굴지 마라. 무례할 것 같은 말이라면 아예 하지 마라.
간식을 먹기 전에 밥을 챙겨 먹어라, 단건 이미 많이 먹었으니 더 먹지 마라.
비타민을 챙겨 먹어라, 숙제를 빠짐없이 해라.
오늘 네게 할당된 스크린 타임은 끝났으니 자꾸 폰이나 컴퓨터를 들여다보지 말고 운동이나 다른 걸 해라.
등등.
그 외 아이들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자주 확인하고, 아이들에게 안전 교육을 시키고, 학교에서의 활동에 관심을 보이고, 숙제를 도와주는 등의 일은 중산층의 부모들에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 까닭에 영국 중산층 아이들은 밖에서 늦은 시간까지 어슬렁거리지 않고, 어른이 있는데 욕을 찍찍 내뱉거나, 시간 개념 없이 인터넷이나 게임만 주야장천 하는 경우가 드물다. 부모가 그 꼴을 두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꼭 좋은 일인가? 영국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은 그럼 다들 예의 바르고 올곧게 자라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건 이것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족쇄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까닭에 어른들이 없는 공간에서 더 엇나갈 수도 있고, 그렇게 믿어왔던 가정이 부모의 이혼 등으로 깨지면 더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아이들 역시 개개인의 인격체이니 이런 주위 환경에 순응해서 어른들이 보기에 이상적인 모범생이 되는 아이도 있고, 이런 환경에 반발해서 하지 말라는 건 다 하고 다니는 사고뭉치도 있고, 그 중간 어딘가에서 나름의 성장과정과 다툼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더 많다.
그렇게 자라서 부모가 다 해주는 집에서 나가 독립하길 원하지 않는 어른이 되는 경우도 있고, 일찌감치 독립해 20대에 집을 사서 나가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말한 건 대충 영국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이 겪게 되는 일들의 일반화지만, 푸르슴 해 보인다고 다 똑같은 파란색이 아니듯 어차피 모든 건 개인의 성향과 상황마다 다르니까 말이다.